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 포기하지 않음으로 보여준 사랑의 형태
금요일은 일주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다. 이유 없이 들뜬다.
아,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 다음 날이 주말의 시작이니까.
지난주 금요일은 주말을 좀 더 일찍 맞이하고 싶었는지 평소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그렇다고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 있거나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 반반차를 쓰고 오후 4시에 가뿐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그러고 보니 4시에 퇴근하는 일은 정말이지 매우 오랜만이었다. 일하느라 8시에 퇴근한 일은 이토록 생생히 기억나는데 말이다. 예전 직장에서 명절 연휴 전날 일찍 퇴근할 때가 4시 즈음이었으니까 적어도 2년은 넘게 지났다.
고작 2시간 일찍 회사문을 나섰을 뿐인데, 기분은 2배 넘게 좋아졌다. 아직 머리 위에 해가 떠 있는 쨍한 날씨도 좋고, 후텁지근한 듯 선선한 바람마저 좋았다. 그날 유독 일찍 퇴근하고 싶었던 건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긴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자 마자 나를 곧장 극장으로 이끌었다.
사실 나는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꽤 즐기는 편이다. 영화는 약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주인공들의 사랑,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애절함 등 우리가 살면서 느낄 만한 모든 감정이 들어가 있다. 그 감정들이 배우들을 통해 표출되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공감하게 되고,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 시간을 더욱 집중해서 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장면에 쓰인 미장센을 찾아보고, 감독의 의도를 유추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무료하다고 느껴지거나, 고민이 많아지거나, 시간이 남아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할 때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혼자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시간 동안만큼은 나의 생각과 고민에서 떠나 영화 속 주인공의 고민과 영화 속의 갈등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혼자 보는 영화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와 함께 보는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에 영화에 대한 여운과 감상을 나누면서 그들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내가 재밌게 생각한 영화를 보고 나와서 상대방이 '이 영화 별로였어'라고 하거나, 좀 더 깊은 감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순간들은 그 의미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하다. 혼자 보는 영화는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영화와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진다. 특히나, 평일 오후 시간대처럼 사람들이 덜 붐비는 때에는 커다란 극장에 혼자 앉아있는 설렘을 안고 와선지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아진다.
아무도 내가 어떤 장르의 영화를 보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 영화에 대해 오롯이 나만의 사고의 틀에서 영화를 계속해서 되새기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이번에 본 영화는 이선균과 정유미 주연의 <잠>이다. 우연히 지하철 지하상가에서 영화 포스터를 봤는데, 이선균과 정유미가 기대 누워있는 사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오싹하고, 오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잠'이라는 영화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잠? 이 단순하고도 생리학적인 행위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스토리에 대한 궁금함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기에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퇴근 전 이미, 회사 근처 CGV의 5시 15분 영화를 예매했다. 얼마 만에 평일 낮에 오는 극장인가. 매번 일에 치여서, 그게 아니면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에 짓눌려서,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사소한 고민들 때문에 바쁘지 않을 때에도 쉬이 몸이 극장으로 향하지 못했다. 극장까지 가서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없기도 했다. 오랜만에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극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먼저 예매한, 뒤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항상 뒤편 가운데 자리를 선호한다. 그렇다고 맨 뒷자리는 스크린이 시야보다 낮아 보여서 싫고 중간보다 앞자리는 고개를 조금 들어야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뒤에서 세네 번째 줄이 딱 좋다.
나는 보통 영화 줄거리를 전혀 보지 않고 영화 관람을 하는 편이다. 과거에는 줄거리를 읽고 나서 영화를 본 적도 있었는데 중간중간 스토리 전개가 예상되면 극적인 효과나 재미, 스릴이 반감되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모르고 봐야 영화를 보면서 혼자서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해 볼 수 있고, 좀 더 흥미진진했다. 선입견이나 기대 없이 관람한 영화는 항상 내 기대치 이상을 만족시켜 주었다. 영화 <잠>도 그랬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01.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
영화 <잠>은 램 수면장애로 인해 밤마다 일어나 돌아다니고 아무 음식이나 마구 먹는 등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현수(이선균 분)와 그런 남편의 증세가 병인지 귀접인지 의심하기 시작하는 아내 수진(정유미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잠에서 깬 현수는 이제껏 수진이 알던 남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아 보인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신혼부부인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에서 집중한 부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 의지하고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 영화에서 몇 차례나 강조되는 가훈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가 영화의 핵심과도 같다. 그런 마음 위에서 수진이 접하게 되는 배우자의 전혀 다른, 두려운 모습은 훨씬 큰 공포로 다가온다. 그건 병 때문이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믿음 사이에 던져지게 되기 때문이다.
02.
"포기해서 쉬운 거야. 가족은 쉽게 포기하면 안 돼."
이 영화는 세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장(章)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긍정적인 메시지가 내포된 새로운 시작점으로 구성되고 있다. 다른 영화나 출판물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형식은 아니었지만, 세 개의 장으로 나눔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 특히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급격히 바뀌는 지점에서 분절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현수의 수면 장애가 완치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고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부분이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문제로 발화되게끔 한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으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 시간 동안 진짜 남편의 부재로 인한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그녀는 2장의 중반부까지 가족은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며 남편의 불안까지 떠안으려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은 물론 딸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점차 그 불안에 잠식당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부정하던 수진의 미신에 대한 믿음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번 시작된 불안은 가족에 대한 믿음과 수진의 사랑이 있던 곳에 불신과 맹신이 자리한다.
03.
"결국,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보여준 사랑의 형태"
마지막 장에서는 영화 내내 강조하던 부부의 믿음과 사랑이 후반부에 이르러 해체되었다가 마지막에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편이 잠들어 있던 사이 몰래 신굿을 벌이고 몸에 부적을 새기는 수진과, 아내를 홀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시키는 현수의 행동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던 부부의 다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 결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했다. 현수는 진짜 빙의된 것인지, 빙의된 것처럼 연기를 한 것인지 순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현수가 빙의 행위를 연기한 것이라고 생각을 굳힐 수 있었던 건 현수의 몸에서 할아버지가 빠져나갔다고 믿고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잠이 든 아내 옆에 누워 있는 현수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현수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온전한 정신을 한 채 아내 옆에 누워 깨어있었다.
현수의 빙의 행위는 실제가 아닌 수진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일종의 연극, 함께 극복하는 과정으로의 회복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가 수면 장애를 겪는 동안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최대한 곁에 머물며 극복하고자 했던 수진과 미신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을 놓지 못하는 아내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는 남편이 겹쳐 보였다.
결국, 둘이 함께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극복해 낸다는 영화의 핵심과 결을 같이 한다. 어쩌면 이질적인 장르로써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라는 예술은 다른 어떠한 예술 작품과 비교했을 때에도 그 집약적이고 극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 예술이다. 수십 년을 단 몇 시간으로 요약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2시간 안에 풀어놓기도 한다. 이러한 영화의 집약적인 특징은 자연스레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가끔은 그 '몰입'을 통해 인생의 여러 가지 고민의 실마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삶이 권태롭거나 지루할 때 활력을 받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공유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인격적으로도 보다 성숙해질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혼자 영화 보기'를 실천할 것이다. 이 몰입 행위가 내 삶에 준 영향들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자아와 지적 세계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영화들 사이에 혼자 보는 영화는 앞으로도 내 삶을 더 윤택하고 충만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