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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Dec 24. 2023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멋짐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사람들

몇 개월간 퇴근 후,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방문하던 스터디 카페가 있었다.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으로 서울에 총 5개 지점이 있다. 내가 가장 자주 방문하던 지점은 캐치카페 서울대지점이었는데 1일 1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기에 부담 없이 방문해서 공부하기 좋은 곳이었다. 널찍한 공간에 1인석과 다인석이 모두 마련되어 있어 날마다 다른 자리에 앉아 집중이 잘되는 곳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카페가 높은 층이라 빌딩뷰로 공부하기에도 딱 좋았다.


내가 보통 머무는 시간대는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였는데 이 시간대에 항상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커피를 내려 주었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보게 되었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밝게 인사한 후, 음료 골라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손님이 주문하신 음료를 빠른 손놀림으로 제조해 전달한다. 손님이 없을 때는 손님이 이용한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거나 설거지를 했다. 일정 시간이 되면 쓰레기통을 비우고 카페 마감 시간 30분 전에는 빈 컵을 모두 회수한 후 마지막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했다.


그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 톤과 손놀림은 일정하고 규칙적이었다. 그렇다고 딱딱하거나 불친절한 모습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손님을 편안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적어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실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 아르바이트생에게서 숙련자의 안정감과 손님을 대하는 세심함이 엿보였다.


그 모습을 연일 보면서 특정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장인'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손님에게 전달하고, 그 외의 뒷정리와 마감을 하는 일.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사소한 일이라고 느낄지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카페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100석 정도의 좌석이 있는 넓은 공간을 혼자서 관리하고 그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며, 손님들이 원하는 음료를 제조해 주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일정 기간 이상 같은 일을 하면서 머리와 몸에 일이 익숙해졌을 것이고 마감 시간에 맞춰 손님들을 내보내고 늦지 않게 뒷정리를 끝마치는 노하우 같은 것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장인'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장인정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들은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경우가 많고, 전통적인 방식을 지켜오는 경우가 많다.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 브랜드, 페라리, 벤틀리 같은 럭셔리 완성차 브랜드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사전적 정의로만 따지자면 앞서 언급한 예시와는 일정 부분 차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분명 이들의 공통점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왠지 모를 존경심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머리를 써서 논리적인 기획을 만들어내야 하는 전략가나 새로운 연구 논문과 실험을 반복하는 연구원들과 같은 직업뿐만 아니라 일정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 우리 집 주변을 청소해 주시는 분,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위스키를 만들어온 사람 등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집중하여 끝까지 마무리해 내는 사람은 모두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SBS에서 방영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이 나온다. 오므라이스 달인, 칼국수 달인, 망치질 달인, 프리 다이빙 달인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한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일정한 손놀림이나 몸놀림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규칙적이고 일정한 속도로 어떠한 행위를 하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과 그러한 경지에 오르게 되기까지 무수히 많이 그 일을 반복했을 달인의 지난 모습이 상상되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 있기에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평소에 접하지 못한 직업군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가령, 포장이사 업체 사장님, 입주 청소 직원, 가구 배송 및 설치 기사님 등이 그들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하는 장거리 이사였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미리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게만 느껴졌다.


이사 당일, 이삿짐 업체를 통해 반포장이사를 진행했다. 기사님은 이사 견적 상담 통화에서부터 이사 전날 이사 확인 문자를 발송해 주시는 모든 과정에서 친절함과 믿음직스러움이 묻어났다. 오전 7시에 기사님이 방문하시기로 했기에 나는 이사 전날, 작은 짐들은 나름대로 구분하여 상자에 담거나 큰 비닐봉지에 넣어두었다.


이삿날 오전 6시 30분, 너무 이른 시간이라 혹시나 내가 자고 있을까 봐 기사님께서는 먼저 전화를 주셨고 7시가 되기 조금 전, 방문해도 되겠냐는 전화를 주시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 기사님의 배려심과 센스에 감사했다. 그리곤 하시는 말씀이 "반포장이사면 이렇게 다 짐 안 싸두셔도 돼요. 저희가 와서 놓인 짐 그대로 포장하는 거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빠르거든요."라고 하셨다.


나는 반포장이사라도 어느 정도는 짐을 챙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거의 정리를 두었는데 기사님의 빠르고 전문적인 손놀림을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파손 위험이 있는 유리나 가구들은 천이나 뽁뽁이로 꼼꼼하게 감싸 있는 그대로 안전하게 옮겨 주셨다. 빠르게 차곡차곡 짐들을 정리하는 스킬,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은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거기다 중간중간 유머 섞인 말을 건네며 내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는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혼자서 하는 포장이사라 걱정했던 처음의 마음과 다르게 좋은 기사님을 만나 안전하고 기분 좋게 이사를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분에게서도 한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의 연륜과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새로운 집에 도착해서도 빠진 물건이라던가 파손된 물건이 하나도 없이 안전하게 옮길 수 있었다. 큰 가구와 물건들은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 주셨고 나머지 짐들은 한 곳에 가지런히 모여있었다.  


사실 나는 물건을 사거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 리뷰를 등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다. 대부분의 물건이나 서비스는 딱 기대한 만큼의 값어치를 했고 리뷰를 쌓아 포인트를 모은다던가 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사한 당일 밤, 사진 3개를 포함하여 장문의 리뷰를 썼다. 무려 별 5개를 달아서.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리뷰를 달고 싶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고객만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나 또한 그간 일을 하는 동안 '고객만족', '고객 관점의 마인드'를 외치면서도 진정으로 고객을 만족시켜 자발적인 레퍼럴을 하고 싶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고객이 만족했다면 어떤 프로모션이나 유인책 없이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거나 진정으로 마음에 와닿을 수 있어야 한다. 이사를 하면서 '고객만족'이라는 것의 본질을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는 사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만난 또 다른 분들도 있었다. 이사 전, 업체를 통해 입주 청소를 진행했다. 새로 분양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것이다 보니 곳곳에 시멘트 가루나 신발 자국, 먼지가 많았고 하자보수가 필요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사를 하기 전, 입주 청소는 필수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한 업체에 입주 청소를 예약했다. 알고 보니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업체였다.


청소 당일, 오전 7시 30분에 청소를 시작한다는 문자가 왔고 청소가 끝나기 1시간 전, 또 한 번 문자를 주셨다. 나는 청소가 끝나는 시간 10분 전쯤 집에 도착했다. 온갖 청소도구와 장비, 그리고 가득 채워진 쓰레기 봉지가 보였다. 그리고 반짝반짝해진 집 내부까지. 사장님 아저씨께서는 거의 다 됐다며 어떤 부분은 왜 잘 안 닦이는지, 하자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지 빨간 스티커를 붙여 두셨고 나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바닥이 들뜰 염려가 있으니 입주 초반에는 보일러를 너무 높게 틀지 말고 실내화를 신고 생활하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사모님도 선반 하나하나씩 다 닦으셨다며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내가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한 것이었지만 너무 만족스럽게, 그리고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다음에도 또 이용하고 싶을 만큼.


그 외에도 줄눈 시공 기사님, 가구 업체 배송 및 설치 기사님 등 이번에 이사를 진행하면서 만나 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 일이 단순 노동일지언정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나름대로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다. 추운 날씨에도,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들을 뵈면서 겸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도 단순 노동을 하시는 분들에 대해 존경심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직접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 되어 보면서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하나 하찮은 일은 없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그분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일들이 그럭저럭 아귀를 맞추어 잘 작동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언제나 멋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묵묵히 또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존경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들, 따뜻한 연말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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