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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Mar 08. 2022

경남 거제 지심도

- 동백 보기 위해 봄 오길 기다리지 마라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과연 봄은 있기나 한 것일까’.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 봄이고 아직은 봄이겠지 싶을 때 여름인 봄-. 그래도 그 봄을 만끽하고 싶어, 동백섬이라 부르는 거제 지심도로 봄맞이를 떠난다.


장승포항의 봄맞이 상춘객들

거제에서 지심도를 가는 유람선은 두 곳에서 출발한다. 장승포와 지세포다. 성수기에는 양쪽에서 거의 매시간 가격으로 유람선이 지심도를 오간다. 그만큼 이름난 관광지라는 얘기다. 오전 9시쯤 장승포 동백섬지심도터미널에 도착하니, 벌써 상춘객들이 북적인다. 삼삼오오 혹은 여남은 명씩 단체로 온 관광객들이다. 터미널 옆 주차장엔 이들을 싣고 온듯한 관광버스도 서너 대가 보인다.

멀어져 가는 장승포항.

정원 96명의 좌석에 거의 빈자리 없이 승객을 싣고 장승포를 떠난 배는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를 가르며 지심도를 향해 달려간다. 10여 분 정도 지나자 우측으로 지세포항이 보이고 대한석유공사 거제 비축기지의 흰색 원유 탱크들이 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망망무제 대한해협이다. 장승포에서 지심도까지는 약 6km로 약 20여 분 소요된다.


하늘에서 보면 ‘마음 心(심)’ 자를 닮았다는 지심도(只心島)


지심도 동백하우스와 범바위에 앉은 인어상. 지심도에 살던 호랑이가 바닷속 용궁에 살던 인어를 좋아하여 끝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지심도는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 지사도(只士島), 혹은 지삼도(知森島) 등으로 불렸다. 1980년까지만 해도 지삼도(知森島)와 지심도로 혼용되다가 현재의 지심도(只心島)로 굳어졌다 한다. 하늘에서 보면 섬 모양이 ‘마음 心(심)’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로 불리게 됐다.

지심도 항공 사진/경남도

섬 둘레 3.5km, 총면적 0.36㎢, 최고봉의 높이 97m로 지심도는 작은 섬이지만 북쪽으로는 진해만과 부산 가덕도, 동남쪽으로는 대한해협과 일본 대마도(對馬島)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조선 영조 시대만 해도 대마도 어민들이 지세포나 통영 용초도 등지에서 어업활동을 하러 왔다가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수령이 오래된 동백숲은 물론 아름드리 후박나무 등이 자생하는 지심도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며 평화롭던 섬 지심도를 역사의 격랑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중일전쟁을 준비하며 거제 지역을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요새화 하기 시작한다. 거제 능포의 양지암(洋支岩), 현재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가 있는 저도(猪島) 등과 함께 지심도에도 해군기지가 건설된다.

지심도에 구축된 포진지. 일제강점기 4개의 포진지에는 1개 중대 100여명이 일본군이 주둔했다

일제는 1935년 지심도 일대의 토지를 국방용으로 매입하면서 주민들을 지세포와 대동마을로 강제이주시켰다. 1908년 지심도에 13세대 61명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강제 이주 당시에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지심도 포진지 구축은 1936년 7월 10일 시작되어 1938년 1월 27일 완성된다.

탄약고. 튼튼한 콘크리트 건물로 요새화 되어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튼튼하게 구축된 4개의 포진지에는 150mm 캐논 포와 38식 기관총 등 각종 최신식 무기가 배치됐다. 또한 이를 운용할 1개 중대 100여명이 주둔하는데 필요한 전등소 및 발전소, 군 막사와 망루, 헌병분주소, 국기게양대 등이 건설된다.

서치라이트 보관소

캐논 포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며 최대 사거리는 20.2km에 이르렀다. 일본은 이러한 포대를 대마도와 시모노세키에도 배치했는데 1937년 7월에 발발하는 중일전쟁은 물론 장차 태평양 쪽으로부터 진군할지 모르는 연합군 함대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엔 포진지로, 광복 이후는 국방부 땅, 현재는 거제시 땅으로


1945년 광복 이후 지심도는 미군이 점령하게 되고 일본군으로부터 포진지와 각종 무기 등을 접수한다. 이후 소유권이 국방부로 넘어왔지만 한동안 관리되지 않다가 1995년 섬 중앙에 국방과학연구소 해상시험소가 건설된다. 

지심도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민가

이러한 지심도에 인근 어민들이 어업활동을 하기 위한 교두보로 임시거주를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를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오면서 다시 민간인이 사는 섬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교된 일운초교 지심분교. 1982년 재학생이 35명에 이르기도 했다

지심도 거주 주민은 1982년까지만 해도 17가구 69명에 달했으며 당시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에는 재학생이 35명에 달하기도 했다. 당시 생계유지 수단은 밭농사, 유자 재배 등이었다. 거제시 일운면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지심도에는 21세대 36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섬 방문객이나 낚시객을 상대로 민박이나 식당 영업을 통해 생계를 잇고 있다.

지심도 동쪽 해식절벽

한편,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지심도 소유권을 반환받기 위해 2005년 '지심도 이관팀'을 구성하고 4만 8743명이 동참한 범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국회 청원 등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2008년 8월 제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청원서가 폐기되면서 지심도 반환사업은 좌절되고 말았다.

북쪽 섬끝전망대 가는 길

하지만 거제시는 2011년 6월 13일 국방부에 이관 건의를 시작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국방부, 환경부 등 12개 기관과의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지심도에 있던 국방부 해상시험소를 섬 밖으로 이전 완료하고, 2017년 지심도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섬 주민을 내쫓고 군사기지화 한 이후 81년 만에 이로써 지심도는 거제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심도 명품 테마관광지 조성 놓고, 거제시와 섬 주민들의 ‘첨예한 갈등’


서쪽 몽돌해변

거제시로 소유권 반환 후 잠시 평온이 유지되는 되는 듯했던 지심도는 또다시 세상 밖으로 아픈 멍울을 드러낸다. 2017년 소유권을 넘겨받을 당시 거제시는 지심도를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잘 보존, 관리해 자연과 생태 그리고 역사와 스토리가 어우러진 명품 테마 관광지로 조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비행기 활주로였다고 알려진 능선의 탁 트인 전망대 측면

하지만 약속과 달리 지심도 관광섬 개발은 지지부진에 빠졌다. 지심도가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에 위치한 탓에 본격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섬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거나 상업 행위를 허가받아야 하는 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난제였다.


1968년 국방부가 섬 전체를 강제 수용하면서 주민들은 토지 사용료를 지불해 왔다. 따라서 주민의 집단 이주 시, 거제시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건물 감정가에 의한 보상 뿐으로 이것 만으로는 다른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트 조형물. 거제도와 석유공사 석유비축기지가 보인다

그런데 지심도가 오늘날 유명 관광지가 된 데는 두 가지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게 됨에 따라 지금의 울창한 산림 숲이 조성된 것이다. 또 하나는 그동안 주민들이 지심도를 전국의 유명 관광지로 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심도가 공중파 방송에 알려지면서 연간 10만여 명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동백꽃 모형의 의자

결국, 거제시도 오늘날 지심도가 있기까지 주민들의 그동안 노력을 인정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주재하는 여러 차례 조정회의 등을 거쳐 상생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거제시는 지심도 거주를 원하는 주민에게 2006년 이전 국방부 자료에 기재된 면적만큼 토지 사용허가를 하고, 민박 운영을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은 건축물대장의 면적에 대해서 영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심도, ‘상생의 동백꽃’으로 다시 피어나다


지심도 탐방로는 약 5km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섬 한 바퀴를 좌우 어느 방향으로 돌든 큰 어려움이 없다. 빠른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약 2시간 정도면 섬을 돌고 바로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끼리 혹은 가족끼리 삼삼오오 느긋하게 섬을 둘러보면서 동백꽃 구경을 하고 싶다면 3~4시간 할애할만하다.

하나둘씩 피기 시작한 동백꽃

그런데 활짝 핀 동백꽃은 손으로 셀 수 있을 듯하고 대부분은 아직 봉우리를 닫고 있다. 일찍 피려다가 늦추위에 냉해를 입고 꽃잎이 말라버린 동백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동백의 모습을 기대하고 왔던 상춘객들은 민박집에 들러 파전에 막걸리잔을 앞에 두고 아쉬움을 달랜다.

상춘객들로 북적이는 민박집

한 방문객이 손님 접대로 바쁜 민박집 사장에게 "올해 동백은 언제쯤 절정일 것 같냐"고 묻는다. 그러자 사장님은 “예전 같으면 지금이 절정인데 올해는 때늦은 한파로 1~2주일 늦어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가 "하지만 날씨가 며칠만 좋으면 또 한꺼번에 우르르 피는 게 동백"이라고 덧붙인다.

파전에 막걸리 반 주전자. 1만 8000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정일근 시인의 ‘동백에 관한 편견’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보기 위해 봄 오길 기다리지 마라, 어리석은 일이다

  엄동설한 추위가 언 귀때기 떼 가는 날 골라 피는 꽃 동백(冬栢)이다

  갱물까지 어는 한겨울 거제 학동 바다, 해변 몽돌 살얼음 잡히는 파도에 맞서 몸과 몸

  동글동글 맞대어 다그락 대그락 이 악물고 견딜 때

  학동동백수림 당당히 펑펑 터지는 저 붉은 꽃 동백이다

  볕 좋은 봄날, 같은 나무 같은 가지에 피는 같은 꽃 볼 때 동백이라 가볍게 말하지 말라

  늦었다, 당신은 춘백(春栢) 보고 기념사진 찍고 갈 뿐 동백새마저 시시해 꿀 빨지 않는 날에”

지세포에서 들어온 여객선이 손님을 내려놓고 있다. 좌측은 장승포행 여객선을 기다리는 승객들

시인의 말대로라면 내가 오늘 지심도에서 본 것은 동백(冬栢)일까? 춘백(春栢)일까? 연이어 마신 막걸리  때문인지 사물에 대한 분별이 혼미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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