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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정현 작가
May 05. 2021
이발소가 있는 풍경
'눈 감은 그'를 눈 뜨고 보다.
점방, 방앗간, 그 옆에 작은 이발소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
명절이 가까워 오면, 동네 사람들이 북적북적, 사람 사는 맛이 절로 났던 곳이었다.
이발소 집 딸 A는 나의 초등학교 2학년 시절 같은 반 소꿉 친구였다.
A와 거의 매일 등하교 길을 함께 다녔고, 방과후 일상도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지냈다.
A의 집은 꼭 이발소 문을 거쳐 가야만 하는 안채 같은 곳에 있었다.
그 곳은 자그마한 단칸방으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기에 딱 좋은, 초등시절 우리들의 낙원이기도 했다
우리가 뭉치는 날이면 무슨 비밀 결사대의 모임처럼 서로 눈짓 하나로 움직여서,
삼삼오오 일사불란하게 모여 A의 집으로 직행했다.
A의 집으로 가는 동안, 그날 놀이의 주제를 미리 정하고, 이것저것 함께 궁리하기도 했다.
소꿉놀이, 인형놀이, 공기놀이, 술래잡기, 숫자놀이 등을 하며 오후 일과를 모두 보낸 적이 허다했다.
가끔, A의 엄마가 찐 고구마나 찐 감자, 떡, 철마다 나온 과일 등으로 간식거리를 챙겨주시면,
놀다가도 삽시간에 한달음에 간식이 있는 곳으로 옹기종기 둘러 앉아,
맛있는 소리로 즐거움을 가득 실었던 추억의 장소였다.
처음으로 그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양,
A의 등 뒤에 카드 병정 같은 친구들과 줄줄이 서서 따라갔다.
이발소 문이 열리자, 친구의 머리 너머로 사진 속 그를 처음 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의 모습을 보고, 몽롱함에 빠진
나의 심미안은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첫날이 되었다.
아스라함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무한한 동경,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거머쥔 자의 여유,
처음으로 마주한 그의 감은 눈의 속내는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았는데,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나는 눈을 감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듣고 있지" 라는 의식의 흐름을 꿰 차듯
현실의 세계에 주문을 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분명한 건
, 그가
정말 멋있는
잘 난 사람이란
걸
단박에 느꼈다.
코흘리개 눈에 비췬 그는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차라리 다른 세계의 인간이었다가 맞을게다.
밖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 땅따먹기, 자치기, 재기차기, 사방치기 놀이 등에 세상을
바라보는 한낱 어린아이가 한달음에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그의 세계를 달려가기엔 나는 너무도 멀리 다른 지점에 서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문턱이 닳도록 A의 집을 드나들었고,
거의 매일 '눈감은 그'를 보는 것은 일상 그 자체이자
익숙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와는 너무도 다른 지점에 서
있었다.
세월은 가파르게 지나갔고, 나의 의식의 내면을 채웠던 '눈 감은 그'는
소꿉친구인 A와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다.
40년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A의 집, 이발소 문을 처음 열면서 '눈 감은 그'의 사진을 보았던
나는 이제 우리집 거실 어느 곳을 뒤져서도 쉽게
그를 소환할 수 있을 만큼 '눈 감은 그' 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
이제 나는 '눈 감은 그'를 마주할 수 있는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
혹자는 그의 음악은 너무도 예리하다라고 하거나, 시계처럼 너무 정확하다.
또는, 강약과 빠르기가 너무 기계적이어서 인간미가 떨어진다.
음악을 너무 상업적으로 다뤄서 음악적 가치를 떨어뜨린다라는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그가 클래식 음악계에 남긴 흔적은 책 한권으로도 부족한 어마어마한 양이 될 것이다.
그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가 있다는 건 그만큼 그의 발자취가 크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1917년 1월 27일 짤쯔부르크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 한 이래로
1989년 4월 23일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기까지
총 3,525회에 달하는 연주회를 가졌다.
여기에 1938년 12월부터 1989년 4월까지
음반 508종과 영상물 78종이라는 방대한 양의 클래식 컨텐츠를 남겼다.
그의 사후(1989.7.16.)에도 음반업계는 지속적으로 음반발매 및
영상을
추가 발매했고,
2008년에는 탄생 100주년 기념 음반이나 영상물이 추가되면서,
그 물량은 가히 천문학적인 수량으로 넘쳐났다.
6,70년대 아날로그 LP녹음 시대를 지나서,
80년대 초반에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과
함께 CD의 탄생을 만들어 낸 주역이 바로 그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연주시간인 74분을 기준으로 하여
CD한장 분량의 녹음시간을 정하고,
CD규격 사이즈 지름 12cm의 음반의 표준화를 제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CD가 세상에 탄생되었다.
베를린필 하모니의 상임지휘자로 35년 가까이 지내면서,
음반시장의 디지털 혁명을 선도하며,
음반의 역사를 다시 쓰고,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음반의 황제가 된 그!
내 소꿉 친구 A의 집 이발소 문간 벽 모두를 차지했던 그!
40년 후 나의집 거실 LP 장과
CD장 어디에서 건 눈감고 음반을 끄집어 내면, 그의 음반일 확률이 가장 높을게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4 05~1989. 7. 16)
그의 실버 헤어에 대한 로망은 버릴 수가 없다. 여전히 멋있다^^
문턱이 높다는 클래식 입문의 벽을 내게 조용히 허물도록 도와 준 조력자!
사십 여 년전, 이발소 친구 집에서 놀다가 만난 사진 속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누구보다 더 완벽한 음악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오케스트라를 향한 제스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아무리 음향효과가 좋은 홀이라 할지라도,
자리마다 그 조건은 달라진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2,000~3,000명 정도 들어가는 홀이라면,
좋은 음향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자리의 수는 대략 200~300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계를 넘어가면 음질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음반은 음악을 최고의 조건에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음반은 한 명 한 명 모든 청중에게 지휘자가 머릿속에 그린 바로 그 음악을 들려준다.”
- <불꽃의 지휘자 카라얀>, 455쪽에서
Thanks to Mr. Maestro!!☆☆
https://youtu.be/FNHVqjgykoI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NO.2 - 카라얀 지휘, 바이센베르크 피아노
요즘 듣고 있는 cd 음반 사이에 있는 카라얀 음반들
어린이 날에 나의 아홉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다.
2021.05.05.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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