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
이 한마디 문장을 보면 항상 가슴이 울컥해진다.
또한 그가 생각하고 바래왔던 시대와 지금이 큰 차이가 없음에 다시 한번 서글퍼진다.
그에게 간절히 필요했던 대학생은 많아졌지만 과연 그들이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라고 묻노라면 감정은 다시 복잡해진다.
운동권에 나서던 선배들이 그래 왔듯 별것 아닌 나 역시도 저 문장 앞에서는 멍에를 짊어진 듯 가슴 한편이 항상 무거웠다.
하지만 내가 해왔던 행동이라곤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갖추었는가.
이러한 고민들과 생각 속에 갇혀 정작 바깥으로는 나오지 못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서 벽을 치고 창문 밖으로 안타깝게 쳐다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전태일 기념관은 이렇게 갇혀있는 나의 세상에 작은 노크를 해주었다.
전태일 기념관의 외벽에는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의 문장이 쓰여있다.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 [출차: 전태일 재단]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진정서의 내용은 본인의 고통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본인의 힘든 상황 속 기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이처럼 행동하는 일이 과연 쉬웠을까.
전태일과 관련된 전시는 2층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남겨져있는 그의 사진을 통해서 그가 거룩하고 대단하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텍스트와 사진에 쉽게 피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전시관에서는 다락방 속 하루의 모습을 재현해
앞서 읽었던 텍스트와 사진들이 우리의 눈앞으로, 현실 속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들어갈 때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허리를 굽혀가며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 슬픔을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시관 내부에는 전태일의 모든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노동자를 대표하던 아름다운 청년, 노동자의 대표 전태일,
나는 그를 추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항상 청계천에 위치해있는 동상을 찾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진을 찍지도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면서 그가 청춘을 바쳤던 시장을 돌고 생각하는 것이
전태일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의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곳으로는 발길을 옮기지 못했었다.
마치 억지로 현실을 외면하고 고개를 돌리듯 그를 더욱 자세하게 알기는 무서웠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념관을 방문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부족하다는 핑계를 통해서 내면에 있는 두려움을 감추며 지내어 왔지만
이제 이런 대학생이라도
아니 이런 사람이라도 필요한 이가 있다면
창문 밖으로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벽을 나아가 볼 수 있도록 한 걸음을 나아가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