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by 곰마탕

어느 순간 2시간이 넘는 영화는 못 보겠고

잘해봐야 20~30분 정도 나오는 단편 드라마 혹은 애니메이션 영화만 멍때리면서 보고 있는 게

나의 감상 습관이 되어버렸다.

언제쯤 이런 편식이 고쳐질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몸이랑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movie_image.jpg 출처: 네이버 영화




제목이 워낙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던 영화였다.

꽤 극찬도 많고 호평도 많았지만

어느새 이 영화도 젠더 감성에 의해서 난리가 나 있더라

참 모르겠다.

영화는 정말 제목만큼이나 혼잡스럽고

정신없고 복잡하다.

특색 있는 그림체

다시 말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상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대체 이게 뭘까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영화 속 시선들과 말도 안 나오는 상황들까지

하지만 검은 머리 아가씨는 특유의 산뜻하고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시종일관 극을 이끌고 간다

아가씨를 좋아하는 선배가 가까워지고 싶어져

조금씩 다가가고 눈앞에 알짱거리는 것처럼

관객들 역시 조금씩 아가씨를 따라가고 그녀의 밤을 지켜보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재빠르게 걸어 나가던 아가씨는

조금씩 느려지게 된다.

그에 반해서 누구보다 느리고 주변에 다가갈 수는 있을까 싶던 선배는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저 눈앞에 알짱거리면서

선배 또 만났네요

뭐 어쩌다 지나가는 길이었어

라는 인사만 주고받던 선배는

연극을 통해서 당당하게 아가씨의 앞에 나타나고

주인공으로 성장하며 조금씩 가깝게 다가간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앞선 부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씨의 속도에만 따라가던 초반과 선배의 속도에 따라가는 중반이 아니라

점차 같은 곳을 향해서 서로를 맞춰 나아가는 서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선배 또 만났네요"

"뭐 어쩌다 지나가는 길이었어"

라는 똑같은 인사를 건네지만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진다.

물론 당연히 일본에서 나온 영화인만큼

말도 안 된다 싶은 일본 감성들이 가득하다.

좋게 말하면 주변의 풍경들과 모든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철학

나쁘게 보자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철학..?

사실 처음에는 아가씨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느라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영화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점점 선배의 이야기가 나오고 아가씨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깊게 생각해볼 시간이 나오더라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원 진학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룬 취업 준비

재치도 없고 재능도 없고 돈도 힘도 끈기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고 아기 돼지 같은 귀여움도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서는 세상을 헤쳐 갈 수 없어'

라는 부분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 그저 웃음이 나왔다.

글쎄 내가 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고 가진 재능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저 어정쩡한 재능을 남들이 없는 재능이라 확신하고 우습게도 뛰어오지는 않았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창문 밖을 나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