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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ul 21. 2016

베토벤 교향곡 No.6. 전원(Pastorale)

늙은 청년의 눈물


20개 쯤 되는 내부 조그마한 사각스피커 패널이

1렬 종대로 빼곡히 디자인 된 매킨토시

XRT 22트위터와 메인 스피커에서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베토벤 전원교향곡 2악장이 흘러 나오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와 나는 클래식 음악에 관한 한

이것 저것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음악은 흐르고,

늙은 청년의 안경 너머 눈망울은

점점 촉촉해져 간다.


금방이라도 그의 눈속에서 이슬 방울이 또르륵

떨어질 것 같다.


"아버지가 제게 국민학교 4학년 때 쯤에

이 곡을 SONY 카세트 레코더로 들려주셨는데,

그 음악을 듣는 순간 한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그 때 제가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나와 그와의 공간 속,

베토벤이 이미 정중앙에 등장했고,

그의 음악은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점령해 버렸다.

시간이 오히려 멈췄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른다.




거역할 수 없는 순간이다.


"당신의 음악적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군요. "


그는 다시 귀 밑에 닿은 머리칼을 매만지 듯, 두손으로 슬어 내리더니,

고개 숙여 테이블에 팔꿈치를 세우고

얼굴을 살며시 감싼다.

 

그는 얼굴에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의 환희와

범벅이 된 슬픔을 더듬으며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베토벤 음악이 청년의 어린날의

순수를 되살렸고, 아버지를 추억했으며,

무딘 세월을 탓하지 않은 채,

 피어오르는 아름다움이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귀병으로 난청이 심해지고, 앞으로 귀가 들리지 않을거라는 불치의 진단을

받은 베토벤!


이제 음악가로써 사망신고와도 같은

말을 들었으니, 결론은 하나 뿐.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결국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써

동생에게 부치려다가 단념했던

삼십대 늙은 청년.


그의 삶은 이리도 절망적이고 슬픈데,

자연은 이토록 평화롭고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

시냇가에서 새소리, 메추라기,

 뻐꾸기 울음소리,

목가적인 풍경 속 농부의 즐거움,

폭풍이 몰아치고,

폭풍이 지난 것에 대한 감사와 평온함 등은


대자연 속의 서사가 어쩌면 자신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폭풍이 걷히고 나면,

언젠가는 자신도 감사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 속에 이 곡을 작곡했는지도

모른다.


이 곡을 들을 때 마다,

나는 30대 노총각 베토벤과

번민하 듯 고뇌하는 늙은 청년의

마음이 어우러져 겹치고,


거기에 그날 청년이 마시던 레드 와인잔에

맺힌 붉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만일 베토벤이 자살을 감행했다면,

운명교향곡이니, 크로이쳐 소나타, 전원. 7번 교향곡, 9번 합창....셀 수 없이 많은 곡을 인류는

대할 수 없었으리라.


"이걸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군"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 영랑의 시가 고요히 읊어지고

스며드는 날이다.


내게 베토벤의 '전원'은 김 영랑의 찬란한 슬픔의 봄과 맞닿아 있다.

이 묘한 감수성이라니....

시가 음악이고, 음악이 곧 인생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연주 실황도 명연이다.


2016. 07. 18.

청년 베토벤을 읊다. 佳媛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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