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속마음
지금이 23년 9월 말이니, 상경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1년 전, 서울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새로운 직장에 대한 기대, 이 넓은 서울 공화국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두려움 같은 감정을 안은 채 나는 서울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임을 예상하고서라도 나는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을 직접 겪고 부딪혀 봐야 하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자신이 경험해 봐야만 온전히 '겪어봤다'라고 말할 수 있고, 힘들지언정 그 과정에서 얻는 배움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도 취업 후 독립해 지냈기에, 자취 생활에 대한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집과 회사 등 바뀐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나는 낯선 환경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로 힘들거나 왠지 모르게 지치는 날은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물론, KTX만 타면 금방이지만 서로의 현생이 바쁘다 보니 말처럼 자주 내려가게 되진 못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거나 친구에게 바로 고민을 털어놓는 성격도 못되었다. 우리나라 K장녀의 일반적인 특징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 나는 가까운 사람이 나로 인해 걱정하거나 신경을 쓰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 홀짝이며 시간을 보내는 편을 택했다. 그냥 누구에게라도 훌훌 털어놓고 마음을 홀가분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좋을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무거운 몸과 마음을 혼자 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미련 곰탱이에 가까웠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어김없이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우리 집. 엄마의 전화다.
엄마는 매주 일요일 거의 같은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정해진 루틴처럼 그 시간만 되면 나는 '이제 곧 전화가 오겠구나' 했고, 7시 전후로 우린 항상 짧은 통화를 했다.
"00 이가?
그냥 한번 전화했다"
그냥 한번 전화한 거 아니면서.. 전화할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걸었으면서 매번 엄마는 그냥 걸었다고 얘기하신다. 나와 통화할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한 것을 알면서도 무뚝뚝한 딸인 나는 퉁명스레 대답한다.
"별일 없지?
난 잘 있어요"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도, 요즘 건강은 어떤지, 운동은 꾸준히 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저녁 먹었냐는 인사라도..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자주 해드리지 못했다. 내 상황이 바쁘거나 힘들 때는 괜히 이런 마음을 엄마에게 들킬까 봐, 그래서 걱정을 끼쳐드릴까 봐 오히려 더 말을 아꼈던 것도 같다. 그게 부모님을 더 서운하게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딸이었다.
얼마 전,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나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아니 00는 전화하면 얼마나 다정하게 얘기하는지 아나?
항상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적적하면 시장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한다."
00는 내 동생 이름이다.
내 동생이 나보다 더 살갑고 다정한 성격인 건 사실이지만,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간 나의 무뚝뚝한 반응에 서운하셨던 게 분명하다. 그 순간,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조금 더 따뜻하게 얘기해 드릴걸. 왜 더 깊이 생각을 생각을 못했을까.'
짧지만 자식과 통화하는 시간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부모님인데, 내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하고,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특히나 부모님, 가족이라면 괜히 어색하고 쑥스럽더라도 더욱 따스한 말을 건네는 것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당신도 항상 건강 잘 챙기고 조만간 집에 가서 보자고. 맛있는 거 사가겠다고 말이다.
대개 부모는, 특히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는 "한번 걸었다"는 인사말로 전화 통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러는 걸까.
정말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냥 무의식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통화 버튼을 눌러보는 것일까.
심심해서? 그럴 리 없다.
정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취하는 모든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추측은 이렇다. 당신의 전화가 자식의 일상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한 번 걸어봤다"는 상투적인 멘트를 꺼내며 말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행여나 자식이 "엄마, 지금 회사라서 전화를 받기가 곤란해요" 하고 말하더라도
"괜찮아, 그냥 걸어본 거니까"라는 식으로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뜻하다.
그 말속에는
"안 본 지 오래됐구나. 이번 주말에 집에 들러주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같은 뜻이 오롯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주변을 보면 속 깊은 자식들은 부모의 이런 속마음을 잘 헤아리는 듯하다.
그래서 그냥 한번 걸어봤다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평소보다 더 살갑게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가 얼굴에 닿을 정도로 귀를 바짝 가져다 댄다.
거리에서 혹은 카페에서 "그냥..."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청아하게 들려올 때가 많다.
퇴근길에 부모는 "그냥 걸었다"는 말로 자식에게 전화를 걸고 연인들은 서로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라며 사랑을 전한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애인만큼, 아니 어쩌면 더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남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을 다 못 해주더라도 부모님은 당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셨다.
내가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철없이 굴기도 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의 많은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식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구보다 생각하고 사랑해 주셨다는 것만큼은 알게 되었으니까.
주변에서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나 혹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일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부모도 있다. 내가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항상 삶에 있어서 모든 판단과 선택을 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해 주신 것'이다. 지금껏 부모님께 뭘 하라거나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온전히 내 의지와 방향성대로 해나갈 수 있었고 자립심과 독립심도 함께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부모님의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좀 더 단단하고 주체성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도 아빠는 나에게 얘기한다.
"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도 돼. 아직 젊잖아. 즐겁게 살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힘이 난다. 아직 더 해볼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서.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이번 연휴 땐,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을 한 아름 사들고 집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