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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Oct 11. 2016

송곳니와 단무지

물말은 밥에 단무지 달랑


흔들거리는 이(齒) 때문인지,

머리도 흔들거리는 것 같고,

온통 신경이 그 곳에 쏠린다.

잇몸에 붙어있는

이의 들썩거림은 어쩐지 부담스럽다.




"이그~ 오늘도 조금 흔들거리기 만 하지,

 빠질 것 같지는 않네"



삼일 째 흔들리고 있는 이(齒)가 빠지기 만을

학수고대 한다



분명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삶의 소소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질기고 지루한 시간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버티기만 해도 된다.




가을 하늘은 높고, 청명하기 만 하다.

오후에는 제법 바람이 더욱 선선해져

싸늘한 느낌도 든다.



놀기엔 엄청 좋은 날씨다.


국민학교 2학년!

학교 수업 마치고, 하교 후 집에 잠깐 들러 가방은 방에 던져 놓고,

동네 친구들과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신기한 것은 친구들과 술래잡기, 소꿉놀이,

고무줄 놀이, 미끄럼 타기,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이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흔들리는 이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놀기에 푸욱 빠져 있으니,

아팠던 이도 멀쩡하게 느껴졌다.



마술같은 일이었지!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발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이는 다시 흔들거리고,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따끔거리고 쑤시지는 않아도,

되새김하는 소처럼 이를 쩍쩍 부딪혀서 움직일 때 마다 서그럭거리며,

뒤틀리는 이가 못마땅하다.


"에우어~웅어...우엉~

앞으로 이가 빠질려고 할 때마다,

이 기분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여덟살 꼬마의 고민이 소용돌이 친다.



들썩거리는 오른쪽 윗 송곳니를 혀 끝으로 밀어내면, 이는 더 덜렁거리는 것 같다.


홀랑홀랑해진 잇몸의 살이 혀끝에 느껴질 때 마다.

내 마음은 너덜너덜 덜컥댄다.


해가 떨어질 때 까지 친구들과 뛰어 놀아서인지

배에서 고무풍선 꽈리처럼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흔들리는 이 속에 휩싸이는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일까?


밥 먹는게 고역이 되었다.

식사할 때마다, 흔들리는 이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투덜대며, 투정을 부린다.



"엄마, 나 저녁 안 먹을래"

"아니, 왜? 너 좀 전에는 배고프댔잖아?"


"이빨 빠질려고 해서 이가 아파,

(투정섞인 말투로) 안먹을거야."


"그래도 먹어야지"


"싫어"


몇 분후, 엄마는 부엌에서 상을 들고,

방에 엎드려 뒤척이며 시위하는

내 머리 앞쪽에 상을 내려 놓신다.


"에따~ 이렇게라도 먹으면 밥 먹을 수 있을거야.

조금이라도 먹어봐라~"

엉기적거리며 일어나 억지로 앉아 있는 내 앞에는

식은밥에 물을 말아 놓은 그릇과 엄마가 직접 담근 노란무 (단무지) 반찬 한가지!


달랑 상위에 놓여 있다.


상끝이 휑하다.



물 말은 차가운 밥 위에 단무지 한개 올리고 입에 넣고 오도독 씹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을지언정,

엄마는 내게 이렇게

혹독하게 반찬 한가지 달랑 주면서,

밥을 먹으란다고 생각하니

밥 먹는 것이 고역이자 벌처럼 느껴지더니,

급기야 서럽기까지 하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순간이었다.


울컥이면서 단무지를 버석버석 씹었다.


그럭저럭 물말은 밥 덕분인지, 밥은 잘 넘어갔다.

서너번째 밥 숟가락을 입에 넣고,

단무지를 우걱거리는 순간


'뿌지직 서걱'


입안에서 파하니 터지는 느낌이 들더니

오른쪽 송곳니 자리가 휑하다.


돌처럼 입안을 맴도는 송곳니를 손으로 빼냈다.

흔들렸던 송곳니 사이에 단무지가 걸려서

이는 저절로 빠진 것이다.  



"우히힛~ 엄마! 이 빠졌다. 우하하"


"아이구 그래 잘 됐네. 어디보자" 하고 기뻐하는 엄마는 내게서 이를 보고, 건네 받더니


당장에 그것을 가지고 마당으로 나가신다.


 

" 까치야 까치야 헌이 줄게 새이 다오~" 하시더니

빠진 송곳니를 지붕 위로 휘이익 던지신다.


"인제 너 쫌만 기다리면, 새이 나올테니 기다려라."


"까치가 나한테 새이 주는거야?"


"그렇지! 그러니 밥도 잘 먹고, 이도 잘 닦으면

된단다. "


"웅, 알겠어. 아~ 이빠지니깐 시원하다."


울었던 눈가에 눈물은 말랐고,

입꼬리가 올라간 나는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가 차려준 '물말은 밥에 단무지 달랑' 덕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가 빠졌다.


입 벌려 바람을 넣었다가 불면,

공기가 새어나가는 공처럼

쉑쉑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하다.  


하루가 다르게 잇몸을 뚫고 올라오는 이가

혀끝에서 느끼는 뾰족함과

올록한 잇몸의 보드라움이

동시에  스친다.


송곳니 사이에 걸린 단무지 덕분에

새 송곳니를 곱게 얻었다.


엄마가 밥상위에 단무지 반찬 한가지 만 올려 주신 데에는 뜻이 있었으리라는 확신은 나이 들수록 더

커진다.


단단한 단무지 씹어서 송곳니 빠지게 된 것을 경험

한 이후로,


빠질이는 적당히 견디고,

흔들리게 한 후

적당히 시기를 가려서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뺄 줄 아는 방법을

서서히 터득했다.


이렇게 이 하나 빼는데도 시기와

적당한 외부환경의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너무도 어거지로 우기고

떼 부리면서 얻고자 하는 것에

안달한 적 없었는지....

.

.

.


내 헌이에 관한 이야기의 도약은

강물처럼 흘러 여기까지 오는구나!






2016. 10. 11. 이(齒)에도 기다림의 품격이 있다.

佳媛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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