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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n 17. 2024

출근길 행렬을 바라보며

시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생경한 풍경

월요일 아침. 오전 9시다.


나는 시청역 근처 한 카페의 2층에 있다. 아이스라떼를 주문하고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얼핏 창밖을 내다보니 출근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빠른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들 어딘가로 가고 있다. 누군가는 통화를 하면서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커다란 서류 가방을 들었다. 흔한 직장인의 출근길 풍경이다.


직장인에게 월요일 아침은 가장 맞이하기 싫은 시간 중 하나다. 주말의 여유와 즐거움은 사라진 채 월요일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날 하루를 버틸 1일 치의 책임감을 마련해 일단 문을 나선다. 그러면 새로운 하루가 열리고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또 시작한다. 회사로 옮기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고 마음은 답답하다.


월요일 오전 9시 즈음부터 1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출근길 행렬을 바라보고 있자니 느낌이 이상하다. 그 출근길의 틈바구니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회사로 향했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이 대조되어 스쳐 지난다. 나는 왜 월요일 출근 시간에 홀로 카페에 있는 것인가.






실은 어제까지 친구네 집에서 신나게 놀다가 하룻밤을 자고 친구의 출근길에 함께 집을 나왔다. 친구의 회사는 내가 가는 방향과 반대편이었고 우린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삼일이나 같이 있었는데 막상 헤어지고 나니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게다가 지금은 일주일 중 가장 분주한 월요일. 직장인의 출근 시간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든 채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 이방인처럼 덩그러니 서있었다. 잠시 잠깐이나마 우리나라에 일하러 혹은 관광을 온 외국인들의 마음을 느꼈다. 아주 익숙하고 당연해마지않던 내 나라, 심지어 내가 살던 곳인데도 시공간, 나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열차 시간은 오후 1시 50분이었다. 출발하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우선 서울역에 짐을 맡기고 아침을 먹든 뭔가를 하든 할 생각이었다. 1번의 환승을 거쳤고 40여 분이 걸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언제나와 같이 서울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캐리어가 들어갈 크기의 짐 보관함이 가득 찼으면 어쩌지 걱정되었지만 어디 한 군데는 비어있겠지 라는 대책 없는 생각으로 물품보관함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위치의 물품보관함은 역시나 모두 만석이었다. 스멀스멀 불안함이 올라왔다. 다른 곳들도 다 찼으면 어쩌지 생각하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화장실 근처 물품보관함이 몇 개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곧장 캐리어를 보관하고 노트북, 지갑, 에어팟 등 꼭 필요한 물건만 백팩에 넣어 짐을 간소화했다.


이제야 한결 양손이 가벼워졌다. 몸이 가뿐해지자 이제 배가 고파왔다. 배는 고픈데 살짝 졸음이 밀려오면서 몸은 나른하게 피곤한 상태. 우선 밥을 먹고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역내 식당을 둘러보았지만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많았고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보이지  않았다. 전날 밤 맥주를 마셨기에 간편하면서도 부대끼지 않고 깔끔한 걸 먹고 싶었다. 아무래도 역 밖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차라리 카페에 가서 우선 시원한 아이스 라테를 들이켜고 요깃거리를 시키기로 했다. 어딘가를 구경하거나 돌아다니기에는 조금 지쳤었기 때문에 쉬는 것을 택했다.






시청역 앞, 가배도. 카페의 차분하고 따뜻한 무드가 가득한 곳이었다. 상당히 넓은 규모로 오랜 시간 머물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헤테로토피아. 생소한 단어가 쓰여 있다. '현실 세계 속 나만의 다른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마치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 현실의 안에 있는데 나만 지독하게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  


1층엔 커피 주문과 베이커리, 굿즈 진열 공간, 창가에 기다란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고민의 여지없이 아이스 카페라떼와 그린 샐러드를 주문했다. 아침에 입맛이 없는 편인 나는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잠을 깨워줄 진한 아이스 라떼와 적당히 프레시하면서 포만감이 드는 샐러드가 제격이었다.


카페 내부를 자세히 보니 4층으로 운영되는 카페는 층별로 공간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1층부터 4층까지 시간의 맛, 사적인 쉼, 쉼의 공간, 문화의 방. 시간과 쉼, 공간이라는 단어를 누가 이렇게 적절히 배치해 놓았을까 생각하며 나는 2층 사적인 쉼으로 들어갔다. 창가를 따라 기다랗게 배치된 높은 테이블 위에 앙증맞은 샛노란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탁 트인 창밖으로 늦봄의 정취가 가득한 가로수가 한가득 시야에 담겼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꽤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다. 언제 나에게 또 이런 시간이 주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진한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카페인이 시원하게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는 신선한 샐러드를 음미하며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이 시간 동안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보지  않았다. 그저 차창 밖 풍경을 내려다보며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호사스러운 시간은 인생에 몇 번 되지 않을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떠올렸다. 같은 시각 바쁘게 사무실로 향했던 나의 과거 시간들을. 출근해서 보고해야 할 기획안과 오늘 진행할 회의 안건을 생각하며 출근하던 때. 월요일의 사무실은 다양한 풍경이 있다. 부서 일이 덜 바쁘거나 좋은 성과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땐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출근하는 발걸음은 사뭇 가볍다. 결코 출근하는 것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무탈한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 그리고 매일을 같이 일하지만 주말을 지나고 동료를 만난 것에 대한 반가움이 새삼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하루를 시작하는 사무실 분위기가 밝다.


반대로 사무실이 조용하지만 무척 폭력적인 침묵이 감도는 날이 있다. 같은 월요일 아침인데도. 이런 날은 지난주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후 빠르게 해결을 해야 하거나 당일 아침 급한 사건이 터졌을 때다.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다. 실무자의 행정 착오로 생긴 문제건, CEO의 갑작스러운 업무 지시건, 유관 기관과의 협업 결렬 등 다양한 변수와 요인이 작용한다. 예측할 수 없는 그 이유들로 인해 그날 오전 심하면 하루 내내 무거운 분위기에서 일을 하는 날도 있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분위기가 침울하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누구 하나 섣불리 말문을 트거나 농담을 건네기가 쉽지 않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란 이토록 다양하고 민감하다. 그곳은 생업의 공간이자 프로들의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곳이며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기도 하다. 어떠한 일종의 규율로 싸여있는 사무실과 자유와 평소보다 여유로움이 배가되는 카페라는 공간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오히려 새로웠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 시작할 일의 업무가이드를 읽었고 일하면서 쓰게 될 프로그램을 익혔다. 같은 일을 사무실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했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별 차이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자율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일의 능률이 더 높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일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일만' 하기에 생각 이상으로 방해 요소들이 많다.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와 상사의 부름, 타 팀이나 부서의 업무협조, 때로는 는 동료와의 수다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모두 업무를 잠깐 중단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로드타임이 걸리겠는가. 반면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일을 했을 때는 업무에만 집중해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를 잘 컨트롤해 업무에 집중한다는 가정 하에.






12시 즈음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서울역으로 와 KTX를 탔다. 이날 머문 카페는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아 선택한 장소였지만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난 곳을 업무 공간으로 삼는 것은 리프레시나 업무 효율 면에서도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가능한 조직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없겠지만 정형화되고 일률적인 공간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나의 일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일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소망이랄까.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워케이션과 같은 원격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업무 장소에  대한 제약이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평소와 다른 생경한 곳에서 업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의외의 장소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업무와 관련된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습관이나 생활과 관련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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