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 모양새’처럼 언제 가도 쉼표가 있는 섬
도시의 새벽은 전철이, 항구의 새벽은 여객선이 깨운다
도시의 새벽을 전철이 깨운다면 항구의 새벽은 여객선이 깨운다. 새벽 6시 20분에 도착한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인근 식당은 벌써부터 북적인다. 여객선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로 출항하기 위해 전조등을 켜고 엔진을 데우고 있다. 개찰구를 통과한 승객들은 승선표에 적힌 배를 타기 위해 요리조리 두리번거리다 잰걸음으로 움직인다.
두미도(頭尾島)를 오가는 카페리 여객선 바다누리호는 승객 124명 승선에 승용차 6대까지 실을 수 있다. 새벽 6시 51분, 승객 50여명과 승용차 5대를 실은 바다누리호는 어김없이 통영항을 출발한다. 막 동살이 잡혀 오는 시각, 멀어져 가는 통영시가지엔 여전히 가로등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배가 출항한 지 10여 분쯤 됐을까, 미륵산 너머로 충혈된 하현달이 떠 있다. 밤새 통영바다를 지키려 불침번을 서다가 동녘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아침 해와 맞교대를 하는 듯하다.
곧이어 아침 해가 솟아올랐지만, 바다는 해무로 뿌옇기만 해서 원거리의 섬들은 시야 뒤로 숨었다. 배가 한 참 달렸을 무렵, 큰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추도다. 그리고 얼마 후 목적지인 두미도 북구마을 선착장에 도착한다. 승객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하선한다. 차림새들을 보니 등산복은 우리뿐이고, 낚시객 복장이거나 편안한 복장으로 지인들끼리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통영 바다에서 가장 높은 산을 들어 올린, 작은 거인 두미도
두미도는 총면적 5.03㎢, 해안선 길이가 11㎞로 작은 섬이라 할 수 있다. 욕지도와 삼천포 사이에 위치해 풍광이 아름답고,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난대림 수목이 울창하다. 섬의 모양새는 가오리 한 마리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둥그런 몸통에 작은 꼬리가 붙은 형상이다.
그러나 섬의 기질은 남성적이다. 사막의 피라미드처럼 바다 한가운데 천황산(468m)과 투구봉(333m)을 거느리고 근엄하게 솟아 있다. 통영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미륵산(461m)이나 욕지도의 천황산(392m) 보다 더 높다. 그런 탓에 남해의 조도·호도, 사천의 신수도·수우도, 통영의 사량도·욕지도에서도 바라본 두미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이다. 천황산을 오르면서 보는 사방의 풍광이 좋을 수밖에 없다. 사량도, 수우도, 욕지도, 연화도, 노대도 등 크고 작은 한려수도의 섬들이 두루 조망된다. 그래서 꾸준히 트레커들이 찾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천황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순천봉과 투구봉이, 북동쪽으로는 청석봉이 이어지면서 곳곳에 구릉지와 작은 골짜기들을 만들어 놓아 두미도에는 물이 많다.
이런 두미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북구마을 선착장에는 1996년 12월에 세워진 ‘두미개척백년’ 기념비가 서 있다. 두미도는 인근에 위치한 수우도처럼 지리적으로 통영보다 남해나 사천에서 가깝다. 그래서 초창기 정착민들은 이 지역 출신들이다. 행정구역상 통영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여전히 삼천포다. 오일장뿐만 아니라 결혼식도 삼천포에서 치러왔다.
미륵이 머물던 섬 두미도의 '3대 변화'..해저케이블, 상수도, 일주도로
두미도는 미륵이 머물다간 섬이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조선왕조실록’(성종 17년)에도 ‘둔미도(芚彌島)’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연화세계를 알려거든 세존께 물어보라(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는 불경을 근거로 삼는다. 이를 입증하듯 1937년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상이 감로봉 근방 암자 터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불상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회수돼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북구마을 고상훈 이장에 의하면 초창기 정착민들은 어업보다는 가파른 돌산을 일궈 밭을 개간하고, 마을을 이뤘다. 1970년대 전성기 때는 북구(학리), 남구(구전), 청석, 순천, 덕리, 설풍, 고운마을 등이 번성해 100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천황산 8부 능선 정도까지 모두 농경지였다고 한다.
마을 대부분은 고구마 등 밭작물을 경작하거나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이농 현상으로 섬이 쇠퇴하면서 지금은 포구 중심의 북구마을과 남구마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마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한두 채의 집만 남아있을 뿐이다.
쇠퇴해져만 가던 두미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계기가 생겼다. 그 첫째는 1984년 해저케이블이 두미도까지 깔리면서 전기가 들어온 것이고, 이어 마을 간이 상수도가 건설되면서 물 공급이 원활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9.29km의 임도(일주도로) 건설이다. 임도는 2007년에 착공해 6년에 걸쳐 완공됐는데 섬이 거의 바위로 되어 있어 길을 닦는데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임도 건설로 마을 간에 물류가 원활해졌다. 예전에는 남구마을에서 청석, 대판마을까지 생필품을 운반하려면 배편을 이용하거나 지게를 지고 산길로 다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걸어서 20분 내로 도착하는 지척의 마을이 됐다. 또한, 북구나 남구마을 어디에서 출발하더라도 임도를 통해 천황산을 오르거나, 섬 전체를 자동차로도 쉽게 둘러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현재 두미도에는 약 70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북구마을과 남구마을에 모여 산다. 두미도가 조용하고 살기 좋은 섬으로 암암리에 알려지면서 이곳 마을들은 빈집이 거의 없다. 캐나다에서 이십여 년 동안 관광업에 종사하던 한호수 씨는 올해 초 첫눈에 반해 북구마을에 정착했다.
한 씨는 살면서 발견한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현재 ‘두미 9경’을 담은 섬 안내 지도를 만들고 있다. 집 앞에는 해양쓰레기를 재활용하여 두미도의 풍광에 잘 어울리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이 작품은 오가는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 씨는 외부로 나갔다가 두미도에 들어오면 두미도의 모양새처럼 인생의 쉼표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2021년 경남도 추진 ‘살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
두미도의 변화는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두미도는 지난해 경상남도 섬 재생 프로젝트인 ‘살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대상으로 남해군 조도·호도와 함께 선정됐다. ‘살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은 섬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적·생태적 가치를 발굴·보전·발전시켜 섬 주민들에게는 더 살기 좋은 섬으로, 관광객들에게는 힐링을 주는 섬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경남도는 이를 위해 두미도에 3년간 3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남도는 '가고 싶은 섬'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5월부터 진주 경남혁신도시에 입주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직원들의 두미도 섬택근무를 실현하고 있다. 중진공 직원들은 원격근무 시스템을 활용해 팀 단위로 일주일에 3일 정도를 두미도 북구마을 스마트워크센터(구 청년회관 사무실 리모델링)에서 일하고 있다. 해저로 인터넷 광랜이 깔려있어, 컴퓨터로 일하는 요즘의 작업환경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외부 간섭이 적어 업무의 집중도와 효율성이 높다고 한다.
섬택근무가 일‧휴식 양립, 섬마을 활성화 등의 순기능을 보이며 순조롭게 진행되자, 경남도는 도청 직원들까지 섬택근무를 확대할 방침이다. 11월 초부터 경남도의 섬 행정을 전담하는 섬어촌발전과 직원들이 1박 2일로 1팀씩 돌아가며 두미도 섬택근무를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두미도 주민들은 열린 마음으로 섬택근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적막하던 섬에 젊은 직원들이 들어오다 보니 섬에는 활기가 더 느껴지는 것은 물론, 민박집들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외지인 정착 많아 개방적인 섬, 그러나 쓰레기 투기로 골머리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이 두미도 사람들을 개방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요즘 코로나로 대부분의 섬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두미도 주민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어디서 왔느냐 먼저 안부를 묻기도 한다. 앞으로 ‘살고 싶은 섬’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나면 두미도에는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한편으로는 달갑지만은 않은 듯하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쓰레기들도 함께 몰려오기 때문이다. 고령화된 섬 주민들로는 낚시객이나 관광객이 투기해 놓은 쓰레기들을 치울만한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 번은 산악회 일행이 마을 쓰레기 소각장 옆에 먹고 남은 음식물들과 페트병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여객선을 탄 적이 있는데 너무 속상해서 여객선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항시킨 적이 있습니다. 투기한 쓰레기들을 모두 회수해 가도록 했죠. 가장 골치 아픈 게 쓰레기 투기입니다.”
북구마을 고상훈 이장의 얘기다.
1) 위 치
o 경남 통영시 욕지면 두미리
2) 가는 방법 : 통영 연안여객선터미널 ↔ 두미도
o 통영 연안여객선터미널 :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234(주차료 : 5000원/일)
☎ 055) 645-3717(한림해운), 여객선예약예매 ‘가고 싶은 섬’ 참조
o 통영항→ 두미도(북구마을)
- (06:51, 14:00) 2회 운항
o 두미도(북구마을)→ 통영항
- (08:13, 16:00) 2회 운항
o 매달 4,9,14,19,24,29일 : 삼천포항 운항으로, 통영항 출발 14:00 결항
(삼천포수협 인근 신수도 여객선터미널↔두미도)
☎ 055) 644-8093(한림해운)
* 배편 운항이 복잡함으로 여객선사인 한림해운 전화 확인이 최선
3) 섬에서 즐기기
o 트레킹 : 11km (5시간 30분)
- 북구선착장→남구선착장→전망대→천황산(468m)→투구봉(333m)→임도→북구선착장
*통영에서 두미도에 도착하면, 출항 시(16:00)까지 6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음으로 느긋하게
트레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