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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Sep 23. 2015

'복면'의 권력화를 유도하는 대중과 사회

예능 '복면가왕'



MBC의 <복면가왕>이 인기가 거세다. 꽤 오랫동안 일요일 저녁의 시청률은 경쟁 채널들에게 넘겨주나 했더니, <복면가왕> 덕분에 모처럼 MBC는 일요일 저녁의 강자가 되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복면가왕>은 그 사람에 대한 배경과 선입견을 떼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평가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출연자들은 내가 누구인지, 나에 대해 알려져 있는 모든 배경지식을 내려놓겠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얼굴’을 가리고 등장한다. 관객들 역시 출연자의 이러한 의지에 부응하여 오직 ‘목소리’로만 판단하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프로그램은 취지를 잘 살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복면가왕>을 볼 때마다 다음의 의문이 항상 들곤 한다.



“과연 얼굴을 가린다고 우리의 선입견이 작용하지 않을까?”. 
“해당 가수가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과연 복면을 벗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그에 대해 더 이상은 선입견을 갖지 않을까?” 



역대 가장 오랫동안 가왕의 자리에 있었던 ‘클레오파트라’는 가면을 벗기  전부터도 이미 그가 ‘김연우’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그의 정체가 확실해졌을 때, 그가 가왕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는 건 관객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상대가 ‘아이돌‘이라고 여겨지면, 그것이 아직은  ‘추측’일뿐임에도, 더더욱 클레오파트라의 연승은 당위성을 가졌다.



클레오파트라의 장기집권에 대해 반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 역시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고 그가 최고 가수라는 것을 인정하는 입장이기에, 반가운 결과였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우리 모두는 습관적으로 타인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토대로 그를 평가하고 규정하는 것을 좇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최근 새롭게 등장한 가왕 ‘연필’에 대한 대중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체격, 키, 목소리 등을 판단해서 그녀가 누구인지 자유롭게 추리하는 과정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조금씩 대중들의 인식 속에는 ‘여자 클레오파트라급‘이라는 또 다른 계급장 혹은 자격증을 그녀에게 부여하면서, 후보자들로 언급된 이들에 대해 각자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단정 혹은 판단해 버린다. 


이는 <복면가왕>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늘 존재했지만, 우리가 ‘추리하는 과정’에 집중하느라 인식하지 못한 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1,2라운드에서 탈락한 이들이 실력파 뮤지션으로 여겨지던 사람들이었고, 반면 이들을 꺾었던 상대방이 아이돌로 밝혀졌을 때, 뒤에서는 항상 사람들의 반발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계급제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 신분을 결정하던 ‘혈통’은 더 이상 오늘날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만의 기준과 판단에 의해,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하나의 신분을 부여하고, 그것을 존속시킬 것을 강요한다. 


단순히 외모와 물질만이 이 시대의 신분을 결정짓는다고 하기에는, 개개인에 대한 다수의 판단과 선입견이 생각보다 강력하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제작되어야만 하는 현실이 그렇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에 대해 어떻게든 그 사람의 정체를 밝혀서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려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다. 


누군지 알지 못해도, 그냥 그 사람의 노래 자체를 즐기기만 해서는 만족할 수 없는 심리가 우리 각자에게 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될 때, 그것은 비극일 것이다. 


<복면가왕>에서 가수가 복면을 벗을 때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자신들의 편견을 깨뜨리거나,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느낀 사람들의 ‘놀람’의 감정은 향후 또 다른 선입견이 되어 해당 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복면가왕>의 '복면'은 누군가에게는 편견을 깨뜨리는 도구로 작용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더욱 신성시하게 만드는 도구로 작용하는 셈이 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복면가왕>을 '외모지상주의'가 아닌 '꼰대리즘'을 깨부수는 프로그램이라고 극찬했다. 관점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존에 만들어놓은 기준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복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단할 수 있는 요인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복면가왕>에서 복면만으로 대중의 시선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던 출연자들은 모두 무명 또는 오랫동안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져 있어서, 대중들이 그들에 대한 어떠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경우였다. 오히려 이들은 <복면가왕>에서 대중을 놀라게 한 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새로운 대중의 기준을 갖게 하는데 일조할 것이고,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신분 혹은 계급을 결정짓는 잣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만큼,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타인에 대해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잣대가 되어 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자신의 개성보다 타인의 시선이  우선시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복면’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스럽다. 복면으로도 감출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무언의 압박이 어느 순간 물 위로 올라오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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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MBC <복면가왕>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저 역시 <복면가왕>을 애청하는 시청자로서, 포스팅에서 말한 ‘복면’ 혹은 <복면가왕>의 부분은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언급한 것임을 양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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