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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May 06. 2022

전남 영광 낙월도

- 달이 지는 곳이 달이 뜨는 곳의 시작이다


낙월도(落月島) 섬 여행은 늦은 나이에 고향 집 뒤뜰을 찾아가는 것처럼 설렘이 앞선다. 낙월도와 전장포는 유년시절, 고모들의 이름처럼 친숙하게 각인된 곳이었으나 막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낙월도는 행정구역상 전남 영광군에 속했지만 당시 생활권은 목포였다. 그래서 낙월도를 출발한 여객선은 전장포, 임자도 진리, 수도, 지도, 증도, 병풍도 등을 거쳐서 7~8시간 만에야 목포항에 도착했다. 중학교 때 배를 타고 지도에서 증도와 목포를 간 적이 있었는데 낙월도를 출발해 전장포를 거쳐온 2층 여객선 통로에는 ‘새우젓’ 드럼통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영광 향화도항에서 낙월도 가는 길은 ‘천지개벽의 길’

영광 향화도항

이제 세상이 바뀌어 영광 향화도항에서 널따란 차도선이 하루 3차례 낙월도를 오간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낙월~목포 항로는 지도와 증도 등 신안의 북부의 섬들이 연육연도교로 육지화되면서 90년대 후반 폐쇄되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향화도 항으로 내려와 낙월도에 도착하면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예전 목포역까지 기차로 내려와 목포항에서 낙월도까지 배를 타면 20시간 이상 걸리던 것에 비교하면 천지개벽이 이루어진 셈이다.

출항 40여분 만에 낙월도가 보인다

향화도항에는 전남에서 제일 높다는 칠산전망대(111m)가 자리 잡고 있고, 그 뒤로 향화도와 무안 도리포를 연결하는 칠산대교가 지나간다. 이곳에서 오전 10시 30분 배를 타고 낙월도로 향한다. 이 항로는 정부 보조항로로 선사의 손해를 정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일기 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 의무적으로 운항한다.


일교차가 큰 탓인지 낙월도 가는 바다는 몽환의 세계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무가 짙게 깔려있다. 좌측으로 해제반도가 실루엣처럼 펼쳐지고, 이어 지도의 산그리메들이 동에서 서로 길게 이어진다. 배 뒷전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다 사위를 살피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말벗이 되어 유유자적 뒤따른다. 배는 소각시도와 대각시도를 지나 1시간여 만에 운무로 모습을 살짝 가린 낙월도에 도착한다.


전장포와 함께 전국 새우젓 생산량 60%를 담당하던 낙월도

차도선이 상낙월도항에 도착하고 있다

낙월도는 영광 법성포에서 22km, 목포에서 70km, 향화도항에서는 20.5km의 거리에 있으면서 남쪽으로 신안군 임자면과 경계를 이룬다. 상낙월도는 면적 1.27㎢에 해안선 길이 11.2km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진월도(珍月島), 1896년 지도군 편입 때는 대낙월도(大落月島)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영광군 낙월면이 되었다,


낙월도는 한자 이름 그대로 ‘달이 지는 섬’이다. 영광 법성포에서 볼 때 지는 달이 낙월도 바다로 떨어진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옛날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한 백제의 왕족이 배를 타고 바다로 피난하다가 항로를 잃고 표류하던 중 섬 뒤로 달이 졌고, 결국 그 섬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진달이 섬’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섬의 모양이 초승달과 비슷한 낙월도는 낙월면의 소재지로 41개의 무인도를 포함, 52개의 도서(島嶼)를 아우르고 있다. 낙월면에서는 안마도가 제일 크고 그다음 송이도, 세 번째가 낙월도다. 하지만 면 소재지가 낙월면에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선착장의 표지석

상낙월도 선착장에 내리면 여행객을 맞아주는 표지석이 그 내력을 말해준다. 표지석에는 ‘새우의 고장 상낙월도’라 쓰여 있다. 낙월도 건너편 임자도 전장포에서도 ‘새우의 고장’이란 표지석이 있다. 1960~80년대 낙월도와 전장포 주변 바다는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만큼 새우잡이 황금어장이었다.


낙월면 사무소에서 발행한 책자에 의하면 1971년 기준으로 상·하낙월도 인구는 1508명인데 반해 면적이 4배가 큰 송이도는 543명, 5배가 큰 안마도는 1422명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낙월도의 유동인구는 1000여명에 이르렀으며, 새우잡이 배를 타는 사람만 해도 400명이 넘어 활기 넘치는 섬이었다. 하지만 4월 말 현재 상·하낙월도는 170여명, 안마도 190여명, 송이도 100여명 만이 거주할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새우잡이가 저물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낙월도의 영화도 저물었다.


1987년 불어닥친 '태풍 셀마'로 자취를 감추게 낙월도 중선(젓새우잡이 어선)

정비 중인 위령비(좌측) 주변. 1987년 태풍 셀마로 새우잡이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희생자 52명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낙월도 새우잡이 영화를 저물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상낙월도 선착장에서 우측으로 난 트레일을 따라 200여m 가다 보면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87년 7월 11일 서해안을 강타한 태풍 셀마는 당시 낙월도 중선(젓새우잡이 어선) 78척 가운데 12척에 타고 있던 선원 58명 중 52명을 사망·실종케 했다․ 위령비는 이때 사고를 당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일로 정부는 중선에 대한 보상절차를 걸쳐 1995년 6월 이후 모든 중선을 폐선시키는 정책을 단행했다.

현재는 새우잡이 닻자망어선 30여 척이 낙월도 새우젓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흔히 젓새우잡이 어업을 해선망어업(醢船網漁業)이라 부른다. 해선(醢船)이란 젓갈 배를 말하는데 10~15톤급 사이 어선으로 이물(전면)과 고물(후면)이 아둔하게 뭉툭하고 배의 밑바닥이 평탄하도록 제작됐다. 선체는 길이 15m, 폭 5m로 직사각형 항공모함과 비슷했다.


선실 또한 사각형으로 가로세로 3~4m 정도였다. 내부 1층에는 ‘브리지’라는 선원실과 잡은 새우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이 배는 바람을 이용할 돛도, 손으로 젓는 노도, 엔진도 없었다. 그래서 이 배를 ‘멍텅구리배’라 불렀다. 인천 앞바다 장봉도와 신시모도 일대에서는 ‘곶배’라고도 했다.

상낙월도 선착장에서 운반을 기다리고 있는 새우젓 드럼통

무동력 선인만큼 다른 배에 예인 되어 어장에 와서 닻을 내리고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떠 있으면서 1일 4회 빠른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새우를 잡았다. 배 양옆으로 팔을 벌린 20~30m 길이의 대나무 상하에 매단 그물로 새우를 잡이를 했다.


중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돈배'라고 했다. 이 배 덕분에 제대로 된 논 한 마지기 일굴 땅도 없는 작은 섬, 낙월도에서 일본 유학생 여섯 명을 보낼 정도로 사는 것이 넉넉했다. 당시 영광 군내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이 상낙월도 김달선이라는 분이었다고 하니, 잘 나가던 낙월도의 경제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중선 한 척에는 5명의 선원이 탑승했는데 한 척당 100여명의 사람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1991년 낙월도 중선('낙월도/지은이 최종민'에서 캡처). 일명 '멍텅구리배'라고 했던 중선은 하루에 네 번 앞뒤로 자리를 바꿔가며 밀려오는 물 때와 마주해 새우를 잡았다

어쨌든 1987년 7월 11일 발생한 태풍 셀마 사고 이후 전성기를 누리던 낙월도의 새우잡이는 퇴각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중선의 모습은 이제 국립 목포해양박물관 앞 해변에 가야 볼 수 있다. 전시된 중선은 1989년에 건조해 사용 중이던 어선 현종호라고 한다. 지금 낙월도에는 30여 척의 닻자망 어선이 조업을 하며 옛 낙월도 새우젓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임자도를 포함한 전장포 앞바다에는 모래산이라 할 수 있는 풀등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풀등은 인천 대이작도 앞의 풀등처럼 모래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모래와 개펄이 섞여 밟아도 발자국을 잘 남기지 않은 단단한 모래톱이다. 이 풀등에는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새우가 서식하기에 최적지라고 한다.


전라도에서는 새우를 ‘새비’라고 불렀는데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잡은 즉시 배 위에서 소금에 절여져 드럼통에 담겼다. 5월과 6월에 잡힌 새우를 ‘오젓’ ‘육젓’이라 했는데 전장포와 낙월도 일대에서 잡힌 새우는 맛이 뛰어나 임금께 진상되기도 했다. 어획 시기에 따라 춘젓, 오젓, 육젓, 추젓, 동젓으로 불렀다.


상·하낙월도 2개의 해안 마을을 잇는 자연미 넘치는 트레일

상낙월도 둘레길

낙월도 트레킹은 상낙월도 선착장에서 우측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돈 후 연도교인 ‘진월교’를 지나 하낙월도 해안을 우측으로 돌아 하낙월도 선착장에 이르는 8.1km의 코스다. 시멘트 길과 임도가 잘 닦여 있는 데다 두 섬의 최고봉이 100m 남짓해 완주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 두 섬을 걷는 내내 시야에서 바다가 떠나지 않아 시원함을 준다.

상낙월도 재계미해변에서 멀리 임자도가 보인다

상낙월도 선착장에서 내연발전소를 지나면 처음 섬에 입도한 이가 살았다는 재계미 몽돌해변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이정표를 따라 웃머리산 자락을 돌다 보면 달콤한 으름덩굴 향기가 진동하고 해안가 수풀 사이로 여기저기 사슴 발자국들이 나 있다. 큰갈맛골과 작은갈맛골 해변에서는 짙은 검은색의 낙월도 묵석(墨石)을 만날 수 있다.

작은갈맛골 해변의 묵석들. 잔잔한 모래를 수반 삼고 멀리 송이도를 배경으로 두었다

수석 애호가들 사이에서 낙월도 묵석은 최고로 쳐준다. 1970년대 후반 낙월도 묵석의 진가가 외지로 알려지면서 쇠 지렛대 하나씩 배낭에 달고 온 사람들이 묵석을 마구잡이로 캐가는 바람에 동이 날 정도가 됐다. 다행히 1978년 10월 자연보호헌장이 제정되면서 낙월도 묵석의 채집과 반출이 금지되어 그나마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큰갈맛골 해변의 묵석들

모래 해변 옆에 큼직이 박힌 묵석들의 기기묘묘한 형상은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묵석을 감싸고 있는 모래는 스스로 좌대가 되었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송이도와 안마도 대·소각이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은 묵석들을 입체적으로 감상케 해주는 배경이 되어 준다. 

상낙월도에서 하낙월도로 가는 진월교

이제 하낙월도로 향한다. 1987년 두 섬을 잇는 460m 연도교 제방이 완공되어 물 때와 상관없이 두 섬을 왕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연도교 건설 이후 기존 두 섬 사이의 해류가 막혀 30만 평의 갯벌이 죽어갔다. 그래서 2016년 7월, 제방 중간을 끊어내어 50m의 ‘진월교’를 놓아 물 흐름을 돕고 있다.


다행히 갯벌은 살아났지만 육안으로 보더라도 퇴적층이 많아 비만하게 보인다. 예전 갯벌의 활발한 생태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태고적부터 흐르던 자연의 순환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제방을 놓아 갯벌을 죽게 한 후 다시 복원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하낙월도 외양마지에서 바라본 상낙월도 숭어바우. 양쪽을 출렁다리로 연결하면 낙월도의 명물이 될 것 같다

하낙월도에 이르러 우측으로 난 트레일을 따르다 보면 외양마지에 이른다. 이 근방에서 선사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패총이 발견되기도 했다. 낙월도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증거일 것이다. 해식절벽 외양마지에서 보는 상낙월 서쪽 끝(숭어바우) 풍경은 아름답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눈짐작으로 300여m의 거리인데 ‘외양마지와 숭어바우’를 연결하는 출렁다리를 놓는다면 관광명소로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낙월도 할미골 해변 가는 길. 자연미가 살아 있어 걷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윽고 할미골에 도착하여 할미여 너머로 망망대해인 서해를 바라보니 희끄무레한 수평선만 보인다. 남쪽 끝 전망대에서는 임자도와 재원도가 풍경이 되어준다. 

장벌해변에서 바라본 전장포(가운데)

장벌해수욕장 모래 해변에서는 전장포가 가느다란 지내 형상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옆에 하낙월도 선착장이 있으나, 다시 도로를 따라 2km 남짓 거리의 상낙월도 선착장으로 돌아와 오후 4시 40분 배를 타고, 트레킹을 마친다.

트레킹을 마치고 향화도항으로 돌아가는 길. 멀리 수평선 너머로 해가지고 있다

 



1. 위 치

    o 전남 영광군 낙월면


2. 가는 방법

    o 영광 향화도여객선터미널(전남 영광군 옥실리 1106-40)

      - 향화도→낙월도 : 07:30, 10:30, 14:30(동절기)

                              07:30, 10:30, 15:30(하절기)

      - 낙월도→향화도 : 08:40, 13:30, 15:30(동절기)

                              08:40, 13:00, 16:30(하절기)

        ☎ 문의 : (평일)해광운수 061-283-9915, (주말)사무장 010-3500-2511

향화도행 여객선이 도착하고 있다

3. 섬에서 즐기기 : 트레킹, 백패킹

    o 트레킹 코스(12km/5시간)

     - 상낙월도선착장→내연발전소→위령탑→재계미해변→1·2·3전망대→큰갈맛골해변→당숲→통신

       안테나→누에머리산(작은갈맛골)→쌍복바위→진월교→하낙월도→외양마지→1·2·3전망대→할미골

       →1·2전망대→장벌해수욕장→상·하촌마을→상낙월도선착장


    o 백패킹 : 큰갈맛골해수욕장, 할미골전망대, 장벌해수욕장 등

낙월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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