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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Nov 19. 2021

콘텐츠에 담겨진 심리적 차원에서의 '진정성' 탐구 2

<펩시> 2004_에고(Ego)에서 존재(Being)로 가는 중간


본 글은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연구하던 석사 시절, 스토리텔링 토론 수업에서 작성했던 리포트를 기본으로 한다. 사례로 언급한 광고(브랜딩), 광고(제품), 예능(TV 프로그램)을 제작 또는 소비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진정성'을,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주관적 입장에서 풀어보았다. 원문이 2015년에 작성되었기에 본문에 제시된 사례들은 다소 올드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공유한다.



[1편 먼저 읽기​]




한 사람의 영향력. 그 사람다움, '존재(Being)'를 보여준 콘텐츠_ <펩시 2005>  


2005년 제작된 <펩시콜라_콘서트편> TVC는 내게 각별한 작품이다. 당시 난 직장생활 3년차, 광고계 입문은 1년 반 정도 된 주니어 AE였는데, 펩시 브랜드를 담당한 덕분에 펩시콜라 TVC의 기획부터 스토리텔링, 모델, 촬영, 편집, 심의 등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광고주였던 펩시인터내셔널은 <Dare for more>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한동안 글로벌 축구선수들을 모델로 하는 정책을 고수했는데, 2004년 펩시의 얼굴을 맡았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펩시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초대형 모델이었다. 베컴만으로도 엄청난데, 스토리텔링 또한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시키는 구성으로 진행됐으니 당시 펩시는 TVC를 단순 광고가 아닌, 한편의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던 것 같다.


2004 Pepsi <Dare for More> campaign with Beckham.


하지만 펩시의 해당 전략은 결과적으로 지불한 비용에 비해 매출이나 브랜드 성과면에서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요즘 같은 유튜브 시대라면 통했을 전략이었지만, TV가 위풍당당한 미디어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그 시절에는 속된 말로 "실속없는 돈 낭비"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펩시 광고에 열광했지만, 로마병사 옷을 입은 베컴에 열광했지 펩시 브랜드에 열광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베컴이 펩시 모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하지만, 2004년으로부터 몇년 지나지 않았던 2010년 이전에도 이미 펩시의 <Dare For More> 캠페인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져갔다. 매우 수준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영상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광고를 보면 알겠지만), 메인모델 베컴 외에도 조연으로 출연하는 이들 또한 호나우딩요, 토티, 트레제게 등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이들이 조연일 정도니, 펩시가 이 캠페인에 투자한 비용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을 것이 확실하지만, 펩시의 2004년 캠페인은 투자대비 효과(ROI)는 가히 최악인 실패사례라고 단언할 수 있다. 광고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으나 코카콜라와의 브랜드 파워 격차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펩시만의 "도전적이고 발랄한 이미지"가 강화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광고 영상 자체는 퀄리티가 엄청나다. 2022년에 봐도 이질감이 없는, 어쩌면 요즘 광고보다 더 세련되다는 느낌도 든다. 역시 "자본"의 힘!!) 


https://youtu.be/8CUVkgSPLOs

2004 Pepsi Commercial <Medieval Fight> with Beckham et. al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덕분인지, 펩시는 2005년에 전략을 바꾼다. 글로벌로는 여전히 대형 모델과 비싼 제작비를 투입하는 전략이 지속됐지만 2004년보다는 덜해졌고, 국내에서는 한국펩시 임직원들과 함께 논의하여 보다 "효율성을 강조한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모델과 제작비를 줄이고 미디어랩 비용을 늘리는 한편, 국내 소비자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국내 스타'를 모델로 하는, 이른바 "로컬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 최고 톱스타가 나와도 베컴 모델료와 비교가 안되겠지만, 당시 우리가 최우선으로 고려한 부분은 펩시의 "'즐겁고 유쾌한 이미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 탑배우를 기용하여 기승전결의 멋진 영화를 찍기 하기 보다는, 즐거운 분위기를 잘 전달하여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시키는데 집중한 것이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검토되고 긴 논의를 거친 끝에, 우리는 2005년 펩시 한국 광고의 컨셉을 '콘서트'로 결정했다. 젊은 이들이  다함께 즐거워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펩시의 이미지와도 잘 매칭된다고 보았던 때문이다.


그 결과, 2005년 국내의 펩시콜라 광고모델은 ‘자우림’이 발탁되었고, 그 중에서도 보컬 ‘김윤아’가 메인모델을 맡는 것으로 정해졌다. 촬영은 3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8시면 버스가 끊겨버리는 경기도 어느 한적한 읍내 구석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모인 사람들은 나를 비롯한 광고대행사 동료들과 펩시 광고주 및 촬영감독과 자우림, 그리고 대부분 중고교생들로 구성된 엑스트라들까지 포함해 대략 250명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균 15초, 길어봐야 30초 남짓한 TV광고를 찍기 위해 12시간 넘게 촬영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광고모델, 특히 연예인들의 경우, 시간이 예정보다 조금 길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융통성 있게 합의해주는 편이지만, 대신 촬영은 무조건 메인모델의 촬영분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이때 펩시광고 촬영은 김윤아의 건의에 따라, 엑스트라들 장면 -> 엑스트라와 자우림 장면 -> 자우림 단독장면 순서로 진행되었다. 엑스트라로 소집된 사람들이 학생들이라는 이유였다.


김윤아는 학생들이 자신의 팬이라는 이유로 힘든 광고 속 엑스트라 역할에 지원해서 와 준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원래는 학교에 있어야 할 학생들인만큼 이들이 광고촬영에 뺏길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버스도 일찍 끊기는데 여자아이들이 많았던 것도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자신의 촬영분이 미뤄질수록 종료시간도 늦어지기 때문에 피로가 쌓이는데다, 자우림이 그 다음날 바로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필요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는 정중하면서도 너무나 확고해서, 촬영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탭진들은 미리 작성했던 촬영계획을 다시 수정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촬영은 그녀의 요구대로 일반적인 촬영 동선과 정반대로 엑스트라 장면부터 진행되었다. 그날 공연장 뒤쪽에서 엑스트라들이 열광하는 모습이 풀샷으로 보이는 단순 장면을 찍는데만 3시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됐다.


게다가 자우림은 이미 오전 10시부터 촬영장에 도착해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시작했던 상태였다. 광고 촬영이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고 자우림의 촬영이 저녁 5시부터 시작된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대기한 시간은 약 7시간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동안 자우림은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면서도 촬영진을 재촉하거나 지루해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촬영분이 시작되자, 오랜 기다림도 무색할만큼 밝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촬영을 이어나갔다. 너무 즐겁게 촬영에 임해서 지쳐있던 감독과 스탭들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쉬는 시간에 김윤아에게 “즐겁게 촬영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더니, “나도 너무 즐겁다. 촬영이 아니라 공연하는 기분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독 또한 “이렇게 즐겁게 촬영하는 것은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촬영은 저녁 7시에 학생들이 돌아간 이후로도 밤 2시까지 계속되었지만, 극도로 힘들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모두들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자우림이 출연한 펩시광고는 2년 동안 광고회사에서 진행했던 모든 광고들을 통틀어 가장 유쾌하고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던 작업이었다.


https://youtu.be/dkTlhBuoVxM

Pepsi TVC  <Dare for more 2005>

학생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단순히 팬서비스나 이미지 관리 때문이었다고 보기에는 당시 촬영장에서 그녀가 보여준 긍정의 에너지가 상당히 컸다. 진심이 아니었다면 그 긴 시간을 기다리고 촬영하면서도 끝까지 웃고 즐기는 모습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20년 경력의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 모두가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팬을이 멀리서 자신을 보러 와 준 것에 자칫 도취될 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으며, 그 모습은 그때까지 자우림에 관심이 없던 내가 팬이 되도록 만들었다. 물론 '김윤아'의 팬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거고, 그녀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인성을 더 좋아한다고 해야 맞을 테지만.


시간이 흘러 2010년 MBC에서 <위대한 탄생> 프로그램이 방송되었을 때, 김윤아도 5인의 멘토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었다. 그녀가 했던 여러 좋은 조언들이 있었지만, 당시 모든 멘토들을 열광시키던 맑은 목소리의 11살 김정인 양에게 김윤아가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 학생 시기에 연예계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면서 불합격 버튼을 눌렀던 적이 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데, 그것은 2005년 광고촬영장에서 보여준 그녀의 행동과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언제나 당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아도취나 자기만족의 에고(ego)처럼 보이기보다는 비잉(being)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콘서트장에서나 광고 촬영장에서나 그녀의 '비잉'은 다를 게 없었다. 광고일 뿐인데도 그녀는 촬영하는 8시간동안 내내 립싱크가 아니라 실제로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 진짜 공연이 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촬영 내내 신나게 웃고 뛰면서 팬들과 그 시간을 즐겼었다. 덕분에 우리는 광고촬영장인지 공연장인지 모를 그 장소에서 금요일의 밤샘 야근에도 덜 지칠 수 있었다.


Pepsi 2005 <Dare for more> 스틸컷.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의를 지니며, 이는 각자가 지닌 성격과 성향, 취향, 가치관, 경험 등이 어우러져 '그 사람다움', 즉 'being'을 완성한다. 'being'은 개인의 '개인다움, 즉 '존재감' 및 '개성'을 구현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being'은 개인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매우 동적이며 수시로 변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심지어 같은 개인이라도 말이다. 따라서 'being'은 개개인에게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반성, 그리고 선택을 요구한다. 스스로의 노력과 순간순간의 선택에 따라 'being'은 긍정적이거나 또는 부정적으로,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 사람'의 영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 '한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 된다. '사람'의 존재는 1명, 2명처럼 단순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1명은 때로 100명보다 강할 수 있고, 1만명이라도 특색없는 '무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통해, 한 사람이 보여준 긍정과 열정의 에너지,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타인 한 사람의 'being'을 경험하기도 했고, 또는 나 자신이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며 나 자신으로서의 'being'을 보여주는 경험도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being' 또는 타인의 'being'을 발현하는 순간을 경험했고,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개인의 'being'은 진화, 발전, 성숙해진다.


콘텐츠에 긍정의 'being'이 담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콘텐츠는 다수가 즐기는 것이 일반인만큼, 해당 콘텐츠에 참여한 개인의 'being'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록, 그 콘텐츠가 갖는 영향력 또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텐츠는 기획, 제작, 참여(출연), 유통, 그리고 소비의 단계마다,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뻔한 말이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마인드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수많은 유해 콘텐츠의 제작, 불법적인 유통, 출연자들의 문제적인 행동,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복제나 악플 등, 우리가 콘텐츠의 이용과정에서 목격하는 수많은 부정적 행태들은 모두 부정의 'being'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런 콘텐츠들은 생명력이 짧다.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다 어느순간 그 부정적인 부분이 콘텐츠 자체를 잠식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반면, 긍정의 'being'이 담긴 콘텐츠는 갈수록 영향력이 더욱 강력해진다.


자우림의 펩시광고는 긍정의 'being'이 담긴 콘텐츠였다. 그 기쁨과 긍정의 기운이 전해졌는지, 이 광고는 2004년 집행했던 글로벌 모델 ‘베컴’ 버전이 나갔을 때보다, 판매량과 브랜드 제고 면에서 훨씬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 당연한 결과였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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