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이면 섬 전체가 원추리로 노랗게 물드는
식물명이 별도로 존재하는 '홍도원추리'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첫 해외여행을 가던 때처럼 설렘에 잠을 설친다. 올해는 별일 있어도 홍도에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하고, 이왕이면 7월 홍도원추리 피는 시기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안군에서 개최하는 원추리 축제가 7월 8~17일까지인데 간신히 막차를 타게 돼 행운이다.
홍도원추리는 다른 원추리에 비해 꽃이 유난히 크고 아름다우며 질감이 곱다. 같은 노란색이지만 옆 흑산도 원추리와는 색감이 또 다르다. 육지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견딜 때 홍도 사람들은 이 원추리 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서 배고픔을 견뎠다고 하니, 홍도원추리는 곧 홍도 사람들의 숨결이라 할 수 있다.
■ '목포구(木浦口) 등대' 지나 도초, 흑산, 홍도에 이르는 뱃길
홍도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섬이다. 신비스러운 경관으로 1965년에 천연기념물 제170호, 1981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15km 떨어진 홍도는 쾌속선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홍도행 쾌속선 유토피아호는 목포항을 빠져나와 유달산, 목포대교와 차츰 멀어지더니 해남 화원반도 기슭에 한 마리의 백조 모습으로 서 있는 '목포구(木浦口) 등대'를 지난다. 목포구는 목포시 달리도와 해남의 화원반도 사이 600여m의 좁은 물목으로, 목포항의 목구멍이라 할 수 있는 주요 길목이다. 목포구 등대는 1897년 목포항 개항 후 1908년 1월 1일부터 불을 밝힌 등대로 한반도 서남지역에서 목포항으로 드나드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배는 금세 팔금도와 안좌도를 잇는 '신안제1교'를 지나 여기저기 흩어진 섬들 사이로 유영하더니, 1시간 만에 도초도 화도선착장에 도착한다. 상당 수의 손님들이 이곳에서 내리고, 그만큼의 손님들이 또 승선한다. 도초도 수국축제를 구경하고 흑산도나 홍도에 들어가는 관광객들 같다.
도초도와 비금도 사이 해역을 벗어나자, 배가 갑자기 너울성 파도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배는 스스로 내해에서 외해로 접어들었음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육안으로는 큰 파도가 없지만 망망대해 밑에는 또 다른 파도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 멀미로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우측으로는 멀리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칠발도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가기 전까지 살았던 우이도가 보인다.
■ 홍도에서의 여행 방법
쾌속선은 오후 3시 40분에 홍도1구 선착장에 도착한다. 홍도는 남북으로 길게 누운 섬이다. 남쪽 양산봉과 북쪽 깃대봉의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곳에 홍도1구가 자리 잡고 있다. 행정의 중심지인 이곳에 사람이 많이 머문다. 섬의 특성상 평지가 없어 오르막을 따라 주민들이 사는 집과 음식점, 숙박시설이 모여 있다. 이곳 골목길에서 선착장까지 짐을 실어 나르는 작은 삼륜차들이 눈에 많이 띈다.
홍도 여행은 자동차나 자전거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정직하게 두발로 움직여야 한다. 대신 섬이 작은 편이어서 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호젓함을 즐길 수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깃대봉(365m)은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정상에 오르면 흑산도와 가거도 등 다도해와 독립문, 띠섬, 탑섬 등 부속섬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깃대봉 맞은편의 양산봉(232m)도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내친김에 트레킹으로 홍도2구까지 갈 수 있다. 예전 1구와 2구 사람들이 넘나드는 길로, 트레일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다. 두 마을을 잇는 해안 둘레길이 없기 때문이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다시 1구로 넘어올 수 있는데 여름엔 쉽지 않다. 그래서 사선(낚싯배, 5만원)을 이용해 바닷길로 되돌아와야 한다.
트레킹이 버거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유람선관광'이 기다리고 있다. 홍도에 쾌속선이 드나드는 시간을 전후해 이뤄지는 유람선을 타면 홍도의 비경을 해상에서 관람할 수 있다.
■ 몽돌해변 낙조, 은빛 바다, 노란원추리, 쪽빛 하늘과 흰 구름..7월 홍도만의 절경
날씨가 더운 탓으로 유람선 관광은 다음날 아침 7시 20분에 한다기에 원추리 구경과 깃대봉 트레킹에 나선다. 홍도원추리는 1구마을(홍도 분교) 옆 오른편과 깃대봉~2구마을 트레일, 그리고 2구마을 홍도등대 아래 해안길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홍도원추리는 묘한 매력이 있어 찬찬히 볼수록 빨려 들게 만든다. 화장을 하지 않은 은은한 미인의 얼굴이랄까? 원추리 군락에서 본 1구마을은 해외 유명 여행지에 온 듯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해발 100m 오르면 제1전망대가 나온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까지 오른다. 하지만 제2, 3전망대는 차츰 고도를 높여나가고 숲길은 동백나무, 소사나무, 물푸레나무들로 군락을 이룬다. 숲길에는 바람 한점 통과하지 못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등산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와 군데군데 마주하는 원추리와 나리꽃이 생기를 북돋아 준다.
멀리서 보면 깃대를 꽂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홍도 깃대봉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속한다. 그래서 100대 명산을 마스터하려는 등산객들은 반드시 올라야 하는 산이다.
깃대봉에서 능선은 북쪽으로 소 등처럼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차츰 자세를 낮춰 바다로 자맥질한다. 2구 마을은 능선 중간에서 좌측으로 꺾인 구릉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육안으로 보기에 자그마한 어촌마을이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와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홍도등대는 이곳에서 마을로 바로 내려서지 말고 작은 교회를 지나 펜션(옛 흑산초교 신흥분교)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1931년 일제강점기에 첫 점등을 한 홍도등대는 우리나라 영해를 지키는 길잡이로서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목포에서 116km, 대흑산도에서 20km 홍도 북서쪽 해발 89m 지점에 서 있으면서 서해안의 남북항로를 연결하고 있다. 20초에 3번씩 반짝이며 45km의 먼바다까지 불빛을 보낸다. 안개시에는 사이렌 같은 소리를 내어 신호를 전달하고 있다. 등탑 높이는 10m로 2005년 종합정비계획을 통해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게 건축했다.
이곳에서 2구마을까지는 해안으로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독립문바위와 크고 작은 섬과 여를 우측에 두고 걷다 보니, 어느새 노란 원추리군락지와 만난다. 은빛 바다 옆으로 만개한 원추리와 그리고 쪽빛 하늘과 흰 구름의 어우러짐은 7월, 홍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절경이다.
2구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구마을 뒤편 몽돌해변 선착장에 도착한다. 모래사장이 없는 홍도에 관광객이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변이다. 해변 따라 해조음을 듣기에도 좋지만 이곳이 홍도1구 일몰 포인트이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철에 해넘이가 좋다고 한다. 몽돌해변 입구에는 횟집도 있어 해넘이 구경 후 싱싱한 회를 즐기며 추억을 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일출전망대에서 보는 일출도 좋아
민박집주인께 일출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홍도 일출은 여름보다는 겨울이 제격이다"고 말한다. 여름에는 장마철과 맞물려 해무가 낄 때가 많아 일출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홍도에 온 이상 일출을 봐야겠다고 생각해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신안군홍도사무소를 지나 일출전망대로 향한다.
죽항 당산(竹項)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과 데크계단을 500m 오르니, 일출전망대다. 통상 일출은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면서 장엄한 햇무리를 만드는데 홍도의 일출에서는 그런 게 없다. 그도 그걸 것이 해가 건너편 절벽 뒤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미 솟아오른 해를 늦게 보는 셈이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는 일출로 아침의 수고를 달랜다. 홍도 일출은 12월이나 1월이 좋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출은 잉걸처럼 붉다고 한다.
■ 숨은 비경을 찾아 '홍도 한 바퀴' 해상 관광
일출 구경 후 아침을 먹고 홍도 선착장으로 향한다. 유람선 투어를 위해서다. 250명 정원이라는데 좌석의 절반 가량이 채워졌다. 유람선은 남문바위를 시작으로 거북바위, 만물상, 독립문 등 기묘한 형상을 간직한 기암과 해식절벽 주위를 2시간 30분 동안 투어 한다.
투어 말미에는 베트남의 하롱베이처럼 고깃배가 유람선 옆으로 다가와 싱싱한 횟감을 현장에서 썰어 판다. 한 접시 3만원이다. 억겁의 세월이 빗어낸 형언할 수 없는 홍도 절경에 싱싱한 회, 소주가 등장하니 모두들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여기저기에서 건배 소리가 아침 바다를 가른다.
이런 풍경을 보노라니, 방랑시인 김삿갓이 영주 부석사 악양루에 올라 굽이치는 소백산의 능선들을 바라보며 지었다는 '부석사'의 시구, 말미가 생각난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자고로, 명승지 여행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나서볼 일이다.
■ 홍도 여행(1박 2일) 일정표
= 첫날 =
12 : 00 목포연안여객터미널 도착
13 : 00 ~ 15 : 40 목포연안여객터미널 출발~홍도1구마을 선착장 도착(쾌속선)
16 : 00 ~ 18 : 30 1구마을 출발~깃대봉~홍도등대~2구마을 도착(트레킹, 5.05km)
18 : 50 ~ 19 : 00 2구마을 출발~1구마을 몽돌선착장 도착(사선)
19 : 20 ~ 19 : 50 홍도 일몰 관람(몽돌 해변)
= 둘째 날 =
05 : 10 ~ 05 : 50 홍도 일출 관람(일출전망대)
07 : 30 ~ 10 : 00 홍도 해상 투어(유람선, 2시간 30분)
10 : 40 ~ 11 : 20 흑산도 예리선착장 도착(쾌속선)
12 : 00 ~ 13 : 00 흑산도 숙소 도착 및 점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