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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Jan 05. 2016

'인턴' VS 'CEO'.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영화 '인턴'


저출산 시대다. 2016년 새해부터 포털사 메인에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및 고령화 문제가 연일 올라온다. 어떤 매체는 기획특집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대처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이고, 어떤 매체는 2750년이면 대한민국 인구는 산술적으로 '0'이 된다며 대규모 이민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경기불황과 실업대란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이제 경기침체 이야기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묵은 뉴스가 되었지만, 희망찬 소식만 듣고 싶은 정초부터 이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나오는 걸로 봐선, 올해도 경기침체와 청년실업 현상은 길고도 강력한 뉴스거리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고령화와 청년실업.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 두 현상은 모순적이다. 고령화로 인해 젊은 이들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일할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하려고만 한다면 누구든 일할 수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기불황과 고령화로 인한 직격탄을 맞은 건 고스란히 2-30대의 젊은 세대였다. 사상 유례없는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서, 한창 일할 나이에 일하기를 포기하는 젊은 세대들이 과반에 육박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렇다 보니 청년 세대들의 중장년 세대들에 대해 불신과 원망이 커지고 있다. 기성세대가 과거 이룩했던 노력과 땀의 결실은 현재의 부조리를 낳은 것으로 왜곡, 해석되고,  그 결과 일부는 불신과 원망을 넘어 분노와 조롱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윗세대의 희생과 노력에 대해 감사와 공경을 표현하는 건 허상에 불과하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보기에 젊은 세대들은 환경만 탓하고 노력은 하지 않는 '게으른 베짱이'에 불과하다. 가장 빛나야 할 청춘들이 아파하고 있는데도 어른답게 다독이고 공감해주는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2016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프다.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아픔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쉬이 치료되지 않을 것 같다. 슬프게도, 이 사회가 겪고 있는 통증은 어쩌면 산술적으로  인구수가 '제로'가 된다는 2750년에서야 비로소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 간의 갈등. 일자리 부족 현상이 낳은 이 지독한 슬픔은 과연 영영 해결될 가능성이 없을까.



영화 <인턴>은 세대 간 갈등 및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난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젊은 세대들의 이상향을 그려낸 영화다. 이상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영화 <인턴>이 그려내는 캐릭터들이 소통하는 과정 때문이다. 영화 <인턴>에서는 정규직과 인턴직, 청년층과 노년층이라는 세대 간, 계층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처럼 너무나도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90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에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아내기 어려웠던 때문인지, 영화 <인턴>에서는 인물 간의 '갈등'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인턴>은 70세 노인 '벤'(로버트 드니로 분)의 지혜와 연륜이 젊은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유쾌하고 긍정적인 어조로 풀어낸다.


 

70세 노인,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70세가 되어 은퇴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벤'. 하지만 벤은 은퇴 후에도 여전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인근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공원에서 요가도 한다. 그에게서는 은퇴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무력감이나 상실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모습은 밝고, 당당하며,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세계 일주를 다녀오고, 자신을 짝사랑하는 또래 할머니의 유혹도 받으며, 외국어와 요리를 배우는 모습 등은, 영화 시작부터 백발의 노인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를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시킨다.  


그런 벤에게 어느 날 새로운 일자리가 주어졌다. 설립 2년 만에 200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리며 급성장한 인터넷 쇼핑몰 '어바웃 더 핏(About The Fit: ATF)'의 시니어 인턴직이 그것이다. 은퇴 후에 다시 찾아온 고마운 기회. 벤은 40년간 전화번호부를 제작하던 회사에서 근속하면서 부사장까지 올랐던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을 내세워, ATF의 시니어 인턴직을 수행해 나간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있어요."
- By Ben



정장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기고, 오래된 낡은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벤의 모습은, 캐주얼 복장에, 종을 쳐서 소식을 알리는 자유분방한 ATF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권위적이고 조직적인 옛날 방식의 기업문화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니까. 하지만 외적인 모습과는 달리, 벤은 옛날 방식을 고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ATF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애쓴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폐쇄적인 것은 오히려 젊은이들의 사회인 ATF였다. ATF는 처음엔 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환경 때문도 있었겠지만, 구식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인 인턴사원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벤을 자신들의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는커녕, 아무런 업무 지시도 내리지 않은 채 그냥 방치해둔다. 덕분에 벤의 출근  첫날의 일과는 켜고 끄는 것도 쉽지 않은 노트북을 들고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그들이 벤을 뽑은 것은 벤을 원했거나 벤의 경험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정부 정책과 사회공헌이라는 기업 이미지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운영한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따라서 ATF에게 벤을 포함한 시니어들의 존재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무존재'에 불과했다. 귀찮은 존재마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ATF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대변한다. 맥 컴퓨터가 상징하는 디지털 사회. 인터넷망을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대인 관계보다 컴퓨터 다루는 기술이 더 중요해진 사회.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바뀌다 보니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사람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심지어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작은 실내에서 이동하는데도 자전거를 타야 할 만큼, 현대인들은 시간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영화 속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시간 절약' 때문이었다. 이동시간을 절약하고, 운동할 시간을 절약하려는 이유 때문에.

  

아마도 ATF는 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회에서, 당신은 필요 없다. 여기 있고 싶으면 그래라. 우리는 당신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없다.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벅차니까."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고령층을 대하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건 청년세대가 아닌 노년세대가 될 텐데도, 사회는 아직 노인 중심의 사회를 받아들이고 이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을 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매 순간 정신없이 뛰어다녀야만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의 고달픈 현실 때문이다.



고달픈 삶,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이토록 바쁘고 정신없이 살기 시작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혼자 있는 옆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늘 외롭다고 말한다. 그래서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리며 공감해줄 사람을 끊임없이 찾는다. 우리가 바쁜 것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까. 혹시 옆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외로워졌고, 그래서 외로움을 잊으려 자발적인 바쁨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는 벤과 줄스의 모습이 끊임없이 대비되어 나온다. 벤은 항상 여유롭고 평온한 반면, 줄스는 항상 바쁘고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벤과 달리, 줄스는 남편 및 딸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럼에도 외로움의 정서는 벤이 아닌 줄스의 몫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무덤에 묻히기는 싫어요."

- By Jules



30세라는 설정에서 보듯, 줄스는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2~30대를 표현하는 캐릭터다.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릴 정도로 일에 치여 사느라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많은데 딱히 마음을 터놓을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은 커져가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고  갈수록 회의감이 커져간다.


항상 최선을 다해왔는데 결과는 오히려 나빠질 때 오는 상실감. 정신없이 달려온 줄스에게 새로운 CEO를 뽑으라는 주주들의 요구는, 모든 노력과 열정을 후회 없이 쏟아부었지만 좌절과 실패의 성적표를 받는데 익숙해진 우리 사회의 청년들 모습과 딱히 다르지 않다. 입시를 위해 10대 시절 열심히 공부했는데, 학자금 대출과 취업난이 기다리고 있고, 간신히 취업문을  뚫고 들어가도, 열정 페이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야근과 밤샘이 허다하다.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고, 육체와 정신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함몰되기 직전이다. 삶 속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지독한 절망이 아니더라도,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루함과 괴로움이 무한 반복되는 삶. 그럼에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일 것이다.



벤과 줄스, 인턴과 CEO.


<인턴>은 70세 노인 '벤'과 30세 여성 CEO '줄스'가 주인공이고, 이 성별과 연령을 초월한 이 두 사람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두 캐릭터에 부여하는 의미는 인턴과 CEO라는 외형적인 설정 이상으로 확연히 대비된다.


영화 속 '벤'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컴퓨터 활용 능력이 부족하긴 해도, '벤'의 완벽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출근 첫날 혼자 노트북을 들고 씨름하는 순간에도, 벤은 여유롭고 침착하며 우아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주변 동료들 모두가 정신없이 일하고 있지만, 벤은 동요하거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벤은 ATF의 인턴이었다. 그러나 삶에서는 달랐다. 벤은 자신의 삶이 환경에 끌려가게 두지 않았다. 대신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끌고 갔다. 디지털 기기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홀로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서 있다 할지라도, 벤은 위축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노트북 키보드 자판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페이스북 사용법을 익히긴 했지만, 자기 자신을 내던지면서까지 무리하지도 않았다.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선에서,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동료들과 소통하고 싶은 바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다.


때문에 벤은 자신의 아날로그 성향과 전혀 다른 디지털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어떠한 혼란이나 갈등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에 새로운 것을 더하면서, 이전보다 자신의 매력을 더욱 뽐낸다.



캐주얼을 입은 다수의 ATF 직원들 속에서 혼자 정장을 입고 있는데도, 벤은 조금도 튀지 않는다. 오히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지 못하는 지름길,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용도로 갖고 다니는 손수건 등, 아날로그적 강점을 십분 발휘하여, 디지털형 인간인 동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며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사실 벤에게 ATF에서 겪는 모든 것은 도전이고 시험이었을 것이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부터, 인터넷 의류 쇼핑몰이라는 전혀 다른 업무 분야, 새파랗게 어린 선배 동료들, 캐주얼복을 입는 기업문화, 변덕스러운 상사 CEO 등.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인정받기란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여유와 침착함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벤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한다.  벤이 좌충우돌 겪는 시행착오가 깊이 다뤄지지 않은 것은, 러닝타임이 짧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벤'은 이상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70년의 삶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벤 또한 수없이 힘든 순간을 겪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영화가 벤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벤이 극 중 동료들과 맺어가는 관계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다. 손수건이 구시대적이라는 젊은 인턴 동기에게 손수건은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용도라고 말하는 벤의 모습은, 그가 70년간 살아오면서 건강하고 밝은 기운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타인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것은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을 때 가능하다. 벤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실패와 좌절의 상황 속에서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던 친구들이 있었으며, 그들과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노년이 된 벤은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손수건을 건네줌으로써 그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이런저런 지적질이나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옆에 있어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모습. 벤이 ATF 직원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리가 꿈꾸는 '진짜 어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 어른과 어른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 By Jules



진짜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럴 때 사람은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고, 그 여유로 타인과 진심 어린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이끌어가는 것은 CEO의 역할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벤은 인턴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최고의 CEO였다.



벤이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라면, 줄스는 허점이 많은 평범한 인물이다. ATF의 CEO이지만, 줄스는 삶을 경영하는 것에는 아직 미숙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우아했던 벤과 달리, 줄스는 매 순간이 불안하고,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늘 당황한다. 그래서 잠도 깊이 잘 수가 없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도 없다.


일벌레처럼 일하면서도 가족이 신경 쓰이고, 침대 위에서는 일이 걱정되어 노트북을 놓지 못한다. 일과 가족 모두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직원들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변덕 많고 함께 일하기 힘든 상사라는 악명만 높아진다. 가족들은 멀어져가는 것 같아 불안한데, 회사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며 주주들이 새 CEO 영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줄스는 지쳐간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삶의 주체는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창업했고 선택한 길이었지만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일에 대한 즐거움과 열정의 자리는 의무와 부담감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피로와 부담의 누적으로 항상 미팅자리에도 늦곤 해서 거래처(타인)의 신뢰도 점점 잃어가는 중이다.


자신의 삶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잃어버릴 때, 삶은 우리의 노력과 기대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잔인한 습성을 지녔다. 최선의 노력을 들일 수록 최악의 결과가 나오는 식이다. 줄스의 삶은 그렇게 흐르는 중이었다. 창업 2년 만에 2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두고, 다른 회사의 5년 치 성과를 9개월 만에 이룩했지만, 어느 순간 줄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이끌려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줄스는 ATF에서는 CEO였지만, 삶에 있어서는 앞에 닥친 일처리도 버거운 인턴사원이었던 것이다.



'소통'이라는 처방전.


영화는 완벽하고도 이상적인 '벤'을 통해, 평범하고 부족한 '줄스'가 다시 자기 삶의 CEO로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 <인턴>은 '줄스'의 성장 스토리다. 제목인 <인턴>이 지칭하는 인물 또한 벤이 아니라 줄스다.


줄스는 처음에 자신의 직속 인턴으로 배정된 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벤과 형식적인 짧은  첫인사를 끝내고 나서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랬듯이 벤의 존재를 곧바로 잊어버린다. 그러나 벤은 업무사항을 이메일로 보내겠다는 줄스의 말을 그대로 신뢰하며 이메일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메일은 오지 않았지만, 벤은 줄스를 재촉하기보다는 묵묵히 기다리면서, 대신 줄스가 원했던,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던, 사무실의 지저분한 어느 책상을 말끔히 치우는 것으로 줄스와의 소통을 시작한다.


벤의 소통법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생소한 방식이었다. 앞서 말했듯, 디지털화된 현대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치인 나머지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줄스가 그토록 싫어하는데도, ATF 직원들은 줄스 앞에서 보란 듯이 책상에 온갖 잡동사니를 던져놓는다. 덕분에 쾌적해야 할 사무실의 한 공간은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버렸다.


아무도 치우려고 하지 않던 책상 위 쓰레기들을 정리한 사람은 70세의 인턴사원 벤이었다. 벤의 행동은 줄스가 어쩌면 ATF에서 처음 받아보는 위로이자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분주한  ATF 사무실 내에는 즐거운 일이 벌어졌음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삶에 지쳐있던 직원들과 줄스가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CEO로 성장하는 것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줄스는 조금씩 벤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업무 지시를 내리고 싶지도 않았고 벤이 대타로 자신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불편하여 타부서로 트랜스퍼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으나, 줄스가 벤이 전하는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에 매료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리타분할 줄 알았던 70세 노인은 젊은 세대가 갖지 못한 지혜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포근함, 그리고 무슨 말이든 다 들어주는 넓은 아량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온화한 성품과 여유로운 자세에서 풍기는 모습은 매사 불안함 속에서 지쳐가던 줄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벤은 페이스북을 전혀 할 줄 모른다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동시에 페이스북 사용법을 기꺼이 배우려고도 하였다. 벤은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폄하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억지로 젊은 척하거나 청년들을 흉내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다가가는 것은 소통의 정석이다. 남과 소통하겠다고 애써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해서도 안 된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문명이 가속화되면서, 소통의 정석을 지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여 명이 모인  ATF에서도 이러한 소통의 정석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소통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ATF 사회에서 벤은 '진짜 소통이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줄스는 점차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에  익숙해질수록, 삶의 주체성도 회복되기 시작한다. 영화 결말에서 줄스는 외부 CEO 선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이전에 그녀가 노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상황이 흘러가니까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수동적인 반응이었다.

                              


 "1년 반 전에 혼자 창업해서 직원 220명의 회사로 키운 게 누군지 잊지 말아요."

- By Ben



벤의 말은 줄스를 예전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회복시켰다. 그 결과로 외부  CEO 선임 결정뿐 아니라, 남편과의 갈등도 풀린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일과 가정의 문제는, 줄스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는, 삶의 CEO로서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었다.



 내 삶을 스스로 경영하는 'CEO'로 살아가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수많은 '줄스'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그 삶의 주인은 그들 자신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환경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유다. 하지만 환경에 끌려가는 삶은 슬프다. 앞에 닥친 현상에 급급하는 것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한다.


누구나 삶은 힘들겠지만, '젊음'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부여한 수많은 요구들을 감당해야 하는 청년세대들은 정작 어떻게 자신의 삶을 경영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무방비로 삶의 경영 현장에 내몰린 것이다.  


극 중에서 벤은 이렇게 말한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 By Ben



이것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자신감이며 자부심이다. 주체적인 삶이란, 삶에 일어난 환경의 변화를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밝은 긍정의 에너지를 유지하며,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삶이다. 물론 쉽지 않다. 삶의 무게와 짐에 짓눌려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말조차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소통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제대로 된 소통법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영화 <인턴>은 우리들의 이상형을 등장시켰다. 70세 노인 벤은 '진짜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가르침과 지적질을 하면서 나이만 내세우는 노인이 아니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식견, 그리고 훌륭한 인격을 가진 참 어른을 말이다. 이 영화를 2~30대가 가장 많이 봤다는 것은 벤과 같은 진짜 어른을 만나고 싶은 젊은이들의 바람이 반영된 탓일 거다. 그만큼 벤 같은 진짜 어른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이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패배의식과 남 탓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젊은 세대가 지닌 가장 큰 문제다. 3포, 5포, 7포 세대 등, 가장 빛나야 할 청춘의 시기에 '포기'라는 단어와 짝지어 살아가는 상황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낳으며 상황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노년층에 비해 오랜 시간을 살아보지 못한 젊은 이들이 노인 세대와 맞먹는 침착함과 여유를 가지고 삶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젊기에 미완성이고 부족한 것 투성이다. 그래서 삶의 다음 순간을 더더욱 예측하기 어렵고, 그렇다 보니 기성세대보다 더 불안해하고 더 초조해한다.


영화 <인턴>은 젊은 세대가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타인과의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감독인 낸시 마이어스의 나이는 67세다. 따라서 영화 속 '벤'의 모습은 젊은 세대인 우리가 꿈꾸는 이상형이기도 하지만, 벤과 같은 또래인 감독이 원하는 자아상이기도 하다. 또한 기성세대를 대표하여 젊은이들에게 벤과 같은  멘토가 되어주지 못한  감독의  자기반성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벤과 같은 '진짜 어른'을 만나고, 또 벤과 같은 모습으로 늙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줄스처럼 진짜 어른을 만나서 인턴처럼 살았던 삶이  CEO처럼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경험. 그리고 벤처럼 자기 삶의 CEO로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삶을 살아가는 것.


                    


 "당신이 이룬 것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By Ben


벤의 대사는 자기 인생의 CEO로서의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감독의 메시지이자, 진짜 어른들인 이 시대의 '벤들'이 해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인턴>은 판타지 영화다.  인턴사원의 고달픔이나 직장에서의 갈등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일터는 세대가 하나 되는 화합과 소통의 장이며, 70세  인턴사원은 젊은 동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최고 인기맨으로 등극한다.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스토리다.


그러나 판타지는 인간의 소망이 담겨있다는 것에 그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인턴>은 제법 잘 된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 소통과 화합에 대한 판타지,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에서 CEO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판타지를 말이다.   

 



CF) 소통의 문제와 관련하여 국내 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의 메시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리뷰를 보려면 --> https://brunch.co.kr/@jhwhjn/13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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