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작가 Aug 15. 2016

아~포. 도. 주.

여섯살 '알딸딸'을 알다.

"어~ 기분이 이상하다."



정신은 몽롱하고,

아찔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이 스르르 감긴다.


"아! 이대로 자면 안될 것 같은데..."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두려운 마음에

이불을 머리까지 훌러덩 덮고,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데,

누비이불 하늘이 내게 점점 가까워 온다.

아~ 스르르 잠이 온다.


이 일이 일어나기 1시간 전 쯤의 일이다.


집에 아빠를 찾아 반가운 손님이 오셨다.

나는 처음 본 아저씨에게 빼꼼히 얼굴 내밀며,

쑥쓰러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좀전에 혼자 놀았던

 내 자리로 돌아 와 앉았다.

방 끝 코너 책상 밑에 누비이불 펼치고,

그 앞에 장난감 몇개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분은 다과상에 엄마가 직접 담궈 놓은

포도주를 잔에 나누어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저번에 엄마가 포도주 담그면서,

너희들은 절대 마시면 안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빠랑 아저씨는 잘 드시네.


왜 나는 마시면 안 되지?


포도주 맛이 많이 쓴가? 혹은 매운가?

설마, 정말 맛이 있어서 어른들 만 마시려는

것은 아니겠지?"


여섯살 꼬마의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 궁금증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지만,

나는 꾹 참고 내가 놀던 장난감에

집중해야 만 했다.

어른들이 앞에 계시니, (예의바른?) 나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그렇게 손님은 아빠와 한시간 쯤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셨다.


아빠는 이후 손님과 함께 외출을 하셨고,

엄마는 잠깐 큰댁에 가신 모양이다.


"집에 나 혼자 남았네..."


덜컥 집에 혼자 남겨지고,

방 한가운데 포도주와 다과상이

덩그러니 내 앞에 놓여 있다.


아빠가 마시다 남긴 포도주 잔이 보인다.


두 모금 채 안될 만큼 양은 적었다.

갑자기 내 눈은 포도주 잔의 붉은 유혹에

빨려 가는 듯, 몸은 이미 그 앞에 이끌려

가 앉아 있다.


이내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포도주의 맛'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맛일까?

이거 마시면 아빠처럼 기분 좋아서,

헤헤헤 웃음이 날까?

설마, 내가 마시면 엄마한테 들키진 않겠지?"


포도주 맛부터 마시고 난 후의 상황까지

모든 일련의 일들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수초간

후드득 지나가더니, 금새 나는 아빠의 포도주 잔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에이 마셔 보자~ 아무렴, 괜찮겠지"

혼잣말로 나의 의지를 세워,

 난생 처음 포도주라는 맛을 혀끝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코끝에서 느끼는 알콜의 알싸한 향이

잔 안에 진동하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두모금 쯤 되는 포도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꾸울꺽~~꿀꺽"


코끝이 얼큰하니 박하향처럼 화하고,

혀끝에 포도주의 단맛이 남아 있다.


"하아~ 이 맛이 포도주 맛이구나" 하고 다 마신

잔을 상위에 내려 놓았다.


5분 쯤 지났을까?


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자꾸 눕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천장이 뱅뱅 돌기 시작하더니, 몸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 없이 무겁고, 알딸딸하다.


몇 시간를 잤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저녁이 되었고,

아까 놓였던 포도주 잔은 이미 치워지고 없다.


"너 오늘따라 낮잠을 오래 잤구나!

어서 저녁 먹자."


엄마는 나의 '음주 사건'을 전혀 모르신 것 같다.

안도감에 심장은 더 이상 벌렁거리지 않는다.

천만 다행이다.


여섯살 포도주가 내게 '알딸딸'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우쳐 준 날이다.


성찬식의 달큰한 포도주 한모금 만으로도

감히 취하고마는 나는 알콜 분해 능력 제로,

알딸딸 우먼이다.


내 마음의 보석상자 '브람스'


파퓰러 한 칠레 와인 '에스쿠도 로호' 병과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병이 창가를 지키다.
'브람스'의 창가


2016. 8. 15.

오늘은 내 기억 속 젊은 아빠의 생신이다.

보고싶은 아빠를 추억하며,

철 없던 여섯살은 돌아오지 않으리.

佳媛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포도 사냥꾼의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