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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Sep 10. 2023

'밥 한 끼 하자'에 진심을 담는 사람과의 식사

누군가와의 한 끼 식사가 주는 여운 

언제부턴가 '시간 되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인사치레로 되어버렸다.

그 밥 한 번이란 약속은 때론 공허하게 느껴진다. 문자나 전화로는 그래도 잊지 않을 만한 시간 간격으로 서로를 물었지만, 따져보니 얼굴 본 건 근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사람들도 많다.


중, 고등학교 친구는 당연하고 대학 졸업 후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있었으니 서로의 일상을 온전히, 그리고 견고히 지탱해 오느라 그 밥 한 끼의 시간이 쉬운 것만은 아닌가 보다. 가끔은 오히려 추억을 공유한 친구지만 얼굴을 못 본 지 오래된 친구보다, 지금 내 옆에서 같은 생활공간을 공유하고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는, 조금은 얕은 관계의 친구와의 밥 한 끼가 더 위안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내가 일하는 회사의 HR부서에서 채용과 조직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S님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님, 저희 점심 식사 한번 해요~"

"오, 좋아요!"

"혹시 부담스러우신 건 아니죠? 갑자기 저 사람 뭐야~ 이러시는 거 아니에요?"

"에이, 전혀요. 저는 언제나 열려 있답니다."


작은 체구를 가진 S님은 밝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식사를 함께 하자고 말했다. S님은 지금 회사에 내가 면접을 보기 전 면접을 안내해 주셨고 면접 당일, 회사에 도착해서도 친절하게 면접장으로 안내해 주셨다. 덕분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을 볼 수 있었고 회사에 대한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사 후에도 근로 계약서 작성과 슬랙 워크스페이스 초대 등 크고 작은 일들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간의 좋은 기억들로 나 또한 S님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식사 요청은 나에게도 반갑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바로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분은 진심으로 하신 이야기일 텐데, 그 자리에서 "그럼 저희, 언제 먹을까요?"라고 바로 되묻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아직도 '밥 한 끼 하자'라는 말을 으레 하는 인사치레로 여기고, 나 또한 가끔은 이 말을 지나가는 인사로 하기도 했다는 반증일 테다.


그러다 회사에서 오며 가며 S님을 또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S님은 나에게 다가왔다.


"S님, 안녕하세요~ 요즘 자주 뵙네요."

"그러게요. 해원님, 혹시 이번 주 목요일 점심 식사 어떠세요?"

"목요일 점심, 저 가능해요! 안 그래도 저도 약속 잡으려고 했었는데 감사해요~"

"그럼 목요일 점심에 뵈어요!"






그렇게 S님 덕분에 우린 약속을 잡았고, 목요일 점심시간이 되었다. 


"해원님,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저는 진짜 다 좋아해요! S님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음, 이 주변에 맛있는 데가 몇 개 있긴 한데 인도 커리집도 있고, 한식집도 있고.."

"오, 저 커리 좋아하는데! 괜찮으시면 커리집 갈까요?"


우린 사무실 근처 커리인이라는 인도음식 전문점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S님은 채용 당시에 나의 이력서를 보고 그동안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고 한다. 채용 담당이다 보니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모두 보았던 것이다. 순간, S님이 지난 내 커리어와 이력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제 커리어가 조금 특이하죠? 사실 공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을 때나, 첫 스타트업에서 지금 회사로 이직했을 때도 나름대로는 고민을 많이 하고 내린 결정이긴 해요."

"그러시군요. 그래서 해원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어요. 해원님이 그냥 궁금하기도 하고요"

"사실 별거 없지만,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는 내 지난 커리어와 변화의 시기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은 무슨 가치관을 가지고 앞으로는 직업적으로 어떤 길을 가려하는지 솔직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불편함이나 괜한 가면을 쓰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S님도 지난 직장이 조금은 보수적인 곳이라고 했고, 나 또한 첫 직장이 그러했기에 조금만 이야길 해도 무슨 말인지,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너무나 잘 이해가 되었다. 


알고 보니 S님과 나는 동갑이었다. 회사에서 나이를 묻는 경우가 드물고,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지도 않았지만 (이건 스타트업에 한정된 문화가 아닐까 한다.) 나이가 같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이 더 생긴 느낌이었다. 회사나 커리어뿐만 아니라 사는 곳, 주변 친구 이야길 해도 금세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S님도 고향이 지방이었고 대학교 때 상경해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새 우리가 주문한 치킨 커리가 나왔다. 트레이 위에 밥과 작은 보울에 커리 소스가 같이 놓여 있었다. '생각보다 커리 양이 너무 적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이거 다 나온 거 아니에요. 커리는 따로 또 나와요. 양 보고 놀래실까 봐..ㅎㅎ"

"아아, 그래요. 순간 당황했어요."


나는 다시 한번 S님의 배려를 느꼈다.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미리 상대방을 위해 설명해 주는 모습에 문득 고맙기도 했다. 우린 계속 이이서 이야길 하며 식사를 했다. 지금까지 먹은 커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게 느껴졌다. S님은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나처럼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냥 이야기를 나눴을 을뿐인데 괜히 배려받는 느낌이 들어 식사를 끝내고도 여운이 남았다. 


"해원님, 오늘은 제가 살게요."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회사 돈인데요, 뭐"

"그래도.. 그럼 다음에 제가 사겠습니다!"


S님은 그렇게 나에게 점심 식사와 커피까지 사주셨다. 덕분에 나는 S님 덕분에 즐거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끼를 대접받은 느낌이었다. 다음 주에는 내가 꼭 먼저 식사를 요청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감사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저마다 매일 주어진 업무와 숙제 같이 쌓여 있는 일들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하다. 적어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며, 관계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S님은 진심을 담아 '밥 한 끼 하자'라고 말할 수 있고, 그걸 지킬 수 있는 멋짐이 있었다. 


앞으로 왠지 S님과 더 친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해보면 같은 대화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잘 통하는 듯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S님은 명확한 전자였다. 어쩌면 '더 친해지고 싶다.'가 나의 진심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사무적인 관계에서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으로. 마음의 문이 얼렸다.






밥을 사주고 또 그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참 묘하다. 

우리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도 함께 밥을 먹고, 사이가 소원했던 관계를 풀기 위해서도 밥을 먹고, 힘들었던 하루를 토닥일 때도 맛있는 밥을 함께 먹자고 한다.


누군가가 밥을 사주겠다고 할 때, 그 진심이 느껴질 때,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호감의 감정이 싹튼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일상적인 부분을 함께 하는 것이라 밥을 사준다는 건 관심의 표현인 셈이다. 

그래서 이렇게 같이 밥을 먹자며 챙겨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서적인 다독임과 케어를 받는다는 느낌까지 든다.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과 그 사람의 마음씀에 감동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따스한 밥 한 그릇,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거한 식사가 아니라도 누군가와의 소중한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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