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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ug 20. 2016

남동생과 TV

내 말을 들어주오~


언니와 나는 TV 속 '말괄량이 삐삐'가

뒤죽박죽 별장 앞 농장에서

말을 두 손으로 번쩍 들면서,

웃고 있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래져 놀라고 있다.


한편으로는 저게 가능한 것인지,

신기해 하면서 TV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몇 분전에,

언니와 내가 남동생을 놀렸을 어떤 사건이

일어났었다.


언니와 내가 희희덕거리며,

TV 보고 있는 모습에 남동생은 자신을 놀렸던 누나들의 웃고 즐기는 모습에

심통이 더 난 모양이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던 언니와 나는

TV 속 '삐삐'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느샌가, 동생의 검은 그림자가

TV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야! 안보여~ 얼른 안 비켜"


예상치 않은 상황에 남동생을 향한

언니와 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싫어"라고 남동생침이 에코처럼 울린다. 

러고도 화가 덜 풀린 모양인지 입술을

부르르 떤다.


녀석의 행동을 보니,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남동생과 우리의 신경전은 수초 사이에

극에 달하고 말았다.


급기야, 남동생은 최후의 방어 수단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동생은  방 한가운데 뒹굴고 있는 베이지 색

타월을 냅다 집어들고, 다시 TV 앞에

장수처럼 당당히 맞선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는 수건으로

TV 화면을 죄다 가리고 서 있다.

그런 후, 남동생은 가린 TV 앞으로 자신만

볼 수 있도록 수건 안쪽의 화면을 보며,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우리를 향해 씨익

웃고 있다.


언니와 나도 보고 싶은 '말괄량이 삐삐'생각은 이미 잊은 채, 남동생의 '다짜고짜 저항'에

뒤통수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


남동생의 섣부른 시위에 언니와 나도 TV사수를 앞세워 TV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말괄량이 삐삐'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고 없다.

우리들의 전쟁은 TV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동생은 저 보다 덩치가 더 큰 두 누나의 무력행사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남동생의 고집스런 행동의 끝은 처음부터 결론이 나 있었다.


"너 자꾸 그러면, TV 문 닫아버릴거야."라고

남동생에게 쏘아 붙이고,

언니와 나는 행동 강령에 들어 갔다.

그리 좋아하던 TV를 끄고, 언니와 나는 양쪽

TV갤러리 문을 꾹 닫아 버렸다.



동생은 안간힘을 다 해 문을 열고 싶지만,

두 누나의 힘을 당하지 못 한다.

TV 고지전은 언니와 나의 1승으로 마무리 되었고, 남동생의 울음보는 멈추지 않는다.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도 남동생의 울음은

쉬이 그칠 것 같지 않다.




갤러리 칼라 TV가 우리집에 등장하면서,

가끔 우리집은 아이들의 'TV 고지전'이 벌어지는 조그마한 싸움터이기도 했다.


갤러리 TV 추억 속에는 남동생의 TV앞

시위와 베이지색 타월이 함께 펄럭거리고 있다.


TV 앞에 서 있는 동생은 "누나들은 나를

놀렸으면서 내게 미안하단 말도 안하고, 나를

왜 화나게 해" 라고 말 하고 싶었을게다.


그 뜻을 모르는,

어린 언니와 내 눈에는 누나 말 안 듣는

'일곱살 고집쟁이 남동생'일 뿐이었다.


그 때는 어렸고, 지금은 어른이다.




갤러리 칼라 텔레비젼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다.

2016. 8. 20. 佳媛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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