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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May 21. 2021

인천 옹진 승봉도

- 나이 쉰을 훨씬 넘었지만 ‘세상은 아직 안갯속’


공교롭게도 올들어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갈 때마다 비가 내린다. 승봉도 가는 날에도 비가 내린다고 한다. 기상청은 전날 제주도부터 시작된 많은 양의 비가 차츰 북상하여 오후 2시쯤 승봉도에 다다를 것이라 예보한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서울의 친구들과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아침 7시 20분 만난다.  


판소리의 추임새와도 같은, 인천 앞바다의 갈매기   

                       

배의 뒷전을 따르는 갈매기떼

7시 50분 인천항을 출발한 자월도→승봉도→이작도행 차도선 대부고속훼리호 선실은 승객들로 빼곡하다. 가족, 친구, 동호회 등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다양한 사람들로 근래 들어 보기 드문 광경이다. 5월 중순, 봄이 절정에 이른 데다 가정의 달 주말이어서 코로나를 피해 섬을 찾는 사람들 같다.                          

해무 속의 자월도. 이곳에서 승객의 절반 가량이 하선한다

여객선이 회색빛 바다 위로 서서히 미끄러져 나가자 보이지 않던 갈매기들이 하나둘씩 몰려든다. 어느새 갈매기 무리와 선실 바깥 승객들은 하나가 되었다. 승객의 손끝에서 허공을 향해 던져진 새우깡을 정확히 조준하여 물고 가는 갈매기가 있는가 하면, 대담하게도 손끝에 있는 새우깡을 채어가는 갈매기도 있다. 인천의 섬 여행에 있어 갈매기는 판소리의 추임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승봉도 선착장에 도착하고 있는 대부고속훼리호

승봉도(昇鳳島)는 봉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는 신황도로 불렸다는데 옛날 신씨와 황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고기잡이를 하다 풍랑을 만나 이곳에서 정착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하는 승봉도는 면적은 4.89㎢, 해안선은 약 10km로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승봉마을

승봉도 트레킹은 딱히 정해진 관광코스가 없다. 선착장에서 외길을 따라 좌측으로 벌판(연꽃단지) 위 주암남초등학교 승봉분교를 바라보면서 10여분 가다 보면 승봉마을 초입에 도착한다. 이어 천주교 공소와 보건소가 나오고, 등나무넝쿨 우거진 펜션 ‘바다로 가는 길목’과 마트를 지나면 나지막한 언덕빼기 삼거리다. 전봇대엔 도로명 ‘승봉로 116번 길’이라 적혀있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남대문바위와 부채바위가 있는 승봉도 북쪽 해안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이일레해수욕장이 있는 남쪽 해안이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승봉로 116번 길' 삼거리

승봉도 트레킹 길은 최고봉 당산(68m)에서 흘러내린 산자락과 풍화작용이 빚어낸 해안가를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길을 조금 잘못 들었다고 해서 크게 헤매지 않아도 되는, 느림의 시간 속에 자신을 맡겨보는 여행이다. 약 11km에 이르는 느긋한 트레킹 길은 4~5시간이면 마칠 수 있다.       


이일레해변 풀등에 피어난 야생화 갯메꽃, 모래지치, 통보리사초, 갯완두      

                    

대이작도 방향으로 바라본 이일레해수욕장. 멀리 대이작도 부아산과 송이산이 솟아 있다

이일레해변으로 내려서니 모래사장 위에 낮게 엎드려 핀 연분홍 갯메꽃이 반긴다. 이일레해변은 길이가 1.3km, 평균 너비가 40m인데 우거진 송림이 배후를 이루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대이작도의 부아산과 송이산이 보이고, 바다 건너편으로는 사승봉도가 보인다.                            

갯메꽃

사승봉도는 개인의 소유로 승봉도 선착장에서 3km 남짓 떨어져 있는 무인도다. 이곳에서 무인도 체험이나 캠핑, 해루질을 원하는 사람들은 승봉도 선착장에서 5인승 어선을 타고 간다. 왕복 10만원이라니 5명이 간다면 2만원씩 분담하면 된다.                          

맑은 날의 사승봉도/사진=옹진군

썰물 때에 찾았지만 이일레 해수욕장은 잡티 없는 예쁜 소녀의 얼굴처럼 갯벌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경사 또한 완만하여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도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곳 같다.                     

모래지치

만조 시를 대비, 해수욕장 관리사무소 뒤쪽으로 산기슭을 통과해 좌측 해변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마침 간조 때라 크고 작은 돌무더기로 이뤄진 조간대를 따라 이일레선착장 방향으로 이동한다.                           

통보리사초

다시 드러난 이일레해변 풀등 위로는 여태껏 구경하지 못했던 승봉도 고유의 해안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모래지치, 통보리사초, 갯완두 등이 그것이다. 붉은 해당화도 모래 위에 고작 20~30cm 낮게 웅크려 꽃을 피웠다.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다시 조간대가 있는 해변으로 돌아와 송림을 따라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이일레해수욕장에서 순환도로 삼거리로 이어지는 산책로

산책로는 승봉마을과 당산, 부두치해변으로 갈리는 순환도로 삼거리로 이어진다. 부두치해변으로 가는 순환도로 양옆으로 당산 자락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 숲이 비경이다. 안면도 소나무 숲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해무에 싸인 소나무 숲에서 뿜어내는 푸른 기운이 폐부와 정신을 더욱 맑게 한다.     


인생사희(人生四喜) 중 하나 천리타향봉고인(千里他鄕逢古人)          

                

부두치해변 가는 길의 소나무 숲

상서로운 풍광 속에서 벗들과 함께함이 좋았는지 한 친구가 최치원이 당(唐) 유학 시절 지었다는 한시 ‘인생사희(人生四喜)’를 읊조리기 시작한다.       


無月洞房華燭夜(무월동방화촉야)/ 달도 없는 어두운 신혼방(洞房)에 촛불 밝혔을 때

七年大旱逢甘雨(칠년대한봉감우)/ 칠 년 가뭄 끝에 단비 만났을 때

少年登科揭名時(소년등과게명시)/ 소년 시절 과거 급제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때

千里他鄕逢古人(천리타향봉고인)/ 천리타향에서 고향 사람 만났을 때      


옆에 있던 친구가 “우리도 오늘 그중 하나를 얻었으니 기쁘지 않느냐”며 장단을 맞춘다. 맞는 말이다. 천리 타향 여수에서 올라와 오랜 벗들과 좋은 경치를 만끽하고 있으니, 인생사희 중 하나는 분명 득템한 것이리라.   



부두치해변

당산삼거리 지나 부두치 해변에 이르니 목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지에 먹을 듬뿍 머금어 곧 먹물이 스며 나오는 듯한 몽환적인 풍광이다. 목섬 건너편으로는 금도가 있는데 두 섬은 가까워 헤엄치면 곧 건너갈 정도로 가깝다.                           

목섬으로 가는 해변데크길

부두치 해변이 끝나는 곳에 목섬으로 향하는 데크길이 있다. 목섬은 만조 시에는 섬이 되나 평상시에는 거의 육지나 다름없이 오갈 수 있다. 바위 조각들로 이뤄진 섬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볼까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2시 조금 못 미친 시각으로 예상보다 2시간 먼저 비가 내리는 것이다.                           

목섬. 그 너머로 금도가 보인다

비를 피할 겸 목섬 앞 정자 쉼터에서 자리를 잡고 조촐한 오찬을 즐긴다. 여느 때 같으면 비좁더라도 자리를 함께하련만 코로나 때문에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하고 다른 쉼터를 찾아 떠난다. 그 사이 썰물은 떠 빠져 앞바다에 보이지 않던 지주식 굴 양식장이 드러난다. 비가 내리면서 안개는 더욱 짙어지는데 동쪽 바다 저편에서 ‘뿌~우웅, 뿌~우웅’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초대형 여객선의 남저음 뱃고동 같은 소리가 승봉도 트레킹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사실, 저 소리는 이일레해변에서부터 들리던 소리다. 추측하건대 배가 실제로 지나면서 내는 소리가 아닌, 어느 등대에서 울려대는 경고음 같다. 오늘처럼 해무가 짙게 낀 날은 등대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어 소리를 내어 위험을 알리는 것이리라 여겨본다.      


승봉도 북동쪽 해안의 비경 촛대바위, 남대문바위, 부채바위       

                   

목섬 쉼터에서 신황정 가는 해변. 가운데는 목섬이다

목섬 쉼터에서 선황정으로 향하는 해변데크길도 아름답고 편안하다. 해변에는 만조 시 몰려온 하얀 조개 껍떼기들이 띠를 이루고 있고, 갯바위에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참선에 들어있다.                     

신황정삼거리의 포토존. 멀리 보이는 섬은 금도

느릿한 발걸음으로 신황정삼거리에 이르니 액자로 된 포토존이 있다. 포토존에서 목섬과 금도를 배경 삼아 한컷 하고 승봉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신황정으로 향한다.                     

승봉도 동쪽 최고 조망처인 신황정. 날씨가 좋을 때는 자월도나 영흥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조망된다

날씨 좋을 때면 북쪽의 자월도와 동쪽의 영흥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오늘은 지나온 해안데크길과 목섬, 금도만 보일 뿐이다.                          

삼형제바위 중 하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신황정삼거리로 내려와 촛대바위로 향한다. 촛대바위로 가는 해안으로 들어서니 삐죽삐죽 솟은 바위 군락이 보인다. 삼형제바위다. 이어 테크길을 조금 지나니 촛대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밀물 때는 촛대바위 아랫부분이 잠겨 색다른 풍광이라는데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가 걸쳐 있는 촛대바위를 상상해 본다.                           

촛대바위. 만조 시 바위 아랫부분이 잠겨 장관을 연출한다

촛대바위에서 자갈 해변을 지나 카페가 있는 주랑죽공원삼거리에 도착한다. 통상 순환도로를 따라 주랑죽공원→해변 구멍바위→남대문바위→부채바위를 지나는 게 순서이나 우리는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당산삼거리로 향한다.                     

당산 아래의 송림

당산 오르는 길은 소나무와 덜꿩나무 군락으로 메숲지다. 하얀 덜꿩나무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고, 노란색 산괴불주머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잠시, 곰배령에 온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사이사이 둥글레나무꽃도 아홉 개의 초롱한 눈망울로 이마받이를 한다.                           

산괴불주머니 군락

바짓가랑이로 길섶 수풀에 맺힌 물방울을 떨구며 도착한 당산 정상은 조망이 없는 데다 우거져 있다.  하얀 찔레꽃 몇 송이가 서운해하지 말라며 웃는다.                     

승봉도 최고봉 당산(68m)

1km 남짓 비에 젖은 숲 터널을 뚫고 남대문바위 입구를 향한다. 막상 하산해 보니 부채바위를 가는 초입이다. 해변을 따라 부채바위부터 구경하고 해변데크를 타고 남대문바위에 이른다.                     

부채 모양의 부채바위

긴 세월 풍화작용으로 해안가 절벽에 작은 동굴이 만들어지고, 그 동굴이 차츰 커지고 깊어지면서 반대편에 압력을 가해 구멍을 뚫게 되는 것으로 지질학자들은 보고 있다. 남대문바위나 굴업도의 코끼리 바위가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남대문바위 옆쪽으로 돌아와 보니 이쪽에도 해식동굴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는 남대문바위도 촛대바위처럼 쪼개졌다가 결국 모래로 변할 것이다.                           

승봉도 아이콘 남대문바위

종일 짙은 해무와 남저음 뱃고동 소리로 몽환의 트레킹      


다시 부채바위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해안도로를 따라 병풍바위→승봉발전소→승봉도선착장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이정표를 잘못 보아 오전에 이일레해변에서 올랐던 순환도로 삼거리지점으로 올라온다.                      


비는 오락가락하고 시야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나이 쉰을 훨씬 넘었지만 세상은 오늘처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안갯속일 때가 많다. 해무로 인해 인천행 배는 1시간가량 지체되었고, 승봉도를 떠날 때까지 동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남저음 뱃고동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1) 위 치

    o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                              

승봉도 선착장

2) 가는 방법 :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과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가는 방법이 있음

    o 인천에서 가는 배는 자월→승봉→이작 순으로 하선한다. 방아머리선착장에서는 이작도행 배를

       타는데 하절기에는 방아머리→승봉→이작 순으로 하선한다.

       동절기에는 이작도행 배편과 덕적도행 배편이 통합 운항한다.

     - 예매 : 가보고 싶은 섬(홈페이지, 앱)           


    o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032-887~8203) : 인천 중구 항동 연안부두로 70(주차 1일 10,000원) 

      〈인천 출발 → 이작도〉

     - 고려고속페리 : 소요시간 (1시간 15분)-선종(쾌속선)-요금 편도(21,600원)

     - 대부해운       : 소요시간 (2시간 00분)-선종(차도선)-요금 편도(13,200원)      


    o 방아머리 선착장(032-886~8772)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황금로 1567-3(주차 무료)

       〈방아머리 출발 → 이작도〉

     - 대부해운    : 소요시간 (1시간 20분)-선종(차도선)-요금 편도(9,800원)

        (www.daebuhw.com)      


3) 섬에서 즐기기

                        

승봉도 8경

    o 해변 트레킹 : 11km (4~5시간)

     - 승봉도선착장~승봉마을~이일레해수욕장~순환도로~당산삼거리~부두치해변~해안데크길~목섬

     ~해안데크길~신황정~촛대바위~주랑죽공원~구멍바위~남대문바위~부채바위~병풍바위~승봉발전         소~승봉도선착장      


    o 사승봉도 캠핑 

     - 사승봉도 이모님 : 010-5117-1545

       날짜와 인원을 고려하여 미리 연락하면 사선 섭외 가능 (요금 10만원, 인원 5명 기준)      


 4) 편의 시설 (민박, 낚시 등)

    o 승봉도닷컴(www.seungbongdo.co.kr) 참조

    o 한국섬뉴스>가고싶은섬>인천광역시>승봉도(옹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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