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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Jul 17. 2021

콘텐츠에 담겨진 심리적 차원에서의 진정성 탐구 1

 <도브> 2013_에고(Ego)에 집중한 구심력, 그 안에 담긴 진심

본 글은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연구하던 석사 시절, 스토리텔링 토론 수업에서 작성했던 리포트를 기본으로 한다. 사례로 언급한 광고(브랜딩), 광고(제품), 예능(TV 프로그램)을 제작 또는 소비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진정성'을,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주관적 입장에서 풀어보았다. 원문이 2015년에 작성되었기에 본문에 제시된 사례들은 다소 올드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공유한다.




'진정성'에 대한 외침이 공허해진 시대


'진정성'이 중요해진 시대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누구나 의견을 자유로이 개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는 소위 '그럴 듯해 보이는' 가식과 허상만으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모든 것이 가볍고 즉흥적이다. 가상과 허울의 창고에서 발견한 진정성은 더없이 반짝거리는 보석과도 같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작금의 쏟아지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접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고민하는 것은 어려운 난제다. 종종 고통스럽기까지 할 만큼. 이미 문화콘텐츠의 말초적 소비와 생산이 보편화된 상황이니, ‘진정성’이 머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소멸하여 후에는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개념으로만 남게 될 것은 아닐지에 대한 상상이라면 차라리 쉽겠다 싶다.


일회성 콘텐츠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진정성’을 논하는 경험은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곱씹을 수록, 실재할 수 없는, 하지만 그래서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 같은 허상처럼 느껴지곤 한다. 스스로를 '예술적'이라며 자화자찬에 빠진 ‘데까당스(descadence)’나, 자신의 저속함을 감추며 비싼 척 하는 ‘키치 (kitsch)' 사조에서조차 ’진정성‘은 고리타분하고 한물간 관념으로 치부되는 때문일테다.


그럼에도 모두가 아직은 '진정성'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데까당스'던 '키치'던, 또는 '도덕적 우월감' 같은 말도 안되는 착각일지언정 말이다.


[데까당스]
로마 제국이 난숙(爛熟)에서 쇠퇴 · 파멸로 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병적이고 향락주의적인 문예풍조를 모델로 하는 19세기 프랑스 문화사조

[키치]
천박하며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생산된 싸구려 상품 등이 마치 훌륭한 진품인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하는 현상으로, 인기만 쫒는 대중문화의 부정적 속성을 언급할 때 주로 인용됨

 

'진정성'을 한 단어로 번역하기란 어렵다. 영어로 authenticy는 진위성에 가깝고, sincerity나 integrity는 신의에 가깝다. 그만큼 어려운 단어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성에 대한 정의는 한 단어로 규정되기 어렵다. 진심(true heart), 정직 또는 솔직함(honesty)으로 볼 수도 있고, 때로는 신의(integrity, sincerity)나 진위(authencity)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생각을 파생시키다보면 진실(truth) 또는 사실(true fact)의 협의적 개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만큼 '진정성'은 어렵고 광범위한 개념이며, 그래서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본 글에서는 진정성은 일반적인 감정을 넘어서, 우리의 감수성에만 소구하는 것이 아닌 '설득'까지 가능한 부분으로 정하려고 한다. "눈이 오면 봄이 온다" 같은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감성에서도 진정성은 느껴지지만, 창작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콘텐츠의 맥락 속에서 "어?" 하게 만드는, 강력한 임팩트를 던진 부분을 진정성의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콘텐츠를 접해왔는데, 어떤 특정 부분에서 지울 수 없는 강력한 인상 또는 놀라움, 충격을 느꼈던 소수의 콘텐츠만 기억한다.


때문에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성'이란 '거짓, 날조, 왜곡' 등의 반대어가 아니다. 창작자 입장에서의 진정성은 1) 자신의 신념(삶의 가치)를 콘텐츠의 어떠한 유형과 방식으로 담아야 할지에 대한 결정과, 2) 콘텐츠 속에 내포된 수많은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들이 본인이 의도한 내용을 최대한 왜곡과 오류없이 제대로 전달(deliver)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과정 또는 행위의 결과다.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의 진정성일종의 '멈춰섬'이다. 콘텐츠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흐름을 따라 소비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놀라움', '충격', '감동' 등을 받게 되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창작자의 '진심'이 콘텐츠의 맥락 속에서 효과적으로 증폭되고(amplify)있는지에 대해서 곱씹는 것도 콘텐츠의 진정성을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주어진 임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소비한 콘텐츠에서 진정성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이것이 매우 주관적인 판단일 것이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향유하는 과정에서 나를 멈춰서게 했던 콘텐츠는 뭐였더라?"

"나는 콘텐츠를 소비하던 과정에서 그 때 왜 멈췄었는가?"

"나는 왜 그 콘텐츠에게서 강렬한 인상이나 놀라움을 느꼈던가?"


콘텐츠 밖에 있는(창작자가 아닌 소비자는 어찌되었건 완성된 콘텐츠의 외적 요인이므로), 하지만 그와 연관된 감정을 회고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기록을 남겨보자. 어쩌면 그것이 표면의 가슴을 울린 일차원적인 감동이나 감정을 착각한 '키치적' 행위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알고보니 걍 '잠깐의 감동'을 받는 게 전부였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용도 없으면서 허황되게 쓰고 있는 것 같아 이 순간에도 심란하다...)  



"에고(Ego)"에 집중한 구심력, 그 속에 담겨둔 진심_ <도브 2013>


'Dove'의 광고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2013)


<도브>의 사례를 떠올렸던 것은 다음의 의문에서였다.


광고는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시장을 강타했던 이 영상을 본 것은  2014년 봄이었다. 다가오는 4분기 마케팅 방안을 논의하고자 열린 브레인스토밍 회의에서, 신입사원들이 케이스스터디로 해외광고 사례를 발표할 때였다. 당시 10여 편의 광고영상이 소개되었는데 그 중 <도브> 광고는 단순 이미지광고로 보기에는 담고 있는 메시지의 힘이 유독 강력했다.


광고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화가는 인물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묘사한 설명과 다른 이들이 그 사람에 대해 묘사한 설명을 듣고, 그 들은 것만을 바탕으로 (한 사람에 대한) 자화상과 초상화를 그린다. 화가는 그렇게 동일한 방식으로 여러 사람의 얼굴을 그렸는데, 완성작들은 전부 남들이 묘사한 나의 모습이 나 스스로가 묘사했던 모습보다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와 함께 광고는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와 도브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마무리된다.

 


'감동'에 소구하는 무수히 많은 광고들이 있지만, ‘광고’라는 분야가 그러하듯 감동스런 영상의 마지막이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광고물임을 알게 되는 순간, 앞서 받았던 감동이 식어버리는 것은 많은 이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만큼 '상업성'과 '감동'의 사이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도브>의 2013년 광고는 이처럼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간극을 너끈히 넘어버렸다는 점에서 달랐다. 단순히 등장인물들이 일반인들이었다는 점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의 극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연출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쳐도, 콘텐츠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광고는 여전히 "멈춰서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설령 교묘한 연출이라 한들 이는 창작자 입장에서의 진정성을 훼손할 뿐이다.)


"외모는 경쟁력"이라는 것이 당연해졌고, 메이크업, 성형, 다이어트, 패션, 헤어 등 외모를 가꾸는 산업이 갈수록 호황인 시대다. (외모를 중시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외모지상주의의 거대 담론 속에서, 외모를 타고나지 못했거나 경제적 이유나 심리적 두려움, 그 외의 여러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외모 가꾸기를 시도할 여력이 없었던 사람들이 느낄 소외감과 열등감이 철저히 배제되는 것은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도 어려워졌다. 개인에 대한 사회의 집단적 폭력이라고 하기엔, 이미 개인들 스스로가 먼저 자기자신에 대해 가혹한 평가와 자비없는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도브 광고가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브'의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스틸컷 (2013).


이 영상은 동안 미모, 남신, 여신, 얼짱, 몸짱 등 외모 찬양의 뉴스헤드라인이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성형외과가 번성하는 작금의 상황을 비판하지 않는다. 외모지상주의를 바꿔야 한다는 교훈적인 가르침이나 강경한 선동도 없다.  다만 이런 외모지상주의의 시대를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자기 외모에 대한 비하나 불만족, 콤플렉스를 갖게 된,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바꿀 용기나 여력이 없어서 그냥 그 불만족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슬픔에 집중하면서, “그렇지만 주변인들은 그들을 훨씬 더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fact)을 두 그림의 비교를 통해 알려줄 뿐이다. (이와 별개로, 사실 앞서 언급한 여러 '외모지향의 현상들' 또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개선하거나 또는 자기 관리를 위한 개인의 신념에서 비롯된 적극적 선택일 수 있기에 비판받을 이유는 당연히 없다.)


물론 영상 속 그림의 결과물은 어쩌면 광고 카피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에 맞는 사례들로만 추려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홍보물들이 -- 그것이 기획서든, 영상이든, 보도자료든 간에--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적합한 사례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필수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도브> 2013년 광고 영상에 등장한 그림의 사례들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눈물을 흘리는 그림의 주인공들이 클로우즈업 되는 장면은, 그 장면을 보는 보통의 부족한 외모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넘어, 미처 몰랐던 주변의 따뜻한 시선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맺혔을 응어리들이 건드려지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본다.


비누는 얼굴을 씻는 도구다. 맨 얼굴을 덮고 있던 메이크업, 힘들게 일하느라 뒤범벅된 땀과 먼지, 따가운 햇살에 거칠어진 피부를 깨끗이 씻어내고 본연의 얼굴로 되돌리는 수단이다. 그 가운데서 감춰졌던 주름이나 흉터, 쳐진 피부와 밋밋한 이목구비가 드러난다 해도, 그 모습은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남들에게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메시지. 설령 그것이 창작자가 "의도한" 가공의 스토리라고 해도, '비누'라는 제품이 본질적으로 내포한 "나의 본모습(맨 얼굴)"과, 나아가 "나다움" 또는 "나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태도를 전달하는 메시지의 힘은 강력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통한 일종의 '주관적 팩트'라는 형식을 통한 메시지 전달 방식 또한 탁월하다. 게다가 어떤 과장이나 드라마틱한 감성에 소구하지 않고, 담담한 톤앤매너로 풀어가는 스토리텔링도 이 콘텐츠가 전달하는 '진정성'을 증폭시키는데 기여한다.


나의 콤플렉스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던 사실(forgotten fact).

거울에 비친 자신의 민낯을 보면서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자존감(recovered self-esteem).


다시 말해 자신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과 주변인들이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낯이 드러나도록 얼굴 위를 덮고 있던 것을 씻어내는 비누는 지금껏 내가 집중하던 상처받고 왜곡된 자아(ego)의 소리를 걷어내려는 개인의 노력과도 통한다. 이 메시지를 <도브> 광고는 자화상과 초상화를 비교하는 방식 및 ‘비누’라는 제품의 기능과 연결시킴으로써 진정성있는 광고의 좋은 스토리텔링 사례를 창조해냈다.


광고는 특성상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주장해도 진정성 면에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2013 <도브> 광고는 마지막 등장하는 브랜드명이 광고메시지의 진심을 더 강조시킨다는 점에서 모처럼 진정성 있는 광고물을 발견한 것 같아 반가웠다. 이 광고가 2013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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