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 먹고 포구~섬 낭만 산책,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탐방
지난 9월 7일, 전남 광양시는 유일한 섬 배알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해상보도교 2개소의 명칭을 확정해 공개했다. 시는 공모를 거쳐 망덕포구~배알도 해상보도 1교와, 배알도~근린공원 해상보도 2교의 명칭을 각각 ‘배알도 별 헤는 다리’와 ‘배알도 해맞이 다리’로 명명키로 했다.
제1교 ‘배알도 별 헤는 다리’는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에서 보존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별빛 감성을 담았다. 제2교 ‘배알도 해맞이 다리’는 빛과 볕의 도시 광양의 무한 발전 가능성을 상징하는 태양과 빼어난 일출 경관을 자랑하는 장소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가을은 광양 망덕포구로 몰려오는 '전어떼'로 시작된다
이러한 내용이 올라와 있는 본지 기사를 본, 화순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주말에 순천에 사는 친구와 광양 망덕포구에서 만나 전어회를 먹자는 것이었다. 친구는 광양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데 전어철이 되면 응당 망덕포구를 찾곤 했다고 한다.
필자가 서울 생활을 접고 여수로 내려와 느낀 것 중 하나는 남해안의 전어 맛이다. 남해안 전어는 수도권에서 먹는 전어 맛과는 너무 맛이 달랐다. 씨알이 굵은 몸집을 썰어놓은 살결에서는 부드러움이 감돌고, 식감은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하다. 흔히 말하는 해금내(물속에서 흙이나 각종 유기 물질이 썩어서 나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광양 망덕포구에서 맛본 전어 맛은 여수 전어와는 또 다른 맛이다. 훨씬 고소하고 달짝지근하다. 망덕포구의 전어 맛은 왜 이리 특출할까? 망덕포구는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빠른 물살만큼 전어의 운동량이 활발해 탄탄한 육질과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망덕포구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전어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8월 말에서 9월 초면 망덕포구 무적섬 광장에서는 전어축제가 열린다. 코로나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축제는 멈췄지만 전어는 어김없이 풍요로운 가을의 대명사로 우리를 찾아왔다.
포구를 따라 늘어선 망덕포구의 횟집은 회, 무침, 구이 등 다채로운 전어 요리를 맛깔스럽게 차려낸다. 망덕포구가 아니더라도 전국적으로 전어가 생산되는 곳은 많지만, 망덕포구의 풍광과 손맛에는 뭔가가 있다. 망덕포구의 전어에는 설명되지 않는 DNA가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어회에 이어 새콤달콤 회무침, 왕소금을 뿌려 노릇노릇 구워낸 전어구이를 먹다 보면 단지 한 점의 생선회가 아니라 익어가는 가을이란 걸 표정으로 말하게 된다. 이러한 전어는 맛도 맛이지만 칼슘, 미네랄,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어린이들의 뼈 성장과 어른들의 혈관 건강까지 두루 챙길 수 있다.
전어에 얽힌 유쾌하고 해학적인 서사도 많다.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 먹을 만큼 맛있다는 뜻에서 錢漁(전어), 머리부터 버리지 않고 모두 다 먹을 수 있어서 全漁(전어) 등 다양한 뜻을 담고 있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머리에 깨가 서 말’, ‘가을 전어 한 마리면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는 말들을 더듬어 보면 전어의 맛이 더욱 색다르게 다가온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윤동주 유고집을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
전어회를 먹고 나서, 인근의 윤동주 유고집을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에 들러본다. 일제강점기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의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에서 보존된 사연에 대해 국어교사인 친구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정병욱은 1922년 출생으로 윤동주보다 5살 적고 연희전문 문과 입학 또한 윤동주가 2년 먼저다. 정병욱이 1940년 4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뻐꾸기의 전설’을 읽은 선배 윤동주가 기숙사 방으로 찾아와 처음 만난 이후, 북아현동 등지에서 하숙을 하며 친하게 지낸다.
1941년 윤동주는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육필로 3부를 작성하여 본인이 1부를 소장하고 연희전문 스승인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을 맡긴다. 이후 윤동주는 1945년 2월, 일본에서 독립운동 죄목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만 27세로 순절한다.
정병욱의 고향은 남해군 설천면이나 하동 출신의 어머니가 망덕포구로 옮겨와 도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병욱은 1944년 징병에 끌려가면서 이 원고를 어머니에게 맡긴다. 어머니는 일제의 눈을 피하며, 이 원고를 마루 밑 항아리에 보관했는데 결국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고가 됐다. 정병욱은 1948년 강처중과 함께 윤동주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비로소 윤동주 시집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순간이다.
북간도와 망덕, 비슷한 점을 찾으려 애써본다. 바로 백두대간이다. 망덕포구는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시작점인 망덕산 기슭에 있다. 호남정맥은 전북 진안군 주화산에서 백두대간 본류를 만나 백두산까지 달린다. 모르긴 해도 백두대간은 그 형태를 달리하여 북간도까지 이어나갔을 것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한민족의 등줄기가 잉태한 노래이기도 한 것이다.
이어 정병욱 가옥에서 섬진강휴게소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성된 윤동주 시비 공원을 향해 걷는다. 해변 데크 우측으로는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나온 여정을 회상하는 듯 고요하다. 아직은 물빛이 남해바다의 코발트색이 아닌 시퍼런 대나무 빛깔이다. 시비 공원은 세련미는 없지만 윤동주의 시심에 한발 다가가기에는 족하다.
'망덕포구~배알도~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해변 산책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이제 배알도로 향한다. 배알도는 작은 무인도로 망덕산을 향해 절하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포구와 가까운 배알도는 아름다운 섬 정원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해상보도교가 최근 완공되면서 ‘망덕포구~배알도~근린공원’까지 이어지는 낭만적인 해변 산책로가 완성됐다. 남녀노소 걸을 수 있을 코스다. 배알도 정상 전망대에 서면 섬진강과 하동의 백운산과 남해의 망운산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망덕포구 반대 방향 근린공원에는 해송 500여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캠핑카와 텐트 등이 수없이 보인다. 샤워시설 및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다. 무료 노지 캠핑이 가능한 곳이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야영과 불 피우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캠핑장 앞 백사장은 길이 500m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해루질 모습을 볼 수 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해변의 모습이다.
이곳 배알도에서 섬진강휴게소가 멀지 않다. 또한 하동, 남해, 구례, 여수, 순천 등이 가깝다. 이 가을, 남해고속도 섬진강휴게소를 지난다면 핸들을 살짝 꺾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전어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떼 지어 오르는 포구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1) 위 치
o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65
2) 가는 방법
o 승용차 (광양시 관광과 문의 : 061, 797-2721)
3) 망덕포구 및 배알도에서 즐기기 (전어회, 트레킹, 캠핑)
o 트레킹 코스
- 망덕포구→정병옥 가옥→윤동주 시비공원→배알도 별헤는다리→배알도
→배알도 해맞이다리→근린공원→배알도 해맞이다리→배알도 별헤는다리→망덕포구
o 캠핑: 배알도 해맞이다리 입구 근린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