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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03. 2024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일상에 대하여

그림과 와인, 그리고 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것들이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같은 곳에 취미와 특기를 적어야 할 때면 둘의 차이를 긴가민가 한 채 무난해 보이는 '책 읽기', '음악 감상' 이런 뻔한 것들로 채워 넣기 일쑤였다.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몰라 정석으로 보이는 것을 적었다. 취미에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사소해 보이거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은 괜히 말하기가 꺼려지고 취미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이제 채워야 할 칸이 사라지자 그제야 궁금증이 생겼다. 내 취미는 뭐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뭐지? 하면서. 네이버나 구글 같은 곳에 '취미'를 검색해 보면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써 일반적으로 여가에 즐길 수 있는 정기적인 활동'이라고 나온다. 어떤 일을 하면서 즐겁고, 재밌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그게 취미가 될 것이다.


내가 오랜 시간 좋아했던 것들은 여행과 책 읽기였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두렵기보다 설렘이 앞섰고, 그런 기대감과 궁금함은 자꾸만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어딘가로 떠날 때마다 어느 정도의 수고와 힘듦은 늘 뒤따랐다. 대학시절엔 아르바이트와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번 돈을 모아 홍콩, 마카오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홍콩은 그렇게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아니지만, 그때는 이국의 공항에 내려 뜨겁고 습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낀 순간부터 2층 버스로 시내로 이동하는 길, 침사추이에서 바라보는 스카이라인의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현지인들이 길게 줄 서있는 식당 앞에 따라 줄 서서 맛본 우육면은 여행의 고단함을 일순간에 잊게 해주는 맛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여행은 난생처음 해보는 경험들로 환희를 맛보게 해 주었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그저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때 떠났던 여행과 달리, 책 읽기는 그만큼 오랜 시간 해오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서보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봐야만 했던 참고서나 문제집을 더 많이 봤고 그 외의 시간에는 오히려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가는 등 외부 활동을 더 즐겼다.


직장에 다니고부턴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집으로 돌아온 후엔 침대에 몸을 뉘이기 바빴다. 부지런히 충전하지 않으면 그다음 날 내 몸이 더 힘들 것임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일-집-일-집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특별히 재밌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기만을 바라며 하루살이처럼 시간을 견뎠다. 그나마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줬던 건 그 시간들을 함께 나누고 실없는 농담에 야유를 퍼부으며 키득댔던 동료들이었다.


이 시점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넌 무색무취야."


나에게 어떤 색이나 향이 없다는 거였다. 무색무취라는 단어를 나에게 대입해 본 건 처음이라 낯설었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스스로의 모습은 무지갯빛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빨간색, 녹색, 노란색의 삼원색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가 그렇게 보인다는 데 놀라면서도 조금 씁쓸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가 봤을 때도 무색무취에 가까웠다.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에도 별 다른 감흥이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일에도 좀처럼 열정을 내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 건가 보다.' '다 그렇지 뭐' 이런 염세주의적인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책을 펴 들었다. 시작은 집에서 쉴 때 큰 에너지를 안 쓰고 할 만한 것을 찾다 손에 잡힌 책을 읽었다.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에세이집이었다. 그림과 함께 그려진 가벼운 책은 책장이 잘 넘겨졌고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기도, 위로를 받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마음이 좀 더 차분해짐을 느꼈다. 그 뒤로 몇 권의 에세이를 더 읽었고 소설, 인문 교양서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몇 개월 후엔 독서모임에도 참여하며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직업군과 책의 장르가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일과 삶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만난 지인을 통해 내 삶의 행로에 작은 변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자신의 트리거(어떤 계기를 만드는 사건)와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결합되어 변화를 만들고 미묘하게 인생의 방향성을 바꾸어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했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 셈이다.


요즘도 변함없이 여행과 책은 나에게 무척 소중한 것들이다. 둘 다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넘치는 내 호기심을 채워주기 충분했고 그 과정에서 반복하여 사유하면서 좁았던 사고의 확장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가장 컸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한 동생 Y에게 연락을 했다.


"00, 주말 잘 보내고 있니?ㅋㅋㅋ"


Y는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 난 후로 출근길이 멀어져 힘들다고 했다. 정신없이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가 언제 만나자고 약속을 잡던 중 Y는 나에게 사진을 하나 보냈다.


아트앤와인. 그림소모임. 원데이클래스.

그림 그리면서 와인 마시고 사람들과 소통도 하는 그런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와인을 마시면서 그림 그리기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또 다른 조합이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채 그림을 그리는 걸 생각해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걸리는 건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기. 이제 점점 편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게 된 나는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에너지 소모가 많이 들 것이었다. 혼자라면 가지 않았겠지만 친구와 같이 간다면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대화의 공을 두 명이서 같이 주고받으면 덜 힘들 것 같았달까(...) 우리는 그 주 금요일 모임을 신청했다. 호스트의 답변을 받았고 그 날 만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6시 40분. 카페에서 Y와 나는 먼저 만났다.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가웠다. 커피를 하나씩 테이크아웃해서 7시쯤 모임장소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우리는 가방과 겉옷을 보관하고 앞치마를 건네받았다. 책상 위에는 캔버스와 붓, 아크릴 물감, 이름표, 간식 같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7시가 되자 사람들이 테이블을 모두 채웠고 아이스브레이킹이라는 걸 했다. 얇은 아이패드처럼 생긴 보드 위에 예명을 쓰고 옆 사람의 얼굴 중 눈, 코, 입 등 일부를 그려 옆으로 돌리는 식이었다. 처음 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림을 이목구비를 그리는 미션은 나에게 멋쩍게 느껴졌지만 열심히 하라는 대로 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리고 나니 다른 사람이 조금씩 그린 자신의 얼굴을 받아보게 되었다. 다 다른 사람이 그린 건데도 신기하게도 묘하게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을 더 했다.


사실 아이스브레이킹이라는 이름의 게임들은 대학시절 MT에서, 회사 워크숍 같은 곳에서 여럿 경험해 봤기에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저 프로그램을 준비한 주최 측의 원활한 진행을 도와야겠다는, 아니 적어도 방해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따라 했다. 작건 크건 어떤 행사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손품과 시간,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는 걸 차츰 알게 되었다. 이를 준비한 사람의 입장에선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 것도 당연했다. 참여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준비한 보람이 있을 것이었고, 다음번 잠재적 방문자들이 늘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 후 한 사람씩 와인잔에 레드 와인이 찰랑찰랑 채워졌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전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좋아하는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앞에 두고 마시는 와인은 더 달았다. 오늘 그릴 도안은 파도가 치는 밤바다 풍경이었다. 까만 하늘과 푸른 바다가 그려진 그림이 꼭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자신의 캔버스에 따라 그렸다. 꽤 오랜만에 붓을 잡는 건데도 낯설기보다 익숙했고 두세 개의 물감을 섞어 흰 캔버스에 색을 칠해나가는 느낌은 좋았다. 내가 어떻게 터치를 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조금씩 달라지고, 설사 잘못 그렸더라도 물감이 마르고 다른 색으로 덧칠하면 되기에 틀리지 않고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었다. 아,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붓을 움직이고 색을 입히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집안 온 벽에 크레파스로 낙서를 하는 애였다.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형형색색의 크레파스를 들고 마구 동그라미 같은 것들을 엄청 많이 그렸던 것 같다. 엄마는 이런 나를 나무라거나 제지하는 대신, 벽지에 큰 흰 도화지를 붙여주었다. 나는 그 위에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걸 그렸다. 그러다 시시해지면 책장에 있는 책을 몽땅 뺐다 꽂으며 놀았다. 가끔씩 동생도 참여시켰다. 그때 찍힌 사진을 보면 책꽂이에 몰입하고 있는 동생과 나의 뒤통수가 보인다. 아니면 카메라를 보고 깔깔 웃고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자유롭게 뭔가를 그리고 읽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술학원과 공방을 많이 다녔다. 풍경화, 정물화 같은 것들을 그릴 때 내 빈 도화지가 조금씩 채워지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미술은 중2 때까지 배우고 그만뒀고, 종이 접기와 포크아트, 도자기같은 공방도 몇 년간 다녔다. 내가 좋아하니까 엄마는 집에서 떨어진 곳이어도 매주 혹은 격주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주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새삼 부모님께 감사하다. 이것도 중학생이 되면서는 그만두고 공부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가끔 생각한다. 미술을 계속했으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금 더 재밌는 일과 아쉬운 일이 동시에 생겼을 테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하지만 그때의 선택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내 삶의 궤적에 후회는 없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기 위해 애썼고 그만큼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리고 싶을 때 언제든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걱정과 달리 모르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이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름이나 자신의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고 하는 대화라 그림이나 취향에 대해 가볍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집에서도 가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취미미술을 배우겠다고 산 유화물감을 얼마 쓰지도 않고 그대로 둔 게 기억났다. 미술은 자신의 생각과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글쓰기와도 닮아있다. 취향이 점점 짙어져 가는 지금이 좋다.


Y와 나는 2차는 가지 않고 둘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연어와 육회 중 뭘 먹을까 고민하다 평점이 4.8이나 되는 이자카야에 갔다. 연어회와 가라아게,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이제야 진짜 행복감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두툼한 연어회를 와사비간장에 찍어 한 입 가득 넣고 소맥도 한 잔 들이켰다.


"와, 미쳤다. 빨리 먹어봐"

"진짜? 나 너무 배고팠어"


역시 사람의 즐거움 중 가장 큰 건 먹는 즐거움이었던 걸까. 그림과 와인으로 채운 만족감의 딱 2배만큼의 행복이 마구 느껴졌다.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여지없이 가장 큰 행복이다. 우리는 그간 못했던 대화들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Y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지만 친구 같은 편안함이 있다. 대학시절, 친해질 무렵부터 Y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대한 것도 있지만 솔직하고 털털한 성향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린 자주 보진 못해도 뜬금없이 누구 하나가 연락하거나 만나면 언제나 어제 연락한 것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편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풀어지는 나는 Y에게 말했다.


"00아, 우리 자주 보자-!"

"언니야 방금 뭐 한 거야?"


술기운에 나도 모르던 내가 튀어나왔나 보다. Y는 정색하며 말했다. 처음 보는 내 모습이랬다. 이것도 아마 나를 놀리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


"뭐가 처음 봐. 원래 이래"

"아니거든. 깜짝 놀랐네"


나를 무안 주는 Y의 반응에도 나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상대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안전한 테두리를 인지할 수 있었기에 뭐래도 괜찮았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공감되지 않는 건 이해하거나 위로를 하면 되었다. 툭툭 내뱉는 것 같아도 Y의 배려심과 따뜻한 마음이 나는 항상 고마웠다.


어느새 가게가 텅 비고 알바생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마감시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다. 곧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린 애써 모른 척하며 10분을 더 있다 가게를 나왔다. 다음 달에 만나면 어디에 갈지 미리 정했다. 거기에서 또 맛있는 걸 먹으며 오늘 못다 한 이야길 하기로 했다. 우린 가게를 나와 택시가 줄지어 서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Y는 먼저 타고 가라며 나를 떠밀었다.


"언니야 빨리 타"

"너 먼저 타, 나 집 가까워"

"아냐 아냐. 얼른 타"

"너도 조심히 가~"






집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를 꽉 채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오늘 하루는 그림과 와인, 그리고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듬뿍 담은 하루는 더없이 충만했다. 매일 같은 일상이라고 느꼈지만 조금의 수고와 시간을 들이면 이토록 행복한 하루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감정을 표현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어려운 것으로만 여겨졌던 일도 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이렇게 사람은 조금씩, 천천히 바뀌어가나 보다.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더 많이 채워가고 싶다. 크지 않아도 좋다. 작고 사소한 일들로도 우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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