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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an 13. 2021

부저소리와 종소리

모리스 앙드레의 트럼펫연주를 소환하고 싶은 날

뎅~그랑 뎅~뎅뎅~ 뎅~그랑 딩~딩딩...


주일 새벽교회 종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이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구원의 빛이 종소리로 퍼진다고

믿고 싶을 만큼 종소리의 여운이 깊다.



'부저와 종소리 사이에 트럼펫은 연주되다.'


40여년 전,

나를 향한 구원의  도화선은 새벽 교회 종소리를 울려 준,

종탑지기의 손길과 맞닿아 있었다.

내 마음의 신심은 그 날로부터 싹 텄을까?

어린시절, 그것이 나를 위한 구원의 종이 되었다.


분명 부저와 종소리는 달랐음에도,

주일 아침 나를 깨운 두 개의 종은 달라도 같게 들렸다.


주일 새벽 교회 종소리에 눈을 비볐고,

괘종시계의 뻐꾸기 처럼, TV 앞에서

부저 소리에 1등을 위한 구원과 기적을 구경했었다.


부저가 울리면, 네 명인가 다섯 명 되는 학생 중,

 한 학생이 마지막 문제의 답을 말 한다.

마치, 마지막 구원 열차를 타는 광경을 목격이라도 하듯,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긴박감은 더 가열찼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입니다."

"마지막 순간의 영예를 모두 가져 갈~" 등,

그의 멘트는 듣는 이로 하여금 쫄깃쫄깃한 긴장감을 만들어 주는 무슨 파블로프의 장치 같다.


진행자의 빠르고 긴장된 목소리에 떨림음이 시청자들에게

간절하게 전달된다.

"정답입니다." 라고 외치는 순간,

정답을 맞춘 학생의 움켜쥔 두손에서 환희 승리를

거머쥔 최후 승자의 환호성이 쏟아진다.   


주 장원전에 1등한 학생은 기 장원전에 출연했고,

거기에서 우승하면, 연말전에 출연하는 수순을 밟는다.

그리하여, 연말 장원전에서 1등한 학생은 엄청난 영예를 안고, 장원급제 한 어사또처럼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칭송을 한몸에 받는 순간을 경험한다.


똑똑하고 영민함 뿐 만 아니라,

순발력을 동시에 갖춰야 만 얻을 수 있는 퀴즈쇼!

전국 고교생의 천재나 수재 인정 등용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당시 MBC의 '장학퀴즈' 풍경은 나처럼 평범한 수준의 아이에게는 어머어마한 산처럼 커 보였다.

게다가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된 어린이가 고등학문의 세계를

넘을리 만무했고,

부저 소리와 함께 동시에 정답을 줄줄이 맞추는

학생의 모습에

"어쩜 저렇게 잘 맞추고, 똑똑할까," 라며 신기하게 바라 봤었다.


MBC 장학퀴즈!

그리고, 그들을 위한 축제의 안내자였던 '아나운서 차 인태'


카리스마와 박력있는 목소리에 결정적인 순간에 톤업 되면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호소력은 타고난 듯 자연스럽다.

장학퀴즈의 인기는 차 인태라는 아나운서의 역할이 지배적이었고,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더불어 이 프로그램을 항상 기억하게 하는 음악은 단연코,

프로그램 시작에 등장하는 시그널 뮤직인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 flat major, 3악장' 이었다.


이 음악을 들을 때면,

어린시절 TV 앞에  도란도란 앉아 있는 가족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면서, 장학퀴즈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차 인태 아나운서의 쫄깃하고, 박진감 넘치는 진행의 목소리와 함께 모리스 앙드레(연주자가 누구였는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음악적 상상력으로는 항상 그였다)가 연주하는 하이든의 트럼펫 연주가 한창이다.


내 어린시절 기억과 동일한 기억으로 시대를 함께 한 이들에게는 이런 공통의 기억들이

서로의 공감대를 이끌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공유하는 정서적인 유대감은

바로 이런 장면들의 점층적 반복 위에 토태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차 인태 아나운서를 아세요?" 라고 물으면 당연

"MBC 장학퀴즈의 그 아나운서"를 기억해 낼 것이고,

다음으로는 분명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을 이어 말 할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았다 함은 서로가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코드가  삶의 결마다 하나하나 살아 있다는 것 아닐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의 빠른 감염 속도와

변이 바이러스의 또 다른 발생,

이로 인한 사람들의 공포감.

마스크와 마스크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불편한 표정과

경계하는 눈빛과 불신의 불안함이 조장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 등이 물결치듯 요동하는 세상에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견디는 삶이라는

무게감이 짓누르기 마련이다.


"코로나 19 그 때를 기억하시죠?"

"아, 그 때, 우리 모두 마스크 쓰고 다녔죠! 지금은 마스크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말이죠~"

"정말 그 시절은 우리 모두에게 힘든 나날들이었죠?"

"나 원 참, 저는 그 때 확진자와 대화 잠깐 했던 이유로 PCR검사 후 음성이 나왔는데도,

2주 동안 자가격리 했어요."


이런 삶의 과정을 모두 극복하고 나면,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 만들어지는 '정서적 공유'는 무엇일까?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리스 앙드레를 소환하고 싶은 날이다.


음악으로 공유하는 언어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도 한다.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의 Neville Marriner 지휘


https://youtu.be/RLDF8OeD-hc

모리스 앙드레 트럼펫 연주 -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 flat Major





 하이든이 안톤 바이딩거를 위해 트럼펫 협주곡을 완성한 날의 기분을 상상하며~ 

2021년 1월 13일 수요일,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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