스타트업 근무일지 #1
나는 공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혹자도 대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 있는 첫 번째 글을 참고해 주시길 바란다.
질문을 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는 것이 스타트업과 공기업은 기업의 존재 이유부터 매우 다르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은 불확실성 속에서 회사의 '생존'을 목표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며 성장해 나가야 하는 곳이고, 공기업은 조직의 체제와 법 테두리 내에서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국가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속성을 중심으로 일하는 곳이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거쳐 두 번째 스타트업에서 재직하고 있는 현재, 9개월쯤 다닌 시점에서 이전에 건설업 기반의 공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두 조직의 특성과 환경, 업무적인 면에서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시장에서 살아남아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회의와 의사결정을 진행하며, 직원 개개인이 자기 주도적으로 즉시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스타트업은 공기업이나 대기업과 같은 한국의 일반 기업 규모에 비해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이 활발하다.
대면 소통뿐만 아니라 슬랙(Slack)이라는 업무 메신저이자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협업툴에서 즉각적으로 팀과 소통할 수 있다. 마치 회사에서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라고 보면 된다. 슬랙을 사용하면서 내가 느낀 장단점은 명확한데, 직원들 간 소통이나 업무 파일을 주고받아야 할 때 즉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편리하다. 구글 캘린더나 아사나(Asana)와 같은 협업 툴과 연동하여 빠르게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반면, 간혹 바쁠 때는 퇴근 후나 주말에도 업무 요청이 이어지는 등 자칫하면 슬랙 지옥에 빠질 수도 있으니 업무와 일상의 분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의사결정 또한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업무를 '실험'으로 여긴다. 반복된 실험들 중에서 빠르게 피드백을 반영하여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반면 공기업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이해관계자들에게 목적을 설명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기업은 조직 환경이 다소 보수적이기 때문에 빠른 변화나 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부서와 협력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지자체, 정부 부처의 승인 혹은 권고에 따라 업무를 진행해야 할 때가 많다. 이로 인해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업무 추진이 늦어질 수 있다. 또한,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안정성을 중시해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보다는 검증된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기업의 절차가 복잡한 만큼, 새로운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그 영향력은 크다. 정부 정책이나 제도에 따라 국민과 시민을 위한 일을 하기 때문에 넉넉한 예산, 시·도나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 자원을 활용하여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공기업에서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느릴 수 있으나, 한번 발생하면 큰 파급력을 가진 일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스타트업과 공기업의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업무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빠른 시장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업이익이 적자이거나 투자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생긴다면, 의사결정 지연은 그 무엇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공기업에서는 안정성과 지속성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져, 법과 규정에 의하여 정해진 절차를 거쳐 신중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공기업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절차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유지하고자 지나치게 도전을 피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는 것과 같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도전과 혁신에서 비롯된다. 공기업이라 할지라도,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 한번 해볼래?"
스타트업에서 팀 리더로부터 종종 들었던 말이다. 내가 어떤 업무에 흥미가 있어 보였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때다' 싶으셨는지 "재밌겠지? 너 한번 해봐!"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만큼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열의와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간혹 프로젝트 착수가 아닌 기존 업무에서의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따로 리더의 승인 없이 바로 업무에 적용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후에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나 변화에 열려 있고 장려하는 분위기다. 혹여나 그 시도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잘못이라고 하지 않고 '그럼 다음엔 다른 걸 해보자!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일을 좋아하고, 의욕적인 동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다. 같이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동료애도 함께 생겨서 더 친밀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업무 분장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지 않다는 말과도 같다. 전략/기획, 마케팅, 운영, 데이터, 개발, 디자인이 나눠져서 각각 담당자가 자기 업무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많은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업무를 하거나 새롭게 떨어지는 일을 누가 가져갈지, 어떤 팀에서 할지 정해져 있지 않아 업무 분장 문제로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한 사람이 디자인이든 마케팅, 광고든 다 하고 있다. 일당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 '난 마케팅하러 왔는데 일과 중 절반은 디자인을 하고 있네.'의 경우다.
반면, 공기업에서는 업무 분장이 비교적 명확하다. 직원마다 하나 혹은 두 가지의 명확한 업무를 받아서 수행한다. 이 업무는 누구에게 요청해야 하고, 협조를 받아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협력하기에도 용이하다. 하지만 전반적인 업무를 진행하지 않다 보니 사용하는 툴의 범위라던가 관리하는 KPI, 권한이나 책임도 줄어들 수 있다. 물론 권한과 책임은 직급의 차이에서 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스타트업에서는 회사의 '생존'을 목표로 혼자서, 또는 많아야 3명이서 진행하던 업무들을 공기업에서는 10명, 20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진행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의 맨 파워나 영향력은 줄어들게 된다. 그 대신, 법령이나 매뉴얼, 업무 처리 기준에 대한 꼼꼼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업무의 정확성과 디테일을 요구받으면서 기본부터 다져나갈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는 누군가 한 명이 만든 것이 규칙이 되고 매뉴얼이 된다. 대개 초기 멤버이거나 중간에 합류한 리드급의 '일잘러'인 경우가 많다. 공기업에서는 적어도 수백 명이 합의하고 지키는 매뉴얼과 규칙에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것이다.
스타트업과 공기업에서의 배울 점은 명확히 다르다. 요약하면, 광범위한 실무적 스킬과 좁은 범위의 업무 스킬이다. 회사의 성장을 고민하고,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무적 스킬을 스타트업에서 발휘해야 한다면, 공기업에서는 타 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업무적 스킬 이렇게 나눠볼 수 있다.
많은 스타트업에서 시차 출퇴근제를 적용하고 있다. 시차 출퇴근제란 오전 7~11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해서 8시간 근무하고 4~8시 사이에 퇴근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일했던 공기업에서도 '유연근무제'라는 이름의 비슷한 제도가 있었는데, 주 40시간을 자신의 스케줄에 맞게 조정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월~목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9시간 일하고, 금요일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4시간만 일하는 것이다. 뭐가 더 좋다기보단 사람마다 선호하는 제도가 다르지 않을까 한다.
확실한 건, 오전 9시가 아닌 10시 혹은 11시에 출근해도 되기 때문에 쫓기듯 아침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출근 시간 지옥철에 덜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스타트업의 시차 출퇴근제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점 중 하나였다.
비교적 재택근무가 자유로운 스타트업도 많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재택근무로 인한 소통 문제로 인해 요즘에는 대면 근무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회 이상은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회사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첫 번째 스타트업이 재택근무가 완전 자율인 회사였는데, 사무실이나 공용 오피스, 집, 카페 어디에서든 근무할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지금 회사는 오프라인 출근이 원칙이다.) 그 장점은 어마무시하게 컸다. 출퇴근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었고 자신의 업무 컨디션에 따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 회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무가 덜 바쁜 시즌에는 동료들과 4박 5일 제주도 워케이션을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워케이션 전용 숙소에서 이틀을 지냈었는데, 사무실 공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일하고 있자니 확실히 기분 전환도 되고 공간이 바뀌어서인지 업무 시간엔 또 집중도 잘되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 시간엔 흑돼지 삼겹살을 먹으러 가거나, 밤바다를 보고, 휴일엔 관광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았다. 워케이션이란 '워라블'을 실현하는 일임과 동시에, 업무 시간과 장소의 자율성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인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듯, 업무 시공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의 단점도 있다. 먼저, 서로 대면해서 일하는 것보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Zoom이나 Google Meet 등 화상회의를 통해 소통하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은 채로 근무하기 때문에 신뢰가 쌓이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슬랙 등 업무 메신저를 통해 자신의 하루 업무 성과를 올리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소위 '일한 티를 내라'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할 거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일하다간 '일 안 하는 사람'으로 오인받을 수 있으니 꼭 명심하자.
이외에도 두 회사의 차이점은 많다. 스타트업은 상호 간에 '님'호칭을 사용하는 만큼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하지만 '진짜' 수평적인 관계란 있을까 싶기도..), 책상 위에 사무용품이 없다는 것, 회사의 존속 기한(?)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등이 있겠다. 특히, 사무용품이 없는 건 신선했는데 데스크톱과 노트북으로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A4용지나 노트, 펜, 결재 파일 같은 것들은 없다! 쓰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대부분 은 노트북 하나로 모든 업무와 아카이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툴과 프로그램을 빠르게 익히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스타트업에서의 적응이 빠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과 공기업, 직접 겪어보니 장단점이 분명한 조직이다. 어떤 곳을 선택하든 정답은 없다. 어떤 환경에서든 업계와 직무에서의 역량을 키우고 시장의 변화에 끊임없이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자기 계발과 직무 역량 강화는 항상 필요하다. 두 조직에서 각각 일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들을 적절히 활용해 개인의 성장과 함께 현재 일하고 있는 곳, 또 앞으로 일하게 될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조직, 업무 환경에서의 경험이지만, 지나고 나면 어떤 것 하나 버릴 경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Conne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축하 연설에서 한 말처럼 점이 모여 선이 되듯이, 과거에 한 일들이 이어져 현재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과거의 일들 하나하나가 연결된 결과라 생각한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경험들도 서로 연결되면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내곤 한다. 이렇게 경험을 토대로 공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배운 것들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갖추면, 더 나은 기획자로 성장하며 어떤 조직에서든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