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꼬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꼬막 섬
어릴 적 섬사람들의 제사상에도 귀하게 등장하는 게 있었다. 인근의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참꼬막이었다. 아버지께서 오일장에 나가 사 온 것으로 상에만 올려놓을 정도의 소량이었다. 어쩌다 맛을 보면 쫄깃한 부드러움이 혀에 착 감겼다. 여자만의 귀한 참꼬막이 멀리 신안의 섬까지 온 걸 보면, 당시엔 참꼬막이 그만큼 흔했던 모양이다.
내 어머니가 살고계신 듯 화려하지 않은 섬
지도를 보면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순천·벌교 해안이 항아리처럼 바닷물을 가두고 있는데 이곳이 여자만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비가 내리면 이 일대에서 흘러내린 미세한 흙 알갱이들은 먼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쌓이고 또 쌓여왔다. 이렇게 퇴적된 지층이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습지와 갯벌을 형성해 놓았다. 이 지역 꼬막들은 양질의 갯벌이 내어놓은 미생물을 먹고 자란다. 그러기에 영양이 풍부하고, 내장에 모래를 담고 있지 않아 식감도 부드럽다.
여자만의 꼬막은 ‘여수 꼬막’ ‘고흥 꼬막’으로 불리지 않고 ‘벌교 꼬막’으로 통한다. 벌교 꼬막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소설 태백산맥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태백산맥에서는 벌교 꼬막의 특징과 맛을 감칠맛 나게 묘사하는 구절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벌교 꼬막의 80% 이상이 여자만 한가운데에 떠 있는 섬, ‘장도’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예로부터 장도를 '꼬막 섬'이라 부른 이유다.
올해 4월, 여수시 화정면 여자도를 트레킹 하다가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장도를 보았다. 애초 꼬막 철인 겨울에 장도를 찾으려 했으나, 지난 6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2021년 찾아가고 싶은 33섬」 중 ‘걷기 좋은 섬’에 장도가 선정되어 앞당겨 발길을 옮겨본다.
장도 가는 배는 벌교읍 상진항에서 출발한다. 배는 상진항과 장도를 하루 두 차례 오 간다. 여자만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물때에 따라 출항 시간이 다르므로 배의 운항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한다.
여수에서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하여 상진항에 도착하니 5시 30분이다. 아침 해는 이미 떠올랐고, 차도선 '장도사랑호'는 엔진을 켜고 승객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잠시 후 벌교터미널과 상진항을 오가는 24인승 마을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을 포함, 예닐곱 명을 싣고 배는 장도를 향해 출발한다.
장도, 행안부 ‘2021년 걷기 좋은 섬’에 선정
배는 힘차게 스크루를 돌려 상진항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용솟음치는 탁한 물살 위로 황금빛 아침 햇살이 파고든다. 배가 해도를 지나자 항로 양옆으로 작은 부표가 떠 있다. 선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새꼬막 양식장이라 한다. 바다에 펼쳐놓은 그물에 새꼬막 종표가 붙으면, 그 종표들을 털어내어 바다 밑바닥에 착근시키는 시기다. 잔잔한 수면 위로 잠에서 막 깨어난 전어 새끼와 숭어 새끼들이 몸을 솟구쳐 도움닫기 멀리뛰기를 한다.
배는 6시 30분 장도 신경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는 승객들을 이동시킬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벌교로 나갈 차량들과 승객들도 승선 채비에 분주하다.
장도는 행정리 3개리(대촌리, 부수리, 해도리)와 자연부락 6개로 구성되어 있다. 대촌리는 장도에서 가장 크다 하여 대촌(大村), 부수리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해안선은 15.9km로 육지 쪽에서 바라본 섬의 형태가 노루와 비슷하다 하여 장도(獐島)라 부른다.
장도는 ‘뻘배가 있는 풍경 천연 갯벌’이라는 컨셉으로 2016년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됐다. 그 뒤 전남도로부터 받은 예산으로 방문객 편의를 위한 마을 게스트하우스와 마을식당을 오픈하고 생태 탐방로 등을 조성해 왔다. 트레킹 전체 코스는 약 14km 정도인데 보통 마을버스의 종점인 부수마을에서 시작한다. 코스 간 연결이 잘 되어있어 탐방객의 기호에 따라 어느 코스를 먼저 선택해도 무리는 없다.
마을버스는 부수마을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내린다. 이곳에서 장도 섬 코디네이터인 박형욱 씨로부터 트레킹 코스에 대한 안내를 받은 후 첫 번째 목적지인 부수선착장으로 향한다.
논에서는 벼들이 왕성하게 자라고 도로 주변에는 수국이 절정기를 넘어서고 있다. 썰물로 이제 막 제 얼굴을 드러낸 갯벌은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바다의 수면처럼 반짝인다. 부수선착장 앞 소도 너머로 여자도가 보인다.
섬의 최고봉 76m에 불과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트레킹
하방금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동네 야산을 오르는 듯 쉽고 편하다. 하방금전망대 바로 못 미쳐 땅콩밭에 나와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간밤에 짐승(노루 추정)들이 내려와 땅콩 뿌리를 파헤쳐 놓았다며 안타까워한다.
이른 아침부터 왜 나와계시냐고 물었더니, 낮에는 더워서 일을 할 수 없어 햇볕이 덜 따가운 아침저녁으로 일을 한다고 한다. 영락없는 어릴 적 고향의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이다.
하방금이란 아랫목에 있는 방금, 즉 배를 대는 곳이란 의미인데 벌교천에서 출발한 배가 장도에 가장 빠르게 도착하는 루트라고 한다. 하방금전망대에 서니, 순천만과 여수 화양면의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물빛이 같은 갯벌로 이루어진 여자도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거친 호우가 일으킨 탁류처럼, 탁하다 못해 진득해 보일 정도다. 장도가 여자도에 비해 수심이 낮아 물살의 들고 남에 진흙 성분이 쉽게 쓸려 나오기 때문인 듯하다. 진득하면서도 건강한 장도 갯벌은 도립공원이자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세계적 유산이다. 이러한 갯벌에서 여자만 꼬막과 낙지가 자란다.
북두름산에서 다시 부수마을로 내려와 목섬으로 향한다. 목섬은 코끼리 섬이라고도 하는데 이와 관련된 스토리는 이렇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 일본 왕실은 인도네시아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왔다. 하루 네댓 말의 콩을 먹어치우는 먹성을 감당하지 못해 굶주리기가 다반사였다. 코끼리는 사람들의 놀림까지 받다 보니 성격이 포악해졌다. 급기야, 코끼리는 자신에게 침을 뱉고 비웃던 조선 관리를 밟아 죽이고 만다.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그렇다고 일본 천왕의 친교 선물을 죽일 수는 없었다. 태종은 코끼리를 순천부의 작은 섬 ‘장도’로 귀양을 보내라는 어명을 내린다. 수십 척의 어선과 병선이 동원돼 코끼리는 장도로 옮겨졌다. 지금은 보성 땅이지만 당시 장도는 순천부에 속해 있었다.
이런 목섬 기슭에 최근 누렁이무덤(소무덤)이 생겼다. ‘노인과 소’라는 제목으로 인간극장(2017년)에 출현했던 소 ‘누렁이’와 윤정수 할아버지의 27년간 긴 우정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할아버지는 밭갈이를 위해 누렁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목섬을 출입했다. 그런 누렁이가 2018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자 목섬 기슭에 묻어주었다.
목섬을 지나 보건소와 의용소방대, 파출소 등 소위 장도의 행정타운이 있는 새터로 향한다. 이곳엔 학생수가 한때 200여 명에 달했다는 벌교초등학교 장도분교가 있는데 2019년 3월 1일 자로 휴교 상태다.
할머니들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새겨진 ‘뻘배의 흔적들’
대촌마을에는 붉은 능소화들이 활짝 피어 월담을 했다. 밭에서 잘 익은 참외와 토마토를 따서 옆집으로 향하던 한 할머니는 “코로나만 아니면 같이 가서 나눠 먹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아쉽다”며 애절한 눈빛으로 지나던 탐방객을 맞이한다.
대촌마을 쉼터에서 쉬고 계시는 할머니들과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예전엔 11월부터 3월까지 꼬막 철이 되면 뻘배(국가중요어업유산 제2호로 지정)를 타고 갯벌을 오가며 참꼬막을 캤다고 한다. 그때는 집을 나서기만 하면 참꼬막 천지였는데 지금은 장도 사람들도 구경하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그러다 보니, 뻘배를 타고 나가 참꼬막을 잡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말린 옥수수 속대에서 알갱이를 까고 있는 할머니들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뻘배와 함께한 지난 세월과 노동의 흔적들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 할머니는 참꼬막이 사라진 원인을 바다 오염으로 여긴다. 남해안 고속도로를 잇는 벌교대교가 놓인 후 시멘트와 철분 성분이 갯벌에 녹아들면서 참꼬막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마나 현재는 새꼬막으로 꼬막 섬 장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조업은 수심 3~5m의 바다속에서 이뤄진다. 봄에 종표를 뿌려 가을부터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자본이 투하된 전문 조업선에 의해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력이 없는 마을 사람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대촌마을을 뒤로하고 대촌당산을 지나 신경백사장으로 향한다. 일부 구간이 잡풀로 우거져 있어 발길로 조심스레 헤쳐나가며 신경백사장에 도착한다. 신경마을의 쌍둥이 우물에서 시원한 샘물로 땀을 씻어낸 후 벚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건너편 여자도를 바라본다. 출항까지 두어 시간 이상 남아, 느긋하게 즐기는 망중한이다.
-장도에서 여자도를 바라보며-
마시면 쌍둥이를 낳는다는
쌍둥이 우물로 땀을 씻어내고
벚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여자도를 바라본다
해안가에서 불현듯 나타난
초췌한 고양이 한 마리
흠칫흠칫 가다 돌아서길 여러 번
그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보드라운 파도의 음성으로
발성을 연습한
님 찾는 매미들의 노래
애잔하기보다는 감미롭다
온다던 비는 오지 않고
뭉게구름 피어 있는 하늘을 향해
힘차게 튀어 오르는
숭어 새끼들, 전어 새끼들
1) 위 치
o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도리
2) 가는 방법 : 벌교 상진항에서 출발 (주차 무료)
o 벌교터미널에서 마을버스(사랑호) 이용 시 10분 거리(버스비 무료)
- 벌교 마을버스 기사(010-5485-5886)
o 〈상진항↔장도(신경선착장)〉 : ‘장도 사랑호’ 현장 발권 (성인 편도 3000원)
- 하루 2차례 운항(물때에 따라 다름) : ‘장도 사랑호 운항시간표’ 참조
- 문의 : 사랑호 이병훈 선장 (010-7926-2959), 보성군청 건설행정계 (061-850-5523)
- 한국섬뉴스>가고싶은섬>전남>장도(보성) 클릭
o 〈주의사항〉
- 차도선인 장도사랑호는 차량 4대까지만 선적할 수 있음. 차량을 선적하지 못할 경우 장도에 하루 더 머물러야 할 수도 있으므로 벌교 상진항에 차를 두고 오는 게 좋음. 배 시간에 맞춰 마을버스가 무 료로 운행되니 버스를 이용한 트레킹을 권함.
3) 섬에서 즐기기 (트레킹, 라이딩)
〈트레킹〉 약 10Km
o 부수마을-부수마을선착장-하방금전망대-북두름산-부수마을-목섬(왕복)-새터-대촌마을
–대촌당산-신경백사장-쌍둥이우물-신경선착장 (4시간 30분 소요, 휴식시간 제외)
4) 편의 시설 및 트레킹 안내
o 박형욱 장도 섬코디네이터 : (010-8914-5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