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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Jul 04. 2021

인천 옹진 자월도

그렇게 나와 나 사이는 냉랭하다


사람의 인상을 보면, 그 사람의 깊이가 가늠되듯 섬도 그렇다. 배를 타고 가면서 마주하는 섬도 모습을 보면 그 깊이가 그려진다. 인천 앞바다 자월도는 대이작도와 승봉도를 가면서 두 번 마주한 바 있는데 고분고분한 산세가 아니었다. 해무가 낄 때면, 국사봉에서 좌우로 흘러내린 산자락은 동남아의 어느 밀림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중국 장가계의 신비로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승봉도 가면서 바라본 자월도

자월도(紫月島)란 이름도 어느 시의 제목과 흡사하지 않은가? 자주색은 사랑, 애정, 신비, 환상의 이미지를 상징하며 신비롭거나 부드러움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섬들의 이름은 대개 그 생김새나 속성에 따라 붙여졌는데 자월도는 그 범주 밖에 있는 것도 흥미롭다.         


대이작도·소이작도·승봉도를 아우르는 자월면의 본섬, 자월도       


인조 때 관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귀양살이를 와 첫날밤 보름달을 보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더니, 달이 붉어지며 바람이 일고 폭풍우가 몰아쳐 하늘도 자기의 억울함을 알아줬다 하여 자월도(紫月島)라 칭했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객선의 뒤를 따르는 갈매기떼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35㎞ 지점에 있는 자월도는 7.26㎢의 면적에 해안선 길이가 20.4㎞다. 주변의 대이작도·소이작도·승봉도 등과 함께 자월면을 이루는 자월면의 맏형이다. 국사봉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북쪽은 암석해안을 이루지만 그 외의 해안에는 하니깨·진모래·큰말·장골해변 등 모래사장이 많이 발달해 있다.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쉬어 연중 낚시꾼과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섬이다.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차량행렬

전날 여수에서 올라가 판교에서 여장을 푼 후, 다음 날 아침 6시 20분 대치역에서 친구들을 픽업하여 7시 20분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객선터미널 인근 대로변에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올해 보는 첫 광경으로, 주말 인천의 섬들을 가려는 차들이다. 여객터미널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일행을 먼저 들여보내고, 지인을 통해 알게 된 10여 분 거리의 식당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하고 자월도행 여객선에 오른다. 차도선 1층은 빈틈없이 차들로 꽉 차 있고, 2층과 3층 선실은 물론 그 옆 갑판에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동안 마음들을 옥죄어 왔던 코로나의 나날들로부터 차츰 벗어나고 있음이 느껴진다.    

달바위선착장에 도착하고 있는 여객선

자월도 달바위선착장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다. 오후 돌아갈 배 시간까지 약 7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일행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월도를 크게 돌아보는 코스를 택한다. 잠시 약하게 내리던 비도 그친 데다 해까지 나오지 않은 흐린 날씨여서 여름 트레킹으로는 그만이다.                     

달바위선착장 조금 지난 우측 해변

첫 번째 목표지인 목섬까지는 2.5km다. 이정표가 일러주는 대로 우측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바닷물은 백사장 저 아래로 밀려나 있고, 어느 인생 인양 작은 배 한 척이 그 위에 고단을 누이고 있다.       


힐링하우스라는 펜션에서 좌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구릉을 지그시 오르니 달바위선착장에서 목섬으로 가는 길과 만난다. 우리 일행 앞뒤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자월도의 경관을 즐기려는 트레커들이 보인다. 밭엔 옥수수가 허리만큼 자랐고, 논에서는 벼들이 청출어람의 기세로 자라고 있다.   

    

목섬을 뒤로하고 길 없는 길을 따라 이르는 국사봉        

                   

목섬 건너는 데크길

목섬은 작은 섬이다. 바람이 채근하지 않은 목섬의 바다는 쉬고 싶은 모양이다. 아주 작게 해조음을 읊조릴 뿐 대체로 고요하다. 목섬 팔각정에서 일행들과, 생의 한때를 함께 했음을 인증하는 샷을 남기고 돌아오는데 좌측 300여 m 남짓 떨어진 해안가에 남근석 같은 바위가 보인다. 촛대바위라 불리는데 입심 좋은 친구가 너스레를 떤다.                           

목섬 인근 촛대바위

“저것은 분명, ○대바위라 했을 것인데 차마 거시기해서 촛대바위라 부르고 있는 거시여. 봐봐, 내 말이 맞질 않냐?”                          

큰금계국이 만개한 하니깨 해변 위

모두 깔깔거리며, 일부러 길이 없는 해안을 따라 연분홍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는 하니깨해변에 이른다. 이어 애기똥풀과 큰금계국이 자연스레 일구어 놓은 노란색 화원을 지나 싱그러운 숲 속으로 접어든다. 국사봉까지 등산로의 잡풀을 제거해 놓아 큰 어려움이 없다. 소나무와 상록수림이 조화를 이룬 숲도 울창해 힐링하기에 참 좋다.                          

국사봉 정상

국사봉 정자엔 먼저 온 탐방객들로 분주했으나 일행에게 양보한다. 그들 중엔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트레킹 길에서 만나  어느새 눈에 익은 분들도 보인다, 날씨가 흐린 탓에 정상에서의 조망은 변변치 않다. 국사봉에서 면사무소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내리막이다,                     

국사봉 하산 길

일행은 팔선녀를 목적지로 두고 이정표 우측으로 난 임도로 내려선다. 하지만 정확한 방향 표시가 없어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간다.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옆 계곡은 우거지고 깊다. 그렇게 약 2km 남짓 지나고 나니 가늠골삼거리다. 우려했던 대로 팔선녀를 지나고 말았다.                          

가늠골 삼거리 이정표

가늠골삼거리에서 다시 임도로 들어선다. 길섶엔 흰색의 큰까지수영이 강아지 꼬리처럼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우물터 쉼터에 도착하여 각자가 준비해온 간식을 펼쳐 놓고 시장기를 달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어릴 적 할머니의 말씀은 아직도 유효하다. 길도 해찰이요, 시간도 해찰이다. 고교 친구들과 함께 모여 더디게 살아보는 삶, 자월도 트레킹의 묘미다.                           

우물터 쉼터


독바위 근방에서 음미해보는 이생진 詩人의 ‘자월도 바닷가’             

             

큰말해변의 아이들. 저 너머에 이작도와 승봉도가 희미하다

자월 3리에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 큰말해변에 이른다. 이 구간은 2차선 포장도로로 승용차, 마을버스, 공사용 트럭 등이 많이 다닌다. 날씨는 후덥지근 하지만 땡볕이 내리쬐지 않으니 다행이다. 큰말해변 풀등엔 분홍 갈메꽃이 한창이고, 드넓은 해변에서는 아이들 몇 명이 모래 속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다. 그 너머로 이작도와 승봉도가 풍경처럼 흐릿하게 걸쳐있다.                           

장골해변에서 본 독바위

큰말해변에서 장골해변 사이에 독바위가 있다. 독바위 정상엔 기도원이 있는데 출입을 금하여 오를 수 없다. 독바위 해변의 크고 작은 갯돌들 위로 굴 껍데기들이 수없이 붙어있다. 그 모양을 보니, 이생진 시인의 시 ‘자월도 바닷가’ 떠오른다.           


자월도 바닷가      


이른 아침 자월도 바닷가

혼자 굴을 따는 노인 

그게 나다

그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너무 말이 없으니 냉랭하다

그렇게 나와 나 사이는 냉랭하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만난 것 같다

그러다가 헤어졌다             

          

장골해변

달바위선착장에서 가까운 장골해변엔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인다. 풀등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이 보리사초와 갯메꽃처럼 풋풋하다. 허리춤까지 잠긴 물속에 들어가 파도의 촉감을 즐기는 가족들도 보인다. 큰말해변도 그렇지만 이곳 장골해변에도 그 흔한 해안쓰레기를 볼 수 없어 너무 쾌적함이 느껴진다.                           

달바위선착장 해산물 좌판장

달바위선착장에 도착하여, 자월도를 잘 아는 분을 만나 해변에 해안쓰레기가 없는 이유를 물었다. 해답은 수시로 치운다였다. 자월도도 중국이나 수도권에서 밀려든 해안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자월1·2·3리 주민들이 섬을 3등 분하여 매주 3회(월화목)에 수거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끄러운 바위틈에 끼인 쓰레기까지 회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수한 쓰레기는 인천시로 싣고 가 소각하거나 분리처리된다.      


갈수록 고령화되고, 쓰레기 천국이 되어 가는 섬들, 해결책은…      


그런데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섬 안의 쓰레기들이 문제라고 한다. 지금은 우거져 보이지 않으나 겨울이 되면 산속 여기저기에 숨겨진 쓰레기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페트병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텔레비전이나 작은 냉장고들도 있다. 자월도에 낚시하러 왔던 사람이나 쉬러 왔던 사람들이 몰래 버리고 간 것이다. 그런 탓에 자월도의 원주민들은 낚시꾼이나 여행객이 그리 달갑지 않다. 심지어는 마을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훼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인천행 여객선

섬은 갈수록 고령화되고, 시민의식은 실종되어 쓰레기 천국이 되어 가고 있는 섬-. 관광객만 몰리는 섬 정책을 쓰면서도 쓰레기 처리는 섬 주민에게만 맡겨놓고 탁상행정을 일삼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 섬 주민과 도시민들도 함께 살면서 섬도 회생시킬 수 있는 상생의 길은 정작 없는 것일까? 선착장을 떠나는 내게 자월도는 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1) 위 치

     o 인천 옹진군 자월면 자월리       


2) 가는 방법 :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과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출발

     o 인천항연안여객선터미널 : 인천 중구 항동 연안부두로 70(주차 1일 10,000원) 

       〈인천 출발 → 자월도〉

      - 고려고속페리 : 쾌속선, 소요시간 50분, 요금 19,900원

      - 대부해운     : 차도선, 소요시간 1시간 20분, 요금 12,100원      

       * 예매 : 여객선 예약예매 ‘가보고 싶은 섬’(홈페이지, 앱)

     o 방아머리 선착장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황금로 1567-3(주차 무료)

        〈방아머리 출발 → 자월도〉

      - 대부해운     : 대부고속훼리3호, 홈페이지 http ://www.daebuhw.com     

        ☎ (032)886-8772      


3) 섬에서 즐기기 (트레킹, 캠핑, 라이딩) 

    <트레킹>

     o 1코스 : 면사무소-막태골재-국사봉(정자)-메리재-가늠골-마바위-진모래

     o 2코스 : 죽바위삼거리-국사봉(정자)-메리재-가늠골-마바위-진모래

     o 3코스 : 윷골-국사봉(정자)-메리재-가늠골-마바위-진모래

     o 4코스 : 하니깨-국사봉(정자)-메리재-가늠골-마바위-진모래 

     o 5코스 : 선착장-목섬-하니깨-국사봉(정자)-면사무소삼거리-가늠골삼거리-자월3리

                 -큰말해변-독바위-장골해변-선착장(섬 일주)      

     <캠핑>

      o 장골해변 : 2인 텐트 15,000원/자월번영회 관리 ☎ (032)833-6033 


4) 편의 시설 (펜션, 식당 등)

     o 자월면사무소(☎ 032-899-3750)       


5) 면내 교통

     o 공영버스 : 1일 10회 운영(1,000원/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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