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명화를 추억하면~
검정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예리한 눈빛과
어두운 색 풀오버 스웨터가 그를 말해주는 듯 하다.
'사랑방중계'에서
그의 딱 떨어지는 멘트와 원 종배 아나운서의
서글서글한 말투에 버무려진 부드러운 미소는
트럼플린 위에서 뛰는 아이의 쿠션처럼
쿵덕쿵 찰떡이다.
프로그램 진행하는 모습 속에서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발산된다.
토요명화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그의 멘트는 유독 자신감 넘치며,
확신에 차 있어 '말의 힘'이 저절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영화를 놓치면, 후회하실겁니다."
그의 맛깔스러운 영화평과 평점에 이끌리어,
놓쳐서는 안되는 영화라고 하면,
기필코 봐야하는 의무감을 실어 어떻게든
불꺼진 방 TV 앞에 턱 괴고,
영화를 봤던 늦은 토요일 밤!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며,
줄거리 속 영화 뒷 얘기와 주인공의 명대사를
줄줄이 꿰차 듯 읊는 모습은 영화평론가로써
프로패셔널 함의 면모가 깃들어 있다.
"다음 주부터 기말 고사 기간인데...토요명화는
보고 싶고, 아~ 어쩌나"
마음 속에 흘러나오는 푸념이 강박이 된
중학교 3학년의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영화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영화를 보았다.
내 마음에 솔솔 피어오르는 무지개 빛깔의 희망과
상상력은 뽀송뽀송하고 아름다웠다.
영화 보고 난 후의 여운은 꽤 길었다.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가서,
토요명화를 본 친구와 수다 떠느라,
쉬는 시간은 짧았다.
현실은 스릴 넘치거나 다이나믹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지루하기 만 한데,
영화 속에 비치는 배우의 모습과 영상미에 홀딱
빠질 만 했고, 거기에 사춘기 감성은
오롯이 충만했었다.
그 시절에,
'영화평론가 정영일'이란 분의 아우라를 몰랐다.
그져 모신문사의 영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정도로 만 알았던,
문화 불모시대에 특이한 직업정도로
이해했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기 만 하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떡뚝딱 맞아 떨어져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옛 영화에 대한 상념 속에
그의 얼굴이 둥글둥글 크게 넘실대는 것은
그 시절 그 만큼 영화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평론가로써 시원스럽고, 맛깔스럽게 대중에게
잘 설명해 주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단연 시대가 남겨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역할을 다 하고 우리 곁를 떠난 분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분 덕에, 나는 감춰진 꿀항아리에서 꿀 한스푼
떠 먹는 마음으로 토요일 밤을 기다렸고,
보고 난 후에는
하늘에 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총총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영화보는 것 만으로도 충만해졌던 가슴이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젊은이의 양지,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
벤허,
남과여,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관과 신사,
록키...
필름 안에 숨겨진 비밀!
영화 속 인물들이 꾸물꾸물 살아있다.
영화에 인생을 담았던 영화평론가 정 영일선생을
기억하며 ~ "그 때처럼 기다려지는 토요명화가 없는 토요일을 살아가고 있군"
2016. 8. 31. 佳媛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