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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ug 02. 2019

산족 마을 여행기

나 집에 돌아 갈래~~

"오토바이 한 대에 한 명씩이니 오토바이 두대가 필요하겠네요?"
필리핀 다바오 시티 민다나오 섬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남편의 친구인 S가
 산족 마을 가이드와 대화를 끝내고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오토바이 두대가 산 아래 입구에 서 있는 우리 앞으로 떡하니 대령했다.

뒷좌석이  다르긴 해도  이런  바슷헌 모양의 오토바이를 탔다.

계속되는 S의 따갈로그어 흥정을 듣기는 들었으나,
그곳 여행자였던 우리 부부에겐 그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고, 어떤 결정이 내려지던지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펼쳐질 일은 '오토바이를 타고 산족 마을에 도착한다'라는 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대전제가 있었기에 그의 길어진 흥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필리핀 민다나오의 산족마을 풍경

참으로 그곳의 풍경이 내게 신기하게 만 느껴지는 것은 산속의 우거진 풀과 비스듬히 자란 나무 사이와
자갈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바닥에 길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곳을 향해 오토바이가 질주한다는 것이다.
라이더에게 이곳은 생활이자 삶의 연속된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산족 가이드의 말을 통역해 주는 S는 우리에게 오토바이 타기 전 무조건 지켜야 할 수칙을 나열 중이다.

첫째, 무조건 뒷좌석은 한 사람만 타기,
둘째, 뒷 좌석에 앉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무조건 좌석으로 고정된 철봉 파이프를 절대 놓지 말고 꼭 붙잡을 것이었다.

두 가지만 준수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인생 최대의 죽음의 맛을 보게 해주는 터널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오토바이 기사 뒤에 고목나무 매미처럼 꼭 붙어서 가야 한다는
 S의 강력한 지시를 받고,  오토바이를 탈 수 있었다.

평소에도 이 오토바이 뒷좌석에 자주 타고 산족 교회 방문을 했기에, 산 아래 머무르면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S의 말을 뒤로하고, 우리는 드디어 오토바이 기사 쪽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우리 앞에 나타난 오토바이는 모양 만 그럴싸한 오토바이였을 뿐, 25년도 더 됐을 중고로 수명이 거의 다 된 채로 필리핀에 수입된 것으로,
오래됨과 허접한 외관을 가리기 위한 도색된 일본 혼다 오토바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뒤에 번호판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고,
한 번쯤 도색된 오토바이 몸체 여기저기가 긁혀서 녹슨 세월의 흔적과 그것의 거친 질주를 금방이라도 예감할 수 있었다.

"아! 이 오토바이를 꼭 타야 할까?"라는 수 초간 속삭이는 마음속 불안한 언어가 맴돌기 시작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것은 멀리서 찾아온 친구 부부를 위한 선교사 S의 친절한 이벤트였기에 결코 뿌리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또 S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꺄~~ 아" 하고 무척 반기면서 그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일 것 같다고 즐겁게 피력했기에
그런 내 표정을 S가 미리 읽었고, 이후로 S가 일사천리로 모든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었다.

S의 거침없는 추진력과 순전히 '나의 무지함'에서 출발한 무모한 도전이 한 배를 타게 되면서 이벤트로 진화하였다.
내게 오토바이는 '그림의 떡'처럼 일생에 단 한 번도 탄 적이 없었던 신기한 물체였고,
기왕 여행 왔으니 한국에서 시도해 본 적 없었던 새로운 일,
서울에 돌아가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감행하자라는
도전 정신의 일환이기도 했다.

"남들은 번지점프도 한다는데...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얻어 타는 것쯤을 나라고 못 하겠는가?"
옆에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러주는 부추김이 또 한몫하여 '무한한  용기'가 생겼고,

남편도 나의 즐거움에 합류할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기에 쉽게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남편이 오토바이 기사에게 몇 페소(필리핀 화폐단위)을  지불하였고,
우리 앞에 놓인 오토바이 위에 드디어 올라타는 순간이 도래했다.

내 앞에 남편의 오토바이가 있었고, 남편이 먼저 타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이제 나도 덩달아 오토바이를 탔고, 오토바이는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였다.

무사히 산족 마을에 도착을 기원하는 S의 배웅을 등 뒤로 시동 걸린 두대의 오토바이는 슬슬 출발하기 시작했다.
"부릉 부르웅, 부응 카~~~"

오토바이 출발을 알리는 배기통 소리와 동시에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는 순간 "야~ 신난다."라고 외침을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
 그 이후 내 입에서는 "우~~ 아, 어~~~ 앙, 흐어어.."라는 외마디 비명소리 만 산 전체를 뒤덮은 채,
산족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단 십 분의 일초도 쉼 없이 오토바이는 질주할 뿐이었다.

내가 앉는 좌석 아래 철 파이프는 한 번쯤 검은색으로 도색됐다가 무수한 사람들의 손길로 벗겨져 녹슨 상태에
 가로 방향으로 일정하게, 마치 사람이 앉았을 때 엉덩이가 끼이지 않을 만큼 틈을 벌여 놓은 철재 시트였다.

나는 그곳에 앉아 다리를 벌린 채, 내 어깨넓이만큼 양손으로 철 파이프를 꼭 쥐었고,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구부린 채로 망부석이 되었다.
오로지 어깨 근육을 통해 뻗어있는 팔 아래쪽 손가락 끝으로 전해진 힘은 공중부양이라도 할 요령으로 떠 있으려는 수행자와 같은 모습으로 철제 시트에 엉덩이를 제대로 안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을 수 있었음에도,
출발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비포장 도로를 내달리는 오토바이에 놀랬고, 그다음에는 눈 앞에 펼쳐진 외길 낭떠러지 풍경과 금방이라도 하늘로 치솟을 듯한 오토바이의 속도감, 굉음,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뒤죽박죽 꼬리를 물고 있어 결정의 회로가 망가진 상태였다.

정말  떨어져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라는 말이나,
젖 먹던 힘을 다해 쓴다. 혹은 용을 쓴다.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해발이 1000미터는 족히 됐을 것으로 기억하는
산족 마울 향해, 길 아닌 길이 생긴 외길 오토바이 도로에
도로 폭은 60센티미터쯤 될래나, 그보다 더 좁을지도 모른다.
내 앞에 질주하는 남편의 오토바이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했고, 계속되는 도로는 산 갓 쪽 허리로 둘레길을 돌아가는 천 길 낭떠러지가 바로 밑으로 보이는 길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오면서, 그 순간
오토바이 타는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휩싸이기 시작했고,

떨어져 죽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사투가 나의 팔 쪽으로 전해져 전신의 힘이 만들어졌고,
눈 앞에서는 천 길 낭떠러지 외길에 오토바이가 질주하고 있었다.
오금 저린 이 상황에 몸은 이미 굳어져 돌이 되었고,
입 밖으로는 외마디 비명과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1초도 즐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산 아래에서 S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면서, 전해줬던 말 중
"가끔 오토바이 기사의 실수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사고가 크게 나기도 한다"라는 말이 순간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위험함을 감행하라고 권유한 S가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베테랑급 산족 오토바이 기사가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바래다줄 것이라는 희망도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본시 사람이 간사하기에, 위태로운 상황에는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발버둥을 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S가 알려 줬던 낭떠러지 외길"
뒤로 물러 설 수 없는 길,
죽음으로 들어서는 길
사뭇 인생과도 같은 상황인데, 그것을 현실로 직접 내 눈앞에 서 겪고 있다니, 믿을 수 없을 민큼 긴박했다.
혼돈의 시간을 25분쯤 가졌을까?

도무지 세상의 시간은 카오스로 묻혔고, 나와 신과의 절대적인 시간 속의 어려운 숙제를 못 풀고 헤맨 듯 한 기분으로
오토바이에서 무사히 내렸다.
산족 마을에 발을 딛는 순간,
"아, 이제 살았구나. 다시는 저 오토바이 안 탈 거야"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사색된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나도 저럴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보통 성인의 키가 135~145센티미터쯤 되는 필리핀 산족 마을 방문기를 생각하노라며, 내 가슴은 울렁대기 시작한다.
죽음의 문턱을 오갔던 오토바이를 탔고,
타기 전 공포와 두려움을 몰랐기에 순진한 생각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무모함이
인생을 항해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 아닐까?
여행을 스릴 만점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산족 마을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 보시라!
그렇게 어렵게 산족 마을을 방문해도,
기한이 정해진 어느 날,
나는 다시 나의 삶터로 돌아올 것이고
편안한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우린 때로 여행을 떠난다.
편안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스릴러를 찍는 한 장면이기도 했다.
짜릿해서 탈이다.
그래도, 밋밋하고 무미건조하게 보내려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기에 내 인생의 베스트 여행으로 손꼽은 곳이다.
산족 마을을 다녀오고 다음날 아침잠에서 깨어났는데,
갑자기 뱃가죽의 통중이 너무도 심했다.
마치, 운동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윗몸일으키기 200개쯤 하고 난 후 느끼는 배의 통증이랄까?

고통의 원인은  어제  오토바이 위에서 죽을힘을 다해 팔에 힘을 주었고  동시에 뱃가죽에도 안감힘을 다해 철제봉 시트에서 공중부양하듯이 떠 있었던 후유증이었다는 것을...
하마터면 죽을 뻔 한 사건 다음날
나의 뱃가죽은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의 고통을 떠안고
며칠을 더 견뎌야 만 했다. (2000년 8월 초 어느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의 말 중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내게 신뢰를 보여준 산족 마을의 오토바이 라이더와
 S의 산족 마을 여행 가이드, 산족 마을 원주민들의 환대가
내 인생에 투영되고 나면, 다시 언젠가 떠나게 될
여행에 대해 꿈을 꾸고 있다.
여행이 인생이고, 인생이 여행이다.  


'인생이 여행이다' 를 즐기다.

여행이 밋밋하면 여행이 아니다. 2019. 7.30. 가원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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