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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ug 13. 2016

포도 사냥꾼의 여름

포도 좋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다.
   


    
유년시절,
친할아버지 댁 앞 마당에 펼쳐진
수백평 쯤 되는 포도밭에서
포도가 영글기도 전에 맛보는 시큼한 포도 맛의 중독성을 체득해서일까?


입안에 침이 고인다.


아무튼, 나의 끝없는 '포도 사랑'은 생각 만
해도 달달하다.

대학 시절 어느날엔가 자다가,
엄마가 "정현아 포도 먹어라"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 적도 있었다.

힘없이 축쳐져서 집에 들어 온 나에게 엄마가 내게 속삭이 듯 '포도 먹자' 라는 말에
나는 금새 아이처럼 생글생글 해맑게 웃으며, 식탁으로 달려가곤 했다.

가족 모두가 포도만 봐도 내 얼굴이
생각 날 정도였으니, 나는 일종의
 '포도 사냥꾼' 이자 '포도의 포로'이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입맛도 변한다고 하지만,
내게 포도는 끝없이 맛있기 만 하다.

20대 후반에 나의 절친한 친구는
나의 포도 사랑의 마침표를 찍어주기 위해,
포도 농장에 나를 데리고 간 적도 있다.

이제 막 신혼부부였던 친구부부 앞에서,
체면차릴 것 없이
먹고 싶은 만큼 원 없이 먹으려고
욕심도 부렸다.

정작 두 송이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더
이상 포도 먹기를 포기했지만, 여기저기
 포도밭에 탐스럽게 영근 포도송이는 내게
여름의 끝자락을 완성시켜주는 단어였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포도~


머릿속으로 포도 생각 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고,
입속으로 들어와 감기는 탱글탱글한
포도알의 부드러움은 한달음에라도
내 어릴적 할아버지 포도밭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추억이 몽글거린다.

내 추억의 포도 사냥터였던
할아버지댁 포도밭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없어졌다.

20년 이상 같은 땅에서 땅을 갈지 않고,
포도밭을 이어가면 병충해가 심해져,
포도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하여
갈아 엎어, 금새 채소밭으로 변하였다.

하루 아침에 포도밭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한동안 사라져버린 포도밭 주변을 맴돌며,
허탈한 마음 달래기 버거웠었다.

더 이상 포도밭에 가서 포도를 따 먹지
못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어린 마음에 내내 섭섭했었던 모양이다.

삼십오륙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태양아래, 이 육사의 청포도는 주렁주렁 열려,
붉은빛을 발하며
포도밭에 단내를 폴폴 풍기기 시작한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

전국의 포도 사냥터에서 올라 온 물오른 포도 맛을 볼 수 있는  '포도 사냥꾼의
축제일'이 가까워 온다.

내게 여름을 견디는 힘은 포도의
달콤한 농도와 비례하리라.

"어제는 여름, 이제는 가을이라니!
저 신비로운 소리가 떠남의 신호처럼 울린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가을의 노래>에서




2016.8.13.
나 여름에 태어났으니,
누구보다 더 여름을 잘 견디리라.
佳媛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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