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아비키 Jan 13. 2016

사랑에 대한 보고서, 그리고 인간 내면을 관찰한 기록

소설 '용의자 X의 헌신'

일본이 장르문학 강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추리문학 시장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며 수많은 킬러 콘텐츠들을 배출해 왔다. 국내에서도 <모방범>의 미야베 미유키나 <제노 사이드>의 다카노 가즈아키 등 유명 작가들은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며 자국 못지 않게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는 엄청나다.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일본 추리소설의 양대 작가라 할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 <비밀>, <방황하는 칼날>, <한여름의 방정식>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하면서 국내에서 '무라카미 하루히'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가장 많이 팔린 일본 작가가 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기사 참조 - "히가시노 게이고, 국내서 하루키 인기 뛰어넘나" 클릭)


이처럼 히가시노 게이고가 일본 추리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 <용의자 X의 헌신>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책은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웬만하면 들어봤을 법한 소설인데다 지금도 영화, 연극, 드라마 등 다른 콘텐츠 분야로 계속 확장될 정도로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한다.


<용의자 X의 헌신>. 대중성은 물론, 2006년 일본 최고의 대중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 작품은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 연극 등 OSMU(One source, multi-use: 하나의 원작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재생산되는 것)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2012년에는 이요원, 류승범 주연의 영화 <용의자 X>가 개봉되었으며, 그에 앞서 일본에서 2008년에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2014년에는 대학로에서 연극으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1년  친구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후 이런저런 이유로 하염없이 책꽂이에만 꽂혀있었던 이 책을 꺼낸 건 3년 전 여름이었다. 역시 추리소설은 여름에 읽어야 제 맛이니까.      

 



사실 나는 현대 추리소설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영화로 치면 <올드보이>나 <추격자> 같은 영화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들 중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다룬 영화들이 많았던 데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을 종종 본 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일본 추리소설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의 추리소설 독서는 주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 시리즈 같은 서양의 고전 추리소설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2011년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읽을 때까지, 현대 추리소설, 특히 일본 소설은 나의 독서목록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 2014년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은 나의 편견의 많은 부분을 깨뜨리는 데 일조했다. 애초에 그만큼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은 근거기반이 약했고 때문에 언젠가는 부서질 운명의 것이기도 했지만.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일본 추리소설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어느 작가를 신뢰하게 될 때, 그들의 소설은 주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그것이 설령 '일본의 추리소설'임에도 말이다.



본격 추리 vs 심리 추리.

사건보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동기를 추적하는 것에 집중


코난 데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 같은 서양 고전 추리물은 "누가 범인인가?"에 집중한다. 때문에 살인 현장에 누가 있었으며, 무슨 대화가 오고 갔고,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등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  하나둘씩, 사건의 단서들을 감질나게 제시하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추리"를 하도록 유도하고, 독자는 기꺼이 작가의 도발에 응하며 책을 읽어나간다.





반면 일본의 추리소설은 범인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범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내면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 추리"가 작품 전반에 깔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살인 현장과 범인은 과감히 밝혀진다. <모방범>에서도 독자는 이미 누가 범인인지 알고 시작했고,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이미 초반부에 여주인공 '하나오카 야스코'는 그녀의 딸 '미사토'와 함께 전남편 '도미가시'를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미 가시의 지속적인 협박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어쨌든 살인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남주인공 '이시가미'는 야스코 옆집에 사는 천재 수학교사로 야스코를 짝사랑하는 인물이다. 방음이 거의 되지 않는 일본식 연립의 특성상, 소설의 이시가미 또한 야스코의 집에서 일어난 소음과 야스코의 반응을 보며 살인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서양식 추리소설이었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추리소설의 핵심인 '살인자'의 정체와 그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 이미 밝혀진 마당에 더 이상 이야기를 끌고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야스코 모녀의  범죄현장뿐 아니라, 이들의 살해 동기와 살인 후 모녀가 느끼는 심리적인 갈등, 거기에 야스코를 사랑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들 모녀를 도와주는 이시가미의 협력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용의자 X의 헌신>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동안 일본 문학에서 자주 다뤄졌던 사이코패스 같은 소위 '미친 사람'이 없다. 오히려 죽은 도미 가시가 양아치로 그려져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도미가시조차 추리소설에 등장할 법한 정신 이상자는 아니다. 미미 여사의 <모방범>의 살인범들만 해도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던 것과 비교하면, <용의자 X의 헌신>의 인물들은 제목이 풍기는 어딘가 모를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나 특성이 오히려 철저히 배제된 느낌마저 든다.


야스코 모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며, 이시가미는 교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외로운 사람이긴 하지만 문제적인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관심분야인 수학에 몰두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그녀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줄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겠고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을 정도로 확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도미가시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구시나기'와 천재 물리학자로 구시나기의 친구이자 이시가미의 친구이기도 한 '유가와 미나부'는  이시가미와 야스코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추리소설의 구조적 특성에 따른 것일 뿐, 심리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구시나기는 처음부터 야스코를 용의자로 생각하는데도 야스코 모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 부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시가미를 용의자로 생각하는 유가와 또한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그에 따른 범인을 밝혀내야 하기에 그 임무를 철저히 하는 것일 뿐, "살인자니까 죽일 놈"으로 묘사하거나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는가"와 같은 분노도 표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이입할지 "선택의 고민"을 제시하는 심리의 추리


심리 추리소설임에도 <용의자 X의 헌신>은 한국소설은 물론, <모방범> 같은 일본의 다른 심리 추리소설에 비해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폭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지는 않는 편이다.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사랑했다", "야스코는 도미가시의 협박 때문에 괴로워했다"처럼, 비교적 담담한 문체로 심리를 묘사해낸다.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는 등장인물에 독자가 얼마나 감정을 이입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며, 후반부에 나타난 반전의 묘미를 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으려면 어떤 인물에 이입하여 읽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시가미의 입장이 되어 읽을 경우와 야스코에 이입하여 읽을 경우, 혹은 유가와의 눈으로 읽을 경우, 같은 반전이라도 독자가 받는 충격과 파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 추리가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을 찾아내면서 범인 찾기에 열중하게 만든다면, 일본식 심리 추리 (혹은 '사회 추리')는 작가와 두뇌싸움을 할 필요가 거의 없다. 대신 독자는 작가와 같은 전지적 시점이 되어 극 중 인물들끼리의 심리게임을 바라보고 "누구의 편에 서서 공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추리소설임에도 "한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선택"이라는 멜로적 느낌의 소설로 느껴졌던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책 제목을 생각해 보았지만, '헌신(獻身)'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알파벳 'X'가 전달하는 뉘앙스도 중의적이라 좋다. 이시가미가 가르치는 수학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부호(?)이자 '미지의 그 무엇'을 표현하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 게다가 비주얼적으로도 X라는 모양은 살인사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때문에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은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이면서도, '헌신'의 단어에서 보듯 희생이 내포된 사랑 이야기임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절묘한 제목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사랑이 발현되는 방식에 대한 보고서이자, 외로운 인간의 내면을 관찰한 기록



<모방범>이 읽고 난 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면, <용의자 X의 헌신>은 슬픈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휘말리는 스토리. 그래서 소설 속 이야기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모방범>이 인간의 심리를 주로 다루면서도 추리소설 본질인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면, <용의자 X의 헌신>은 오롯이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데 집중하는 느낌을 준다. 반전으로 제시된 또 다른 사건조차 이시가미의 심리를 대변하는 지극히 보조적인 장치일 뿐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찰" 내지는 "인간의 사랑이 발현되는 방식에 대한 보고"라고 볼 수 있다. 사랑과 살인을 결부시킨 소설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는 식의 집착으로 풀어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용의자 X의 헌신>은 집착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야스코 모녀를 괴롭혔던 도미가시는 야스코를 사랑해서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임에도 그에 대해 독자가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이유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인류 최고의 감정을 오히려 이시가미에게 부여했다. 야스코 모녀의 살인을 은폐시키는데 일조하는, 현실적으로는 벌을 받아 마땅한 인물임에도, 그의 내면에 깔려있는 순수한 사랑을 보게 되는 순간 독자는 그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측면에서 이 소설은 일본 심리 추리들이 갖는 특성인 "현 사회에 대한 고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1인 가구를 흔히 볼 수 있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카페 같은 곳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일본은 1인의 문화가 대세가 되었다.


예전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들었던 바로는, 독거노인의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자칫 사망한 후에도 발견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자치구에서 밑부분에 고유 버튼을 부착한 개인용 보온병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보온병 밑의 버튼을 누르면 해당 행정구역에 보고되는 시스템으로, 그날 아침 버튼을 누르지 않은 노인의 경우는 행정직원이 찾아가서 사망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의 왕래마저 사라져가는 외롭고 고독한 현대 사회. 주인공 이시가미 또한 주변인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외로운 인물이다. 고교 수학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과 거의 대화를 나눌 일이 없다. 대학시절부터 그가 수학에 빠져든 것은 수학을 좋아한 본인의 취향도 있겠지만, 타인과의 교류가 단절되어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크다. 유일하게 그와 대화했던 유가와 조차, 이시가미의 개인적인 내용이 아닌 수학과 물리학 이론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세상이 이시가미를 고립시켰는지, 이시가미 스스로 세상과 고립을 선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로움 속에 괴로워하는 이시가미의 현재 상황이다. 지독한 외로움이 싫어서 삶을 마감하고자 했던 순간에 야스코 모녀가 옆집에 이사왔다며 초인종을 눌렀고, 그것이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상을 향해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게 만들었던 초인종 소리. 단지 이웃에 이사 온 사람이라며 인사를 건넨 것에 위로를 받은 사람. 이시가미는 그날의 초인종 소리를 운명의 벨이라고 표현한다. 그날 이후로 살아가는 기쁨이 생겼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그때까지 그는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을 빼앗기거나 감동한 적이 없었다. 예술의 의미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하나오카 모녀를 만난 후로 이시가미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살충동은 사라지고 살아가는 기쁨이 일었다. 두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 세계라는 좌표에 야스코와 미사토라는 두 개의 점이 존재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P.392)  


우리는 모두 이시가미 같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때문에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마디가 중요할 것이다. 그것이 설령 무심코 건넨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에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심지어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지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그 본질에 충실했던 추리소설의 좋은 예 


모든 문학은 "인간"을 다룬다. 설령 사물이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치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순수문학이냐 장르문학이냐에 상관없이,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것이 여러 인간들의 "관계"를 다룬 것이냐, 인간 개인의 "내면"을 다룬 것이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며, 작가가 얼마나 인간에 대해 고민했느냐는 미사여구의 나열이나 복잡한 사건의 연계고리를 제시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추리소설은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작가들이 '추리'라는 장치에 집중한 나머지 자칫 '인간'은 사라지고 '사건'만이 돋보이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소설이지만 인간에 집중하고 인간에 대해 고민한 것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시가미를 비롯한 각 인물들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고민이 전달되기에는 분량이나 스토리, 설정 등 모든 면에서 적절하지 않았나 싶은 책이었다. 기본적으로 장르문학이 갖는 "재미"가 있는데다, 추리소설이 갖춰야 할 "긴장감"이 잘 살아난다. 사건의 범인과 살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구시나기 형사와 유가와가 이시가미와 야스코를 의심하고 취재하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오류나 모순점이 어떻게 밝혀질 것인가를 지켜보는 과정은 꽤 흥미롭다.


덕분에 한번 책을 잡으면 페이지는 순식간에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진한 여운과 안타까움까지 느낄 수 있다. 일본 특유의 담담한 필체 때문에 이시가미의 감정에 쉽게 이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독자가 인물의 감정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인물의 심리를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가 나았다. 아마도 여성작가이다 보니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낫지 않을까 싶다. 반면 독자의 공감이 보다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는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낫다고 본다. 간결하게 떨어지는 문체는 두 작가 모두 비슷하지만, 담담함을 넘어 때로는 완전히 3자의 입장으로 감정을 배제한 채 서술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독자에게 보다 자유로운 해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일본 추리문학의 마니아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갖고 있던 막연한 편견은 많이 깨졌다. 설령 이것이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특징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일본 추리문학의 양대산맥인 이들 작가들의 소설이 잔혹하거나 끔찍한 묘사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리뷰 읽기] ​


글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아요와 공유, 구독을 눌러주세요^^



눈이 펑펑 내렸던 하루였습니다. 강추위 때문에 빙판길이 될 것 같은데, 독자분들 모두 외출할 때 빙판길 조심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