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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un 30. 2016

병아리 네마리

- 삐악 삐악 -

얼마나 뿌듯했던지, 꼼지락거리며, 내품에 들어 온 노오란 병아리 4마리!


5월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생명의 온기는 목덜미의 깃털만 사알짝 만져도 따뜻함이  저절로 전해졌다.
햇빛에 간간히 반짝거리는,

살결보다 더 보드라울 것 같은 비단결 털과 또각또각 붉은 빛깔 부리는 앙증맞게 오물거리고 있었다.


2층집 시멘트 앞 마당에 그들을 풀어두고,

남동생과 함께 열심히 만들어 낸 두툼한 골판지 과자 상자박스가 그들의 거처가 될 때까지

이들을 향한 나의 뜨거운 모성은 이미 타오르고 있었다.
  
"먹을 건 무얼 챙겨줘야하지?"
"배고프지는 않은지...잠자리는 편안해야 할텐데..."
"목마르지는 않을까?" 등등 여러가지 엄마닭을 대신한 걱정이 머리 속에 몽글거리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남동생과 열심히 만들어 완성한 종이상자 집과

그릇에 담긴 물과 모이로 잘라 놓은 상추를 넣어 주고 나니,

조바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은 한동안 안심할 수 있었다.


한마리에 백원~~모두 해 봐야 사백원 짜리이지만,
 그 어떤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병아리 사랑이 시작되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병아리를 돌 볼 생각에 곧장 집으로 돌아오면, 삐악 삐악 소리에 온 집안 거실이 울려 퍼졌다.
그들과의 동거가 이틀 째 되던 날 오후,
박스 너머로 한 마리가 시름시름 졸고 있었다.

나로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우두커니 자리만 지키고 앉아서 잠자는 녀석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이모의 말에 걱정부터 앞서더니,

기어코 그 녀석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다음날 아침 동생과 함께 1층 앞마당 화단 한 켠에 죽은 병아리를 묻어주고,

십자가 성호를 가슴으로 그리고, 나무 막대 십자가를 무덤 가에 꽂아 주었다.


나머지 남은 세 마리는 잘 자랐고,
매일매일 거실에서 삐악 삐악 울어대는 소리를 못 견뎌 결국은 2층 뒷뜰에 거처를 옮겨주고 말았다.
그날 새벽이었다.

조용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병아리의 비명 소리에 우리는 놀라 깨었고,

소리가 났던 뒷뜰로 나갔는데, 병아리 한마리가 사라져 버렸다.
알고 보니, 집 없는 고양이가 먹잇감으로 채 간 모양이었다.
그 날 새벽 병아리의 비명횡사를 뒤로 하고,
잠을 설친 내 눈앞에는 이제 달랑 남은 두 마리의 병아리 만 남아 있었다.
마음은 짠 했지만, 가슴으로 파고드는 슬픔을 잠재우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제 남은 두 마리라도 잘 키워야지"라는 다부진 생각으로 찔끔 나오던 눈물도 삼켜 버렸다.
이전 보다, 훨씬 더 튼튼하게 병아리우리를 만들어 주었다.


매일 상추, 배추, 오이, 물에 불린 쌀과 카스테라빵 등으로 배불리 먹고 잘 자란 병아리는 한달 쯤 되어서는 몰라 보게 잘 자란 청소년 병아리가 되었다.


새노랗던 날개빛은 어느새 누리끼리 해져,

탈색 된 듯 빛 바랜 모습으로, 꼬꼬꼬 소리 내며 어른 닭을 흉내내며 앞마당을 돌아 다닌다.
손바닥에 얹어 놓은 모이를 쪼아 댈 때 모습은 예전의 귀엽고 보드라운 부리는 사라진지 오래되어,

잽싸게 쪼아 대면 아프기까지 했다.


우리들의 동거가 두 달 쯤 되어갈 무렵~
" 저 병아리들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야겠다. 더 이상 여기서는 키울 수 없을 것 같네. "라고

이미 마음먹은 결정을 우리들에게 선포하셨다.


잘 자라준 병아리 덕에 기분 좋았고 행복했었는데, 너무 잘 자라준 덕에 이렇게도 빠른 이별을 해야 하다니....절벽에 서 휘몰아치듯 무서운 바람을 혼자 맞는 마냥,

휑하니 다가온 현실에 동생과 나는 별 저항 없이 두마리 병아리와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엄마가 외할머니댁에 맡겨서, 병아리 잘키워 달라고 해 줘~"


"그래야지~"라는 엄마의 대답이 곧이어 들려왔다.
언행일치를 실현하는 실학자라도 되신 듯,

엄마는 다음날에 외갓댁으로 두마리 병아리를 훌쩍 보내 버리셨다.
병아리 모이주기, 청소, 물주기 등의 소일거리가 사라진 나와 동생은

한동안 집안에 머물면서 멀뚱대기만 하였다.
병아리와 함께한 일상이 무너져버리니, 무슨일을 해도 머릿속은 온통 병아리 생각뿐이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 이맘 때 쯤이었으리라.


"엄마 외갓댁에 보낸 우리 병아리 잘 자라고 있지?"


"엉, 그게...그녀석들 어찌나 시끄럽던지..
여름에 할머니 밭을 엉망으로 뒤집고 돌아다녀 애물단지였다더구나, 에구 두마리 다 잡아 먹었단다."
거침없이 알려 준 엄마의 소리는 지킬박사의 하이드같은 야수에게 확성기라도 내어준 듯 내귀에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시 나의 시간은 멈춘 듯 고요했다.정신차려 다시 확인이라도 하듯
"정말?
"어떻게 걔들을 다 잡아 먹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믿겨지지 않는 듯, 내 음성은 날카롭게 흔들림없이 속사포처럼 내뱉고 있었다.


"아이고, 그럼 어떡하니, 닭으로 다 자랐으니 해 먹어야지...엄마도 그 닭 찜으로 해서 먹었는데, 살도 별로 없고 고기맛은 왜이리 질긴지, 맛없더라."
엄마의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이전에도 슬픔 그 이상의 좌절을 맛 본적이 없는 초등학교 6학년의 가련한 나에게 처절하리만치  꺽여진 마음은 엄마의 말이 곱게 들릴리 만무했다.


마음으론 '엄마 미워, 이제 다 미워.미워....미워'를 백번도 더 외쳤을까?
후련치 않았던 기억...그 시절의 일이 이미 30년도 넘었던 과거지사가 되었고,

그 일에 대해 기억조차 못하시는 친정엄마에 대한 서운한 마음 같은 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다만, 내가 사랑하고 아꼈던 병아리를 보내고 애도했던 일련의 일들이 나의 사춘기와 함께 녹아져 뾰족하고, 도드라지게 곳곳에 묻어져 있다가, 톡톡 튕겨 나오곤 했었다.


후훗~~
그일로 집안에서 동물들은 키우지 않겠다는 내 마음은 더 굳어졌고,
지금 내 아이들에게도 애완용으로 뭘 키우지 못하게 하는것은

묻어 두었던 내 과거 병아리 사건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별의 아픔과 상처가 두렵기에~


그 일 이후
병아리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리 좋아하던 치킨은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었다.
바로 며칠 지나지 않아서 후라이드 치킨이며 양념치킨도 모두 먹기 시작했지만...


어쩜 까마득한 이 옛일이 어제 일처럼 봉긋이 올라 내 기억의 해마 속을 더듬고 있는 것은,

나이 먹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게다.
묘하게도, 어제 지낸 일은 좀체 생각나지 않는 지글지글 뒤죽박죽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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