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뉴스 기고] 2016. 10. 21
본 글은 2016년 10월 21일에 썼던 글이라, 본문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일부 담겨있습니다.
- 인터넷방송 규제 법안 발의를 지켜보며
최근 인터넷 개인방송 규제 관련 법률안이 발의됐다. 지난 주 열린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인 방송 음란물의 무분별한 유통 문제가 제기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음란물 유통과 관련하여 총체적 규제방안을 연구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터넷방송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는데 따른 결과로 여겨진다. 또한 국정감사에서 인터넷방송 규제가 언급된 것도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인터넷 환경이 대중화되면서 영상 시청 패턴이 TV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넘어왔지만, 그에 대한 규제가 없어 음란물 등 불법 영상을 막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이 유통되고 있는 모든 불법정보(음란물)에 대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지체 없이 거부⋅정지⋅제한하는 것을 규정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부가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음란물이 유통되는 사정을 명백히 인식한 경우 지체 없이 해당 정보를 삭제 또는 그 유통을 차단하도록 규정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인터넷 개인방송’에 특정해 발의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전통미디어(Legacy Media)나 온라인 미디어 업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1인 방송 콘텐츠 제작이 주된 비즈니스인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Multi-Channel Network) 사업자와 온라인 동영상 관련 사업자들은 음란물 유통을 막겠다는 법률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자칫 이제 막 꽃피고 있는 산업을 죽일 수 있다며 위기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발의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3가지다. ▲첫째, 인터넷개인방송사업자(플랫폼 사업자)는 자사 플랫폼에 불법정보(음란물)가 유통된 것을 알았으면 바로 해당 콘텐츠를 삭제⋅차단하고, ▲둘째, 음란물을 포함한 모든 불법정보 콘텐츠에 대해서는 실시간 모니터링 등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의무적으로 수립⋅시행해야 하며, ▲셋째, 규제 콘텐츠 대상을 규정하는데 필요한 부분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으로, 가이드라인 수립 규정을 어길 시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가된다.
이 법안 내용들은 모두, 실제로 문제가 많은 콘텐츠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규제하겠다는 목적으로 발의된 만큼 명분은 충분하다. 필자 또한 온라인 동영상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문제가 되는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사실(fact)이고 그러한 콘텐츠를 볼 때마다 불쾌함을 넘어 화가 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법 콘텐츠를 막는 해결책이 ‘규제 도입’ 뿐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인터넷방송에 대한 규제법 도입에 대한 다른 의견을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고자 한다.
우선 용어부터 살펴보자. 발의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직접 규제 대상을 ‘인터넷 방송’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은 우리 사회에서 자주 ‘1인 방송’(개인방송)으로 대체되고, 비실시간까지 포함해서 녹화형 ‘1인 동영상’까지 아울러서 인식될 때가 많다. 또한 1인 방송과 1인 동영상은 필자가 속해 있는 MCN 산업의 태동을 연 장르이기 때문에, MCN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1인 방송=1인 동영상=크리에이터’ 또는 ‘BJ=MCN’의 공식으로 통할 때가 많다.
크리에이터(Creator, 유튜브 또는 SNS에서 사진, 동영상, 리뷰 등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나 BJ(Broadcasting Jockey, 방송진행자) 같은 1인 창작자(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에서 시작된 MCN은 좁게는 크리에이터들을 관리하는 스탭(staff) 인력들을 비롯한 콘텐츠 제작/유통을 담당하는 사업자를 뜻하고, 넓게는 플랫폼 종사자까지 아우르는 개념이지만, 이번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오해(MCN=1인방송=크리에이터)를 인정하는 단계로 MCN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1인 방송(또는 동영상)’의 용어가 다양하게 확장성을 지니며 통용됨에 따라, 국내 모든 온라인 전용(Online-Only) 동영상 콘텐츠는 1인 방송 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번 법안이 ‘인터넷방송’이라고 대상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MCN을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관련 사업자들이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방송’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 즉 방송의 역할과 개념은 어디까지 전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불거진다.
방송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20세기 중반과 달라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방송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송신자, 수신자가 존재하며, 프로그램의 기획/제작/편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이 중 방송 개념의 DNA를 규정하는 것은 기획/제작/편성이고, 그 중에서도 핵심은 ‘편성’으로, 편성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반복되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방송’이란 개념을 규정하는 첫 번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편성은 지상파 채널처럼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거나, 또는 유료방송사업자(케이블TV)의 전문 PP채널처럼 동일 장르의 프로그램을 병렬식으로 편성하는 것으로 나뉜다. ‘방송법’에서는 전자를 ‘시간’의 편성으로, 후자를 ‘배열’의 편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MCN을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또는 좁혀서 실시간 개념의 ‘1인 방송’ 콘텐츠로만 따져 봐도, 방송에서 규정하는 편성의 조건을 따르는 장르는 없다.
방송의 역할론을 적용해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방송의 가장 큰 역할은 공영방송사나 민영방송사 할 것 없이 ‘공공성’이다. 방송이란 일단 일방향성을 띤다. 채널선택권은 시청자의 몫이지만, 편성권은 각 채널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전달되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시청자가 관여할 수 없다. 방송의 공공성이 중요한 것은 ‘불특성 다수’(수신자)에게 한방향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해당 메시지를 통한 여론형성이나 사회적 아젠다(agenda, 의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덕분이다. 그래서 방송은 언론이기도 하다. 설령 그것이 예능이나 드라마 같은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가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이를 통해 공공의 이슈를 제안할 수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터넷방송을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는 ‘편성’과 ‘공공성’이라는 방송의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창작자(크리에이터, BJ)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특정장르에 집중하고, 이용자들은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선택하여 시청한다. 애초에 동일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서 쌍방향적으로 메시지(콘텐츠)를 주고받는 ‘커뮤니티’ 성격이 강하다보니 사회적 아젠다를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팬덤(fandom, 팬층)에 기반해 자연 발생으로 생성된 문화현상에 가까운 것을 ‘방송’으로 부르는 것은 위험하다. 개인들의 콘텐츠에 ‘방송’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은 해당 콘텐츠와 그에 따른 문화를 즐기는 개개인들에게 거대 자본과 인력시장이 돌고 있는 기존 방송산업 수준에서 요구될 수 있는 ‘공적 책임’의 무거운 과제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인터넷방송’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대중과 언론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부정적이라면, 이는 인터넷 ‘방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따른 결과다. ‘방송’이라는 단어에 사회가 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책임과 전제를 ‘별 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인터넷영상 콘텐츠에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 산업이 시작된 곳이자 현재 세계 1위의 방송시장인 미국만 해도 ‘방송’이라는 단어는 지상파채널에서만 쓰일 정도로 용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 기준에서는 케이블TV도 엄밀히는 방송에 포함되지 않는 셈이다. 그만큼 ‘방송’이 갖는 무게감이 크기 때문에 ‘방송’이라는 용어는 남용돼서는 안 된다.
방송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성이나 공공성을 지니지 않는데, 굳이 방송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용어에 부과된 무거운 규제들을 담당해야 한다면, 이는 이제 막 산업이 꽃피기 시작된 시장을 억누르는 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발의된 법안에서 언급하고 있는 ‘불법정보물’은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음란물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해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오랜 시간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현행법상 ‘불법정보’는 음란물을 지칭하며, 간혹 정보통신망법 44조 7 제 1항에 따라 혐오물과 엽기물도 불법정보로 판단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음란물, 혐오물, 엽기물 등은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특성상, 구체적인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개개인의 판단과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용자들은 스스로 영상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그 영상의 불법 여부 또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용자들은 콘텐츠 선택에 대한 책임과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용자의 선택에 맡겨야 할 영역을 법률로 잣대를 만들어 내밀면, 이는 “불법정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어긋날 경우 제재나 처벌하겠다는 표현이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불법정보는 이러이러하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처벌을 위한 법적 기준은 있어야 할 테니, 결국 과거 6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과 흡사한 시행령들이 도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노출은 몸의 몇 %를 넘지 말아야 하는지, 비속어 사용은 맥락에 따라 또는 맥락과 상관없이 안 되는 것인지, 상해/폭력은 상대의 어느 부위까지/어느 강도까지 가능한지 등,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일일이 퍼센트나 횟수 같은 숫자로 규정하는 코미디 같은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번 규제안이 심사숙고하여 발의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이 부분이다. 문제성 영상들이 있으니 규제하자고 외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 기준 수립에 대해서는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역할을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부과해버렸다. 전 사회가 협력해도 불가능한 불법영상물의 판단 기준을 개별 플랫폼사가 수립하도록 강제하고, 어길 시에는 과태료를 물겠다는 것이다.
최소한 가이드라인을 어떤 식으로 수립하라는 큰 틀이라도 제시했다면 또 모를까. 이미 네이버 등 일부 플랫폼에서 자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같은 내용을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음란물 유통에 대한 땜빵식 해결책이 아니냐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불법정보물의 유통을 방지하겠다는 법안 발의의 당위성이 있음에도,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모양새만 될 뿐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럴 경우 골치가 아파진 플랫폼 사업자들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가이드라인 상한선을 과도하게 잡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크리에이터와 MCN 사업자, OTT(Over The Top, 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사업자 등 콘텐츠 창작 활동은 위축될 것이 뻔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모바일 동영상 시장 전체가 동력을 잃어버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플랫폼 역차별의 문제도 있다. 국내법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플랫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0년 전 UCC(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 제작 콘텐츠) 붐이 일었을 때만해도 국내에는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해한 콘텐츠의 불법 유통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자잘한 규제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고, 결과적으로 현재 국내 동영상 시장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대형 글로벌 플랫폼사들이 주도권을 내어 준 상황이다.
특히 2009년 도입된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국내 플랫폼사들이 규제에 발목이 묶인 사이,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또는 소셜 플랫폼사들이 국내에서 급성장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결국 네이버, 아프리카TV, 카카오, 판도라 등 일부 로컬(local) 플랫폼들이 겨우 버티고 있는 모양새로 가는 중이다.
이번 발의안 또한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일단 발의문 자체에서 규제의 대상을 ‘인터넷개인방송사업자’라고 명시했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동영상 플랫폼은 실시간 인터넷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발의안이 통과된다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봐야한다.
플랫폼의 규모나 콘텐츠의 양으로 본다면, 법안 발의의 원인이 되었던 불법콘텐츠는 해외 플랫폼사에서 유통되는 사례들이 훨씬 많다. 다시 말해, 국내법 규정이 해외 플랫폼사업자까지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 발의하는 법안 역시 ‘불법콘텐츠 유통 근절’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오히려 규제 도입이 가져왔던 이전의 결과들을 봤을 때, 이번에도 역시 대형 글로벌 사업자들의 공략 속에서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춰가며 고군분투하는 로컬 플랫폼사들에게 다시금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낳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플랫폼 사업자를 로컬과 글로벌로 나누는 것 외에, 사업자 규모의 문제도 먼저 해결돼야 한다. 발의안은 불법콘텐츠가 동영상 앱(APP)이나 메신저를 통해 유통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국내 앱시장이 활발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영상 전용앱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밴드 같은 메신저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측정이 어려울 정도로 늘어난다. 최근 대법원이 카카오톡에 대한 검찰의 감청수사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지난 몇 년간 카카오는 힘든 시간을 감내해야 했고 대중들 또한 자신들의 사적인 대화내용이 공개될 것에 대한 불안감을 견뎌야 했다.
동영상에 한정이라지만, 인터넷과 모바일망을 통해 불법 동영상 콘텐츠의 유통여부를 확인하려면, 메신저를 포함한 동영상 앱 플랫폼까지도 살펴야 한다. 당장의 법안에서는 앱사업자들은 배제되어 있으나, 플랫폼의 ‘규모’에 대한 기준이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또한 형평성 부분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앱사업자들을 포함하게 될 경우도 문제다. 일부 메신저 앱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영상 전용 앱사업자들은 대체적으로 영세한 경우가 많다. 대형 플랫폼사들도 규제 앞에서 부침을 겪곤 하는데, 영세 사업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이는 디지털콘텐츠 산업 융성과 스타트업을 장려하는 창조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상반되는 행위다.
사회윤리에 반하는 문제가 있는 영상들을 그대로 놔두자는 것은 아니다. 불법영상물이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 1인 방송을 포함한 MCN과 모바일 동영상 산업은 미디어 환경이 변화한 만큼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그 과정에서 과잉경쟁으로 인한 폐해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이 커질수록 별풍선을 많이 받거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 콘텐츠들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 뻔하다. 게다가 10~20대들의 어린 친구들이 주된 이용층이다 보니, 문제되는 콘텐츠를 걸러내기보다는 무분별하게 따라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막겠다고 규제의 칼날을 세우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 채찍보다 당근은 어떨까? 현재 인기 BJ(크리에이터)나 인기 콘텐츠라고 인정하는 지표는 클릭수와 구독자수, 동시접속자수, 공유수가 전부다. 인터넷방송 대표 플랫폼인 아프리카TV의 경우는 별풍선 모금액도 포함되겠다. 하지만, 구독자수(혹은 동접자수)나 조회수가 적어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크리에이터들도 충분히 존재한다.
시장경제에서 얼마나 많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았는지를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대부분의 불법⋅자극적인 콘텐츠가 별풍선 모금액 또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을 기억한다면, 다른 지표를 개발해서 콘텐츠가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유튜브, 네이버, 아프리카TV 등 국내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플랫폼들은 자발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규제 대신 ‘지원’의 차원에서 확대시키는 접근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실효성 측면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3단계 자율정화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1단계.
기존 플랫폼사의 자율 모니터링 제도의 확대.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된 모니터/관리기구 운영. (모니터링 및 제보)
2단계.
모니터링/관리기구에서 배심원단을 선발해, 제보가 들어온 문제적 콘텐츠를 심사 및 평가 진행 (콘텐츠 배심원제)
3단계.
조회수나 유명세가 낮더라도 양질의 콘텐츠를 발굴해 ‘클린 콘텐츠’ 권위 부여 (클린 크리에이터 인증제)
여기서 모니터/관리기구나 배심원단은 콘텐츠 사업자, 학계, 크리에이터, 시청자 등 민간으로 구성하고, 민-관을 연결하는 중립단체들이 관리와 운영을 총괄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러한 자율심사제도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프라 등을 다양하게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이 방안이 제대로 도입된다면, 창작자에게 보다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동기 부여를 제공함은 물론, 업계는 양질의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으며, 국가적으로는 클린 콘텐츠 또는 클린 크리에이터 명단을 확보함으로써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MCN 협회다. MCN은 1인 방송에서 시작된 비즈니스이지만, 반드시 ‘1인 방송(또는 1인 동영상)=엠씨엔’의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로 발전한다는 것은 다양한 인력들이 필요해지고, 다양한 수익모델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터는 MCN 시장의 ‘꽃’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컨설팅, 매니지먼트, 기획, 편집, 마케팅, 법률/회계 자문, 판권 계약, 광고 계약 등 MCN은 다양한 분야의 인력들이 모여들고 있는 산업이고 그만큼 시장 성장도 확대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창작자들의 영상 콘텐츠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규제부터 하려 든다면, 단언컨대 이 산업의 성장은 불가능해진다.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 시장이 맹추격해오고 있는 MCN 시장에서, 음란물 근절의 방안이 규제여야 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할 때다. 이미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법안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생길리도 없고, 오히려 콘텐츠 사업자들만 위축시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다. 고민 없이 쉽게 도입하는 남발의 대상이 아니며, 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아껴두었다가 꺼내야 하는 카드이다. 국내에서 모바일 동영상 시장은 이제 막 바람을 타기 시작했을 뿐, 아직 제대로 날아오르지도 못했다. 채찍보다 당근을 주는 진흥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꼭 규제가 모든 문제해결의 답은 아니다.
2016.10.23
IT뉴스 기고 http://www.itnews.or.kr/?p=19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