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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Oct 04. 2020

아빠가 부르는  '청춘을~ 돌려다 ~오~~'

고향, 사랑, 인생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인기척이 없다.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는다.
언니는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혼자라는 쓸쓸함에 마음이 시무룩해졌다.
기분이 꿀꿀하다.
이 기분으로 동네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학교 숙제도 해야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숙제는 밤에 하련다 "
털썩 안방에 주저앉아서 우두커니 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저만치 방바닥 구석에 뒹구는 베개를 슬슬 끄집어
내 편으로  옮겨 누웠다.

마음이 심숭생숭 했는지,
아니면, 친한 친구와 다퉜을 아릿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런 저런 또아리를 튼 생각들이 머무르고 있다.
나른한 오후 세시에 간간히 시작된 하품은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채, 스르르 이내 잠이 들었다.

 몇 십분이 흘렀을까?


따르릉 따르릉 ~~
몇 번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꿈벅꿈벅 눈을 비비며
단잠에서 깼다.
 아빠가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사업 상 매일매일이 똑딱이처럼 똑같은 날인 아빠에겐
오후 4시 경이 황금 시간이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아빠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
내게 윙크하듯 잠깐 미소를 보이더니,
엄마 화장대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소니 테이프 레코더  
쪽으로 직행한다.
막힘 없이, 테이프 한개를 골라서 꼽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당시 40대 초반의 가장이자,

산업 역군이었던 아빠에게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말은 무척이나 어울렸다.
그럼에도, 그날은 그에게 충전이 필요한 날이었거나
혹은 일종의 삶의 고단함을 벗어 던지고픈 의식의 순간이었을까?

평소 그가 즐겨 듣던 음악이 흐른다.

그의 애창곡 메들리가 시작된다.
꿍짝 꿍짝 꿍짜자작 꿍짝~~

빵빵한 트럼펫 소리가 울려퍼지는 전주곡이
화려하고 흥겹게 흐르더니,
구성지고 간들어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못다한 그 사랑도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참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지나간 그 옛날이 어제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 서 갈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메들리로 나오는 가수의 노래는 거침이 없다.
그렇게 국민학교 4학년 때,
어른들이 열광하던 가수 '나훈아'의 노래를
아빠의 의식의 흐름에 맞춰 수동적으로 수시로 들었다.

그럭저럭 테이프가 닳도록 들어서,
자연스럽게 가사를 외워서 따라 부르시던 아빠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아빠가 가수처럼 느껴졌다.

아빠의 당연한 '나훈아 노래 사랑' 은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흥겨움이 절정에 이르렀고,
그의 흥얼거리는 노래 속에 나는
고향, 인생,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구성지게 부르고 특유의 꺽임 있는 가수의 추임새가 맞물린
인생의 이야기들이 가슴에 저절로 스미었다.

노래의 뜻을 다 알고, 가슴으로 모두 느꼈다면
이미 세상을 알았을 어른이었겠지만,
어린 국민학생 눈에 비췬 훈아 아저씨의 노래는
그저 토속적이고 풍류에 흘러가는 시시한 유행가 중에 하나로 들렸다.

당시 어른들의 마음을 조용히 후벼 파고 들어왔다고들 하지만,

어린 내 인생과는 아무 상관 없는 재미없는 노래인 것은 틀림없는데, 노래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어깨를 덩실거리게 하고,
발바닥으로 박자를 세면서 탭을 구르는
흥겨움을 안겨주는 이상한 마력이 있긴 했다.




그 후로 40여년이 흘렀다.


2020년 9월30일 저녁 8시 30분에 KBS 2에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ㅡ 나훈아'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9개의 신곡과 함께 20여곡이 넘는 노래를 부르며,

대중들에게 그가 트롯트의 전설이자 예인임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기획은 야외 무대로 진행하는 방송을 꿈꿨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야외 공연은 취소된다.
이에 KBS 제작진은 나훈아에게
비대면 콘서트 방식인 온라인 콘서트을 제안했고,
이에 그가 수용하면서 2020년 8월에 전격적으로 채택됐고 준비하였다고 한다.

 KBS 방송국 홀에서 우리나라 각지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을 인터넷 영상으로 초대해서 1000개의 영상을 띄우고, 

그들과 연계된 특별한 언택트 시스템 공연으로 진행됐다.


2020.09.30. KBS 2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ㅡ 나훈아'  온라인 콘서트 방영 모습


그가 한 번도 시도 해 본적 없는 언택트 공연을 하는 것이 낯설고 긴장되는 것이라고 했지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 속에 40년 전 아빠의 테이프에서 듣던 그 노래들이 들려서였을까?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TV에서 흐르는 가수 나훈아의 노랫소리에
40여년 전 아빠의 목소리가 겹친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40대였던 아빠가 내 앞에서 목청껏 훈아 아저씨 노래를
흥겹고 즐겁게 부르시던 그 모습이 투영된다.


18년전 세상 떠나신, 아빠의 노래가 들리는 환청을 경험한 하루다.

노래의 깊이, 인생, 사랑, 고향이 묻어난 진솔함과 구성짐이 좋기도 하거니와


이미 아빠가 경험했던 중년의 나이를 훨씬 지난, 

내게 안겨주는 발효된 삶의 무게가 노래와 맞물려서인지,
국민학교 때 무덤덤하고, 시시하게 들리면서

싫다고 느꼈던 그 노래가 진솔하고 담백한 인생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하다.

그의 노래는 결코 대수롭지 않은 그냥 유행가가 아닌 것이다는 것을

세월의 무게가 하나씩 더해 가면서 더욱 느낀다.
그의 철학, 소신, 신념, 가치관, 세계관, 이념...등의 주제로 그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

나훈아 스페셜 / KBS 2 TV  제공


"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세요?" 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 우린 흐를 유에 행할 행, 노래가, 유행가 가수다.
남는게 웃기는 거다. '잡초'를 부른 가수,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을 부른 가수.

흘러가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 (유행가 가수가) 뭐로 남는다는 거 자체가 웃기는 얘기"

라고 답한 그의 얘기 속에 삶에 대한 그의 명징한 태도가 엿보인다.

지금 나는 아빠가 부르던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를 구성진 가락에 맞춰 어설픈 꺽기를 해 가며 따라 부르는 중이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어김없이 40 여년 전, 아빠의 노래가 귓가에 들린다.
그리고, 아빠의 환한 미소가 흐릿한 영상 속에 맺힌다.

가창력이 어떻고,
가사가 좋다느니,

구성진 목소리에 감성이 풍부하다느니...그에 관한
별의별 찬사가 이어져도 ..


40대의 아빠를 만나게 해주는 마성의 노래가
존재한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내가 훈아 아저씨를 좋아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가수 나훈아의 젊은시절ㅡ 그의 청춘도 돌릴 수 없구나~~




'고향역' '청춘을 돌려다오' 를 떼창 한 후, 2020. 10  04. 가원생각

#나훈아

#트롯트가황

#대한민국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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