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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an 26. 2021

나의 사춘기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라떼는~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았느냐."

 

이문재 시집  '천둥'



나의 중학교 1학년 수학시간은 아직까지 재미있었다.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되면서, 산수는 이제 수학이 되었다.
거기에 발 맞추어 수학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리 예습도 하고, 수업 전날 숙제와 복습 문제도 제법 잘 풀었다.
그래서인지 수업은 따라갈 만 했고, 흥미를 잃지 않아서 재밌기도 했다.

게다가,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수학선생님이 나의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일종의 동기부여가 된 셈이기도 했다.
한참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생길 수 있는 시기 였기에
담임 선생님이 수학 선생님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더 잘 해야겠다는 요인이 작용했을 법도 했다.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나름의 공부법도 터득한 느낌도 들었고,
앞으로 수학공부를 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 해 수학성적은 상위권이었으니, 스스로 만족할 만 했다.

사춘기'라는 예민한 시기와 다른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이 생기지 않는다면, 크게 힘들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여학교에서 뭐 그리 큰 일이랄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겉으로는 학교 생활에 큰 변화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때로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경계에 머무르는 소녀들은 자신의 포지션을 미리 정하고, 어른들을 향한 충만한 반항감으로, 눈밖에 나는 경우가 종종 있곤 했다.  
이 또한, 여학생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의 하나였고,
부족함 투성이어도, '우리는 이미 다 컸어요' 라는 말처럼, 저희를 아이로 대하지 말고 청소년으로 제대로 대우해 달라는 표출이었다.

어느 지점까지는 어른들이 암암리에 허용하는 임계치가 존재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청소년 시기에 당사자는 그 임계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길을 지나와 봐야, 지나왔던 길이 보이는 것 처럼...

안전사고를 설명하는 하인리히 법칙의 1:29:300이라는 수치가 있다.
그날 우리는 알게 모르게 29번의 사소한 사건을 이전에 마주했을 것이고, 300번의 사소한 일들을 스스로 삭혀서 보이지 않았던 담임선생의 시간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38년 전 쯤의 일을 기억하노라면,
마치 깨진 유리조각의 파편이 되어,
나의 좌뇌와 우뇌를 협박하듯 여기저기
돌기처럼 쑤시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날의 일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여학교 교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잔상이 뇌리를 스치며,
내 머릿속 공기를 뿌연 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와 연관되어 일어난 모든 사건은 나의 뇌리에 박제되어, 나쁜 기억의 습관처럼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기억 언덕 너머  언저리에 포착되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 나와 불거지곤 한다.

역겨운 기억이 엄습할 때면,
어쨌든, 그 시절의 비인간적이고 군대문화에 쩔은 사회적 단면이자 유교적 질서에 강조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인권 부재가 빚어낸 폭력이라고 퉁쳐 버린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고, 그나마 그 일에 대한 이유를 붙혀 줄 수 있으니, 그렇게라도 해야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단정지어 결론을 미리 내린다.

사고는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하인리히 법칙에서 말하는 안전사고의 비유로 이야기했지만,

경도된 세상에서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비인간적인 처우와 야만이 존재했기에
나만 겪었던 경험이 아닌, 그 당시 비일비재한 일들이었다고 하는게 차라리 모든 설명에

앞선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그런 일들은 남학교에서는 다반사야"라고 에둘러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행동의 본질은 분명 비이성적, 동물적 폭력이 존재했다.

그날의 빅뱅은 내 인생의 사춘기를 훨신 빠르게 앞당겼다.

검은색으로 두텁게 각진 사각 뿔테 안경에
유머 섞인 말로 늘상 아이들을 웃기기도 했지만,
가끔은 안경 너머로 매서운 눈빛을 날릴 때, 미리 눈치채고 알아차려야 했었다.   
40대의 건장한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폭력의 강도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으랴?

열서너살의 꼬마 여중생 눈에 비취는 세상은 여전히 천진했으니,  알 수 없는게 당연했다.
그 시절, 우리는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그는 우리의 담임선생이었고, 우리는 그의 학생이었다.

담임선생님에 대한 선배들의 평으로 '화가 나면 동물로 변한다.'라는 말을 새기고 또 새겼어야 했다.
모두가 알아서 잘 복종하고, 순딩순딩하게 굴어야 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도 무사히 마쳤고, 이제 여름이 가까워 오고, 기말고사 만 치르면 학기다 마무리 된다.
학교생활 패턴은 대부분 루틴이 되어 몸으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우리반 수학 평균성적이 다른반 보다 월등히 높아서 담임선생님의 콧대는 올라갈 대로 올라가고, 기분이 한창 업되었다.  
학기 중간에 교육청에서 파견나온 교육감의 순시 행차로 인한 분주한 청소와 학교 및 학급 환경미화 작업을 끝으로 긴장의 순간은 모두 지나갔다.

이제 학교는 평범한 일상을 다시 대면했고,
아이들은 일상의 나른함으로 빠져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럭저럭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고 매미소리가 한가롭게 스멀스멀 울어대기 시작하는 6월말 끝자락 쯤 되었을까?

우리반 중에 P는 두번 째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샤기컷을 한 것처럼 컬이 긴 커트머리를 하고 다녔다.
영어시간에 영어선생님 보다 더 발음이 좋아서, P가 읽어주는 영어 교과서는 라디오 성우처럼 깔끔했고, 유연했다.
게다가, 그 유려한 발음으로 부르는 그녀의 팝송 또한 일품이었다.
 P가 영어 교과서의 문장을 읽을 때면, 나는 차라리 P가 계속 그 수업을 진행하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그녀의 외모는 보이쉬하면서도 반항아적인 눈빛과 간혹 카리스마 있는 말투에서 약간의 시니컬함이 묻어나서,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캔디의 테리우스같은 그녀의 외모는 단연 우리들의 멋진 아이돌이었다. 훤칠한 와 외모로부터 풍겨나는 성숙함에  아이들이 제법 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P가 자칫 나쁜 의도로 아이들을 선동했다면, 열렬히 따를 만 한 아이들이 먾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P는 선동할 만한 의지와 능력도 안됐다.
P의 모난 행동이라고 해봐야, 사춘기 청소년의 튀는 말투 혹은 불평, 또는 거부 표현 정도의 반항이라고 설명이 맞을게다.

그 날은 내가 기다리던 수학시간이었다.
수업 시간 중간 쯤 이었을까?
담임이 돌변했다.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평소 P를 못마땅히 여기는 담임 만의 하인리히의 시간이 존재했을까?
차라리, 그날은 하인리히의 1의 시간이 작동했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담임의 말 폭탄이 투하됐다.
"당장 너 나와" 라는 담임의 고성이 내 고막을 찢어놨다.
그의 불호령이 터지자,
내 평생 들어보지 못한 격한 S자 시리즈의
비속어와 욕이 섞여서 교실 뒤 게시판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내 교실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얼어버렸고, 이후 아이들의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나온 P는 교탁 쪽으로 걸어 나와 있었다.

담임은 그녀에게 휘두를 폭력에 앞서,

지금까지 그가 그녀의 언행에 대해 심히 오랫동안 참아왔다는 설을 풀기 시작했다.
일종의 자기합리화의 장치처럼,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일설이었다.
불을 뿜는 용처럼, 그의 입으로부터 불화살을 맞는 P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걸 목격하고 있던 50명의 여학생 모두가 겪었던 모멸감은 평생 잊지 못할 사건으로 도말됐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일순간, 그는 일그러진 야수로 변해 있었다.
겉잡을 수 없는 그의 폭력 앞에 지휘봉이 수초간 흐느적대다가, 일시에 부러지고 말았다.
급기야, 그는 P의 머리채를 뒤 흔들었고, 내동댕이 쳤다.

P의 신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야수의 발끝은 가열차게 그녀를 짓누르고 말았다.
KO패 선언을 받고 싶은 링위의 복서처럼,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그의 분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의 반복된 행동은 수 분간 계속 됐다.
.....
발로 차고, 심지어, 교탁옆에 있던 의자를 던지는 일도 감행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괴물로 변한 담임의 모습에 그 누구도 "선생님 이제 그만 하세요, 제발..."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숨죽이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P를 도와주고 싶어도, 담임 이전에 40대 남자의 왕성한 폭력앞에 우리 모두는 얼음이 돼 버렸다.
13살 소녀는 마음 속으로 울부짖고 만 있었다.

소리없는 아우성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던가?
한 남성의 폭력이 싸지른 최후의 피해자는 P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날 이후 P의 학교생활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것이다.
담임을 더 없이 혐오했고, 이 세상 모든 남자를 다 죽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삐뚤어짐의 원천은 그로부터 기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광경을 목도했던 50명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내어 읽어보았느냐" 이문재 시집의 '천둥'의 쩗은 싯구를 보다가,  나의 38년전 중학교 1학년 6월말 페이지에서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되었다.

아마, 이 일의 반복은 여전히 내 나이가 60이 되고 70인 꼬꼬 할머니가 돼도 쉬이 잊혀지지 않는 페이지로 남아

나의 숙명의 한칸을 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나의 중학교 1학년 같은반 친구들과 특히 평생 아물지 않은 상처로 혹여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을지 모를 P의 안녕을 기원하고 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이후 다른 좋은 기억들이 그날의 일들을 삽시간에 뒤엎었으면 하는 바람이 존재할 뿐이다. .

https://youtu.be/KdCAfK_CN8U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22 Nulla In Mundo Pax Sincera, RV 630)' 중 라르게토(Largetto)


38년 전 P와 50명의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한 1년간 공유된 시간 속에 일그러진 아픈 기억을 이 음악으로 치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삶이 리셋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인생은 늘 회자되고 읽혀진다.
울퉁불퉁하고 암록색이었던 중1의 6월말 책장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다.
소리내서 읽혀지지 않는 인생의 그 부분은 차라리 블랭크처리 해야할까보다.

2021년 1월 23일 , 강원도 화진포 해수욕장 언저리의 부서지는 파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인생!  때론  읽을 새 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중학교1학년 6월 끝자락에 시작된 나의 사춘기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26일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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