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갈래 머리 가지런히 땋아 묶어 곱게 실핀 꼽고, 화이트 세일러 깃에 검정 교복 상의에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두꺼운 벨트와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플레어 스커트, 거기에 한단 접은 뽀얗고 하얀 양말. 반짝반짝 3센티미터 굽의 뽀드득 검은색 구두!
1년 뒤 여중생이 되면 입게 될, 교복의 꿈은 무르 익어가고 있다.
"야, 나도 이제 곧 교복 입게 되는구나. 나의 교복 전성시대여! 이제 조금만 기다려라."
1983년은 내가 중1이 되던 그해, 나의 조그마한 꿈은 사라졌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두발 및 교복 자율화라는 시대를 홀연히 맞이하게 되었다. 나의 바램은 영영 빠이빠이 ..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때는 바야흐로, 전두환 정권 시절, 군사 정권의 싸늘함을 희석시키기 위한 수단과 문화의 다양성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시도였는지, 전국에 있는 모든 중, 고교의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율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아갔다.
나 혼자 방안에 홀연히 누워, 교복꿈을 꾼다고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었던 게다.
80년대 초반에 중,고교 과정을 거치는 세대는 교복을 제대로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세대이기도 하다.
참으로 더 아쉬웠던 것은 내 바로 위 학년까지는 분명 교복을 입었는데, 하루 아침에 문교부(교육부 전신)의 정책이 바뀌어 버렸다.
그 당시, 내겐 위로 3년 터울 언니가 늘 입고 다니던 세일러 스타일의 교복을 보았기에, 나도 곧 입게 될 거라는 생각은 당연했다.
이런 일이 생길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언니의 교복을 보면서도, 몰래 입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분명, 때가 되면 나도 언니처럼 교복을 입을테니, 굳이 입어 볼 필요가 없었다.
문교부의 그런 지침이 내려졌던 것을 미리 알았었더라면, 교복 입은 나의 모습을 상상만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언니 교복이라도 한번 입어보기라도 했을텐데...
막상 교복 자율화를 맞이 할 당시에는 국민학교 때처럼 동일하게 사복을 입고 다닐 수 있었기에 오히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고 편했다.
그리고, 옷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입을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날개짓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재, 그런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한 번이라도 딱 좋으니 입어 봤으면 좋겠다."라는 아쉬움이 든다.
또래 친구를 만나면 가끔 우리세대를 얘기할 때, "두발과 교복 자율화 세대여서 우리의 영혼은 자유로웠다." 라고 하기도 하고, "X세대의 시작은 교복 자율화로부터" 라고 하면서 "역시 우리들의 다양한 생각의 기초는 의복에서부터 시작됐다" 라며 의식의 우쭐댐으로 안위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를 끝맺을 때는 꼭, 교복 한번 제대로 입어 보지 못한 아쉬움을 한 번쯤 토로 하기도 한다.
여학생 교복에 대한 로망!
나의 교복에 대한 환상과 로망은 짧았고, 역사 속에 아련히 사라져버렸다.
교복세대는 이런게 일상이지....
어쩌다 7080 세대의 복고 시스템을 그대로 판박이처럼 만들어 놓은 스튜디오나 레트로 공간을 가 보면, 그 시절에 교복을 입어보지 못한 세대였음에도, 교복에 대한 상념은 친숙하다.
막상 입으려고 하면, 낯선 느낌 그대로 다가와, 내 옷 같은 느낌은 결코 들지 않음에도, 마음 속의 고향 같은 추억으로 깃드는 이유는 어디서 기인할까?
그럼에도, 입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서 입을라치면, 선뜻 그 교복을 결국 입어볼 용기도 없다. 그럭저력 보고 만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