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여행하게 하라
아이들이 초등학생 시절 제주도를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 제주도라도 다녀와야, 아이들이 비행기 안 타본 촌놈 축에 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여행 준비는 가장인 내 몫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이 흘러, 가족이 다시 제주도를 방문하게 됐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여행 준비는 딸아이가 맡았다. 딸아이가 서너 달 전부터 스케줄을 잡으며, 가보고 싶은 곳을 말하라기에 ‘우도’를 택했다.
반갑다 우도, 아이들을 따라나서는 제주 여행
성산포에는 몇 번 가봤지만 성산포에서 3.8km, 여객선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우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로부터 소 섬이라 불리었던 우도는 6.18㎢의 면적에 해안선 길이가 17㎞에 이른다. 신생대 홍적세 동안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섬인데 조선 숙종 때에는 말을 기르는 국가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2008년, 제주시가 우도면 전 해상과 육지 일부를 우도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우도행 배는 성산포와 구좌읍 종달리 두 군데서 출발해 천진항과 하우목동항을 하루 20회 이상(하절기, 4~9월 기준) 오간다. 성산포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천진항 중간쯤에 이를 무렵,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우도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마치 물 위에 소가 누워있는 듯한 형상이라는데 이 모습을 전포망도(前浦望島)라 부른다. 우도 8경 중의 첫 번째인데, 말하자면 청진항에 이르기 전 바라본 우도 모습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천진항에 도착하니 경찰이 그곳까지 나와, 메가폰을 잡고 여행 시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전기차를 빌릴 때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몇 개 업체를 면밀하게 비교한 후 이용하라는 것이다.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고개를 돌려 건너온 바다를 바라보면 이 경관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코발트색 바다 너머로는 제주의 오름들과 멀리 한라산이 첩첩이 펼쳐져 있다. 우도 8경 중 두 번째로 천진관산(天津觀山)이라 부른다.
우리 가족은 청진항에서 시계방향으로 우도를 탐방하되 각자 선호하는 방식을 택했다. 나는 뚜벅이로 우도 올레길과 해안도로를 번갈아 가며 트레킹 하고, 아내와 딸은 전기차로 해안 일주도로를, 아들은 자전거로 양쪽을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하는, 말하자면 ‘각자 함께’ 하는 여행인 셈이다.
올레길과 해안도로를 오가며, 우도의 땅과 바다와 바람을 담다
첫 목적지는 천연기념물 438호이자 우도 8경 중 세 번째인 서빈백사(西濱白沙)다. 우도 서쪽 바닷가에 형성된 하얀 홍조단괴 해변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명승지다. 멀리서 보면 흰모래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파도에 마모된 공깃돌 크기의 흰색 돌들 집합체다.
우도와 성산 사이, 바다 밑에는 붉은색 석회 성분을 가진 홍조류가 암석이나 조개껍데기에 붙어 눈덩어리처럼 둥글게 뭉쳐 자라는데 이것을 홍조단괴라 한다. 이러한 홍조단괴가 조류에 떠밀려와 파도에 마모되면서 만든 해변이 서빈백사다.
서빈백사에서 하우목동항까지는 1.4km다. 하우목동항에도 전기차 대여소가 많아, 여객선에서 막 내린 여행객들이 각자 전기차를 빌려 나서는 바람에 해안도로는 더욱 번잡하다.
하우목동항에서 좌측으로 난 올레길로 접어드니 한적한 길에 탐스러운 수국이 한창이다. 수국 옆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담장 너머로는 말 두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오전 11시 40분쯤, 오봉리 마을을 지나는데 아이들로부터 점심을 먹자는 전화가 와서 다시 해안도로로 나온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메뉴는 수제 햄버거다. 피사의 탑처럼 높이 솟은 햄버거 3개를 주문해 가족이 나눠 먹었는데 가성비가 그만이다. 식당에 들어갈 때 두어 대밖에 없던 전기차는 나올 무렵, 앞마당을 거의 채웠다.
다음 목적지는 전흘동 망루등대다. 망루등대 조금 못 미쳐 바람개비가 있는 물들이동산 의자에 앉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본다.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쉬 가늠되지 않는 피안의 세계다. 그때 들려오는 바다새의 울음 같은 ‘휘익~’ 소리, 바로 해녀의 숨비소리다. 100여 미터 앞바다에 부표 같은 붉은색 태왁 10여 개가 떠 있다. 해녀에게 바다는 부엌이라고 한다.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깊은 곳에서 먹을거리를 꺼내 태왁에 담는다.
서빈백사(西濱白沙) 지나, 밤바다를 불꽃처럼 수놓은 야항어범(夜航漁帆)으로
망루(봉수대)와 하얀 등대는 절묘하게 어울린다.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라는 의미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조선 시대 군사통신시설인데 이 망루에서는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5인 1조가 근무했다 한다.
망루에서 드라마 인어공주 촬영 장소를 지나, 하고수동 해수욕장으로 향하는데 우도팔경 중 네 번째인 야항어범(夜航漁帆) 표지판이 있다. 여름밤 이곳에서 바다를 보면, 형형색색 밝힌 수백 척의 고기잡이배 불빛이 불꽃놀이를 하는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족 혹은 연인끼리 추억 쌓기에 좋은 야간관광 명소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물빛이 고운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지나 비양도에 도착한다. 제주도에는 비양도가 두 곳이 있는데 이곳을 동비양도, 남쪽 한림읍 비양도를 서비양도라 부른다. 동비양도는 해 뜨는 모습이 수평선 속에서 해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우도에서 120m 떨어진 섬으로 전복, 소라, 문어, 오분작이 등 해산물의 보고인데 지금은 연륙교로 우도와 연결되어 있다. 비양도에는 왜구의 침입을 본도(제주)와 교신했던 봉화대와 주민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당 등 다양한 유적이 산재해 있다.
비양도 초입에는 승마체험장이 있는데 10분 정도를 타는데 요금은 성인 1만 5000원이다. 동창생인듯한 아주머니 몇 명이 말을 타려고 기다리는 모습이 정겹다. 봉수대 아래에는 울긋불긋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해변 끝에는 등대가 있는데 썰물일 경우,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등대 가는 길 우측으로 바라본 검멀레 해안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다시 해안도로로 나와 영일동 너른구미를 지나 검멀레에 이른다. 검멀레 일대에는 우도 8경 중 4곳이 몰려있다. 그런데 동안경굴(東岸鯨窟)과 후해석벽(後海石壁), 주간명월(晝間明月) 이 세 곳을 구경하려면 보트를 타야만 한다. 보트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성인 1인당 1만 5000원이다.
승객 20여 명을 태운 보트는 검멀레 앞바다를 태극 모양으로 크게 서너 바퀴 돌더니, 먼저 동안경굴로 향한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깊은 동굴에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동굴은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는데 동굴안에서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오늘은 동굴에 물이 반쯤 차 있어 지나면서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어 후해석벽인데 해발 132.5m 우도봉에서 흘러내린 거대한 석벽을 말한다. 2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바다에서 첫 불기둥이 치솟을 때 지층이 차곡차곡 쌓여 생성된 기암절벽인데 바다 위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우도에서 해돋이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니, 그 멋진 광경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검멀레‘ 해식동굴에서 보는 낮에 뜨는 달, 주간명월(晝間明月)
이제 보트는 낮에도 달이 뜬다는 주간명월로 향한다. 주간명월은 해의 기울기에 따라 송사리 떼처럼 해식동굴로 들어온 햇살이 바닷물과 만나 윤슬을 만들고, 그 윤슬이 동굴 천장의 둥그스런 돌에 반사되어 낮달이 뜬 모습을 연출해 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광경을 순 우리말로 ‘달그리안’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동굴에 신룡이 산다’고 기록하고 있을 만큼 신령스럽게 보인다. 보트 선장에 의하면 달그리안은 주로 늦가을에 나타나는데, 실제 동굴 안에 낮달이 뜬 것처럼 환하다고 한다.
다시 검멀레로 돌아와 우도 명물인 땅콩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힌 후, 우도 8경 중 마지막인 지두청사(地頭靑莎)를 보기 위해 올레길을 따라 우도봉(쇠머리오름)으로 향한다. 지두청사란 우도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푸른 빛깔의 우도 잔디와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진 모습을 말한다.
우보동을 향해 한걸음 오를수록 우도의 전체 모습은 그만큼 낮아진다. 우두봉 정상에 이르자 쇠머리오름의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목책 길, 그 아래 초원에서는 말이 풀을 뜯고, 비취색 바다 너머로 제주의 오름들과 한라산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날, 모든 계절이 아름답게만 느껴질 것 같다.
우도봉 정상에는 1906년 건립된 등대가 있다. 100여 년간 인근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등불이 되었으나 노후되어 2003년 그 짐을 내려놓았다. 대신 바로 옆에 새로 건립된 등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등탑은 상징적으로 아직 보존되고 있다.
올레길은 등대를 지나 내리막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미국 킹스톤 등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등대, 영덕 창포말 등대 등 국내외 여러 모형의 등대가 전시되어 있다. 초록의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목가적인 길은 사뭇 낮아져 천진항으로 가는 길과 돌칸이 가는 길로 나뉜다.
돌칸이에서는 성산일출봉이 잡힐 듯 보이는데, 이곳은 1993년 영화 화엄경을 촬영한 장소다. 불교 경전 화엄경을 기반으로 고은이 쓴 동명소설을 장선우 씨가 감독했다. 13살 소년 선재가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내용인데 1993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알프레드바우어상을 수상했다.
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천진항 로터리의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종착지인 천진항으로 향한다. 천진항 로터리에는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서 있다. 아침에는 건성으로 지나쳐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수탈 세력에 맞서 싸운 제주 해녀들의 사활을 건 투쟁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1931~32년 일제는 관제 해녀조합을 만들어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겼다. 조합비, 입어료,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금품도 갈취했다. 참다못한 해녀 1000여 명이 들고일어나 이 자리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펼친 역사적인 자리다. 비석에 적힌 해녀 노래가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이른 봄 고향 산천 부모 형제 이별하고 /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 / 파도 세고 무서운 바당으로 돈벌이 간다//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해녀노래> 3~4절, 강관순 작사)
이곳 우도를 포함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총 238차례의 시위에 연인원 1만 7130명이 참여한 국내 최대 여성 항일운동이었다고 한다. 우도 바다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수만 가지의 소리만 내고 있다.
1) 위 치
o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2) 가는 방법 : 성산포와 종달리에서 출발
o성산포항 종합여객터미널 :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등용로 130-21
(주차 : 8000원/1일)
〈성산포↔우도(하우목동항, 청진항〉 : 선착순 현장 발권
- 07:00~18:30까지(하절기 기준) 30분 간격으로 운항
o 〈종달리↔우도(하우목동항)〉
- 09:00~16:00까지(하절기 기준) 6회 운항
o 매표소 문의 : 성산대합실 064)782-5671, 천진항대합실 064)783-0448,
하우목동항 대합실 064)782-7730, 종달대합실 064)782-7719
우도해운 064)782-8425
3) 섬에서 즐기기 (트레킹, 백패킹, 보트)
<트레킹>
o올레길(11km) : 제주 올레길 1-1코스 따라 우도 한 바퀴
: 천진항-홍조단괴(서빈백사)-하우목동-산물통입구-파평윤씨공원-하고수동해변-연지마
-우도봉-천진항
o해안도로 일주 : 현지 대여 전기차, 자전거, 또는 공영버스
<캠핑>
o동비양도(비양도 연평리 야영장)
- 노지 형태의 야영장, 이용요금 및 주차요금 없음
‘해녀의 집’ 인근 주차 가능(주차장 무료)
<보트>
o검멀레 해변(2곳) 등
- 인원이 차면 보트가 30분 간격으로 출발(이용료: 1만 5000원/1인)
4) 편의 시설 (펜션, 식당 등)
o우도면 사무소 (064-728-1527)
5) 면내 공영버스 : 09:00부터 15~30분 간격 운행
o우도마을버스 (064-782-2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