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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Nov 21. 2021

'들어주기'와 '말해주기', 그 따뜻한 위로의 방식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는 섬세한 심리를 다루는 추리소설작가로 잘 알려져있다.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그는 극의 초반부터 '범인'을 공개하지만, 막판까지 독자가 눈을 뗄 수 없는 강력한 몰입경험을 제공했다. 거기에 모든 독자들에게 한 방 먹이는 강력한 반전으로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제법 긴 여운도 함께.


이후로도 여러 추리소설 (하나같이 모두 인기작이다)들을 선보이며 국내에서도 탄탄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지만, 2012년에 발표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물이 아닌 다른 장르를 선보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장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한 책이다. 한 단어로 딱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판타지 힐링 성장 드라마'라고 설명하면 어울릴려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촘촘히 연결된 탁월한 스토리텔링!  


소설은 총 5장 구성으로 되어 있다. 챕터별로 독립된 옴니버스식 에피소드가 전개되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소설의 전체를 형성한다. 물론 이런 구조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만의 독특한 구성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따로 또 같이' 구조의 이야기 구성은 웬만한 필역의 작가들도 쉽지 않을 만큼 기본적으로 기획 능력이 매우 뛰어나야 가능하다. 유명세에 버금가는 작가의 역량과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보니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모든 내용의 아구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게 된다. "미스테리 사건 속 범인찾기" 같은 스릴러 추리는 없지만, 챕터별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던 내용들이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알게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추리'의 기쁨을 대체하기에 충분하다.



  그 시절, 외로웠던 사람들의 마음이 머물던 공간  


이 책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환광원(우리 식으로는 '고아원') 출신으로 고물 자동차를 훔친 세 젊은이가 이 소설에서 나쁜 행동을 했던 유일한 인물들이다. 그마저도 크게 쳐줘서 좀도둑 수준(그마저도 실패한)인 이 세 젊은이들은 훔친 자동차가 작동하지 않자 근처에 쓰러질 것처럼 낡아버린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는다. 그 잡화점이 한 때 동네 사람들의 고민상담을 해 주던 곳이라는 걸, 그리고 그 낡디 낡은 장소가 시간이 뒤섞이는 신비한 공간이며, 그곳에서 그들도 과거의 사람들처럼 위로를 받게 될 거라는 걸 상상도 못한 채.                                                              


자동차 절도범이 되기 싫은 젊은이들이 피신한 잡화점. 그 때 밖에서 누군가가 고민상담 편지를 넣는다. 그 편지는 1970~80년대로부터 온 편지다. 잡화점 안은 21세기 현재, 그리고 바깥은 몇 십년전의 과거.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축으로 안과 밖의 뒤섞인 시간들 덕분에 소설 챕터별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그 가운데서  소개되는 다양한 이들의 사연들과 그들을 향한 잡화점 주인 할아버지(과거)의 조언은 21세기를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미래 세대'인 백수 좀도둑 청년들(현재)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러면서 작가는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노인의 조언이 어떻게 그들의 남은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뜻한 어조로 풀어가고 있다.




  고독을 친구삼아 살아가는 시대.


모두가 고독 또는 외로움을 친구삼고 가는 시대다. 이 시대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영유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가 안고 있는 스트레스와 무거운 인생의 짐은 날로 커지는 것만 같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손에 맡겨져 길러지는 영유아들은 부모의 관심을 호소하고, 10대들은 학업 스트레스로 지쳐간다. 20대들은 등록금과 취업난에 허덕이고, 30대들은 직장과 결혼과 육아문제로 괴로워한다. 40대는 경제의 주역이라는 이름 하에,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국가에서도 가장 많은 의무를 강요받고 있다. 50대는 퇴직의 문제로, 60대와 70대는 건강과 노후가 걱정이다.


어느 세대 하나 불안하고 즐겁지 못한 상황에서, 암울하게만 보이는 미래는 우리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한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마음을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인류 역사상 인구가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고 거리만 나가도 여기저기에서 치이는 게 사람인데,  많은 이들이 정작 친구는커녕, 한번이나마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조차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라도 타인과의 '연결'과 '소통'을 기대한다.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온라인상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받는 행위가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SNS가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출처: 박상혁 작가 <on the roof> (경기일보, 2013.12.30)0


하지만 SNS에서 듣는 위로와 조언에서 '진정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 모두, 이를 처음부터 인지하며 받아들인다. 스피드와 가벼움을 추구하는 온라인의 특성상, 고민상담과 그에 따른 조언은 가볍고 일차원적이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고민의 나눔과 위로 건네기는 온라인 상에서 일종의 "의식"이 되어버렸고, 심할 경우 "유희"가 되기도 한다. (물론 제보자와 조언자가 눈치껏 맥락과 분위기를 살피며 암묵적 합의에 도달할 때 그렇다.) 때문에 인생의 선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고민들, 밤새 머리를 싸매고 또 싸매도 답을 내릴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사람들의 고민을 온라인에서 푼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SNS는 현대인들에게 거의 필수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고독한 21세기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자 여기저기를 방랑하기 때문이다. 실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효과적인 대안임을 알면서도, 직접 대면할 용기가 없거나 귀찮아서, 또는 면대면의 아날로그 방식이 이제는 너무 어색해져 버려서,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실제의 만남을 기피한다.


대신 관계의 진정성이 낮은 것을 알면서도 가상 세계에서 연결되는 익명의 관계를 택했다. 많은 이들이 SNS에서  실망하고 상처받아 은둔하는 일을 반복하는데도 SNS의 파워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상업성'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


쉽게 표현해서, "이용자(타겟)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이는 '상업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 고객이 어떤 문제(고민)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서 그것을 제대로 '해결'해준다면 그 제품 혹은 서비스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해결의 방법은 비단 상업적인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그리고 이들을 닮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지니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을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원한다. 물론 여기서의 해결은 내 자신이 내릴 결정을 위해 방향 제시를 해주는 조언을 말한다. 최종 선택은 나의 몫이니까.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 누군가.

내 고민을 공감해줄 수 있는 그 누군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그 누군가.


우리는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그런 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당연했다. 진정성에 기댄 관계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이 책은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공감'한다.


냉정하게 봤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잡화점의 조언이 뻔하게 들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조언들 중 뻔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모든 조언들은 다 뻔하다. 그러나 그 뻔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드는 것이 조언의 힘이며, 그 따뜻함을 온전히 전달해내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다. 뻔함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능력.


석사시절 어느 수업의 교수님은 "뻔함을 넘어서는 '대안적 감성회로(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 공식을 새롭게 만드는 것)'를 만들"라고 하셨지만, 때로는 뻔한 회로라 해도 그것이 지쳐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다면 굳이 그걸 타파할 이유는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스토리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옴니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성 또한 다른 소설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뻔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라도 읽어가면서 짜증나거나 허탈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아마도 책 전반에 걸쳐 현대인들의 고독과 내면의 문제에 집중하려고 했던 작가의 고민이 진하게 담겨있는 덕분이 아니었을까.


남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일은 대개 분별력 있고 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분이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부러 미숙하고 결점투성이인 젊은이들로 했습니다.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라고는 단 한번도 없었던 그들이 과거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우선 나부터 무척 궁금했습니다.

- p.450  (옮긴이의 말에 인용된) 작가의 말
                               



[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 헌신> 리뷰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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