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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Sep 19. 2015

내 유년시절이 행복했던 이유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지금은 놓아버렸지만, 몇 년 전 나는 일본어 공부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당시  6개월가량 꽤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장기간 해외출장을 가면서 놓아버렸더랬다. 그랬더니 이제는 다시 도루묵이다. 열심히 공부했던 대가로 남은 건 그나마 간신히 글자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마저도 가타가나는 종종 헷갈리지만 말이다.


어학에 재능이 아주 없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것도 아닌 나는, 여하튼 당시에 일본어를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각오가 똘똘 뭉쳐있었다. 그 결과로 일본어를  시작한 지 고작 1달만에 외운 단어가 조금 생겼다고, 영상물을 꺼내 들었다.


'이웃집 토토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성인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은 애니메이션. 왠지 모르게 지난 1달간 열심히 외웠던 기초 단어들이 숭숭 등장해서, 귀에 콕 들어와 박힐 것만 같았다.  


결론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고, 자막의 은혜에 감사했지만, 여하튼 당시엔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며 오랜만에 '이웃집 토토로'를 다시 보기로 했다. 정확히 13년 만이었다. 그런데도 '이웃집 토토로'의 오프닝 음악이 흐르는데 설레는 건 여전했다.


역시 '명작'이고, '명품'다운 콘텐츠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My neighbor Totoro, 1988)


1955년 일본의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 사이좋은 자매인 의젓한 11살 사츠키와 호기심 많고 장난꾸러기인 4살 메이는 아빠와 함께 이곳으로 이사 오는 것에 한껏 들뜬다. 병원에서 입원 중인 엄마의 요양을 위해 시골로 이사를 왔지만, 아이들은 낡은 시골집과 낯선 환경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사츠키와 메이는 시골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도시에서 낯선 시골로 이사 왔지만, 불편하거나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과,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 좋았다. 물질과 편리함에 물든 때 묻은 어른이 아니라, 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아이들이었기에 가능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두 자매의 시골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츠키가 처음 등교하던 날, 마당에서 놀던 메이는 도토리 보따리를 들고 살금살금 도망가는 이상한 동물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쫓아가 보니 뒷마당과 이어진 숲 속에는 도토리 나무의 요정인 '토토로'가 자고 있었다.


메이는 이 사실을 사츠키에게도 알려주었고, 두 아이는 토토로와 친구가 되었다.  밭에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토토로에 매달려 하늘을 날기도 한다. 나무 위에서 토토로와 함께 피리를 부는 기분은 최고다.


메이가 아픈 엄마에게 옥수수를 가져다 주려다가 길을 잃고, 그런 동생을 찾지 못해서 사츠키가 눈물이 나려 할 때도, 토토로는 함께 있어 주었다. 전용차인 고양이 버스를 불러와서 메이를 찾아주고, 두 자매를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 주기도 한다.   


그곳에서 엄마가 건강해진 모습을 보게 된 아이들은, 감기 때문에 외출이 늦어졌다며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엄마를 위해, 아이들은 몰래 옥수수를 놓고 간다. 그리고 토토로와 함께 나무에 앉아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핀다는 이야기.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계적인 감독으로 거듭나게 한 작품이다. 지금이야 너무도 유명해진 애니메이션의 전설이지만, 이전까지 주로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인정받고 있던 그가 대중들에게도 인정받게 된 것은  '이웃집 토토로' 때문이었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하야오의 작품들 중에는 '이웃집 토토로'보다 뛰어난 작품들이 더 많지만, 내게 최고인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이웃집 토토로'다.  

 

그것은 '이웃집 토토로'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와 이야기의 재미만이 아니라, 유년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시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만드는 계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 저랬다. TV 만화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들이 다 내 친구 같았고 , 만화의 주인공들과 실제로 만나는 꿈을 꾸곤 했었는데. 당시 난 동물들이 모두 사람처럼 말하는 줄 알았다. 진짜로!



여자아이였음에도 슈퍼맨이 되겠다며 담장 위에서 수없이 뛰어내렸던 기억. 꼬마자동차 붕붕을 진짜로 타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랬던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고, 무엇이든 들어주는 요술 손수건을 샀다는 동네언니의 말을 믿어서 그 손수건을 사겠다며 과자 사먹을 돈을 모아 동네 문방구에 갔던 일도 있었다.


엄마는 밤 늦게까지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나를 말리려고, 밤이 되면 뒷산에서 호랑이가 나온다고 하셨었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그걸 믿을까 싶지만, 당시 전래동화책을 열심히 읽었던 탓에 난 호랑이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그때부터 저녁 식사시간이 되면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말하는 호랑이가 나오면 잘 달래서 친구로 만들어야겠다는 야무진 기대도 했었더랬다.


 

누구나 저마다의 유년시절이 있을 것이다.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지, 어떤 군것질을 좋아했는지, 어떤 놀이를 하며 놀았는지 등은 각자의 고유한 추억이다.


하지만 그때가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엔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빠가 출근할 때 하드 사먹으라고 주시던 단돈 백 원에 행복했었고(당시 둘리바는 50원, 조스바가 100원, 부라보콘은 150원으로 '부르주아'적 상징이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들려주던 동화책은 듣고 또 들어도 재밌었다.


만화에 나오는 친구들은 내가 사귀었던 첫 번째 친구들이었으며 그 친구들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모험담을 만들었던 시간들은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다름에도 모두가 유년시절의 행복을 공유할 수 있음은, 아무런 불순물도 껴있지 않던 '우리 자신'으로서의 순수함을 온전히 표출했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기쁘면 기뻐하고 슬프면 슬퍼하면서 순수하게 반응했던 나이. 토토로를 만났을 때 '가짜?'라고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어주었던 사츠키와 메이의 모습이 어릴 때의 내 모습과 겹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울컥했다. 그 시절의 나를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싶어서 말이다.


기억에도 희미했던 시간부터 영화처럼 선명한 기억까지. 그러나 그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나는 분명히 존재했었다. 티 없이 순수하고 행복했던 모습으로. 그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언제부터 나는 그 모습을 잃게 되었을까.


토토로 덕분에 모처럼 유년시절을 회상해본다.


바람돌이, 호호 아줌마, 꼬마자동차 붕붕, 요술공주 밍키, 새롬이, 메칸더 브이, 영심이, 하니, 둘리, 이상한 나라의 폴, 스머프 등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때는 그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동네 친구들과 캐릭터 놀이를 하면서 만화친구들의 세계로 빠져들다가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던 유년시절의 나를 추억해 본다. 토토로에 매달려 하늘을 날던 사츠키와 메이는 그 시절의 나다.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이처럼 적절하게 다룬 콘텐츠가 또 있을까. 그래서 '이웃집 토토로'가 좋다. 보고 또 봐도 즐거울 수 있는 건, 과거 속 내 모습을 계속 들춰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절은 어린 시절이 유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맙다. 사츠키와 메이야. 너희를 보며 뭉클했고, 나의 유년 시절이 다시금 그리워졌다.


"고마워. 토토로!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떠오르게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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