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의 저력
"넌 뭘 그리 많이 쳐먹어서 그런 병에 걸린거냐?"
점잖으신 할아버지가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한마디 툭하고 던지니,
그 말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쳐먹다'라는 단어의 힘이 그렇게 센거구나!' 라고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공처럼 구석구석을
튕기며, 돌아 다니고 있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자리를 앉는 순간에 들리는
그들의 연속되는 대화는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사이에 찢어지듯
거슬리게 째는 매미소리를 연상할
만큼 내 귀에 증폭되어 들리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조그마한 카페 안에 손님은 달랑 나와 그들 밖에 없었기에, 소리크기의 가중치는 배가 되는
듯 했다.
그들의 소리는 징소리 퍼지듯 카페 안을 순식간에 삼켰다.
그들과 테이블 두개 정도를 건너 뛴 사이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이윽고 그들의 대화는 한입 베어 문 연시처럼
쓔우욱 쑝하고 터지고 있다.
"뭐, 맛있는거 혼자 다 대접받아 먹어 그렇지~"
옆에 다른 친구가 대신 한마디 덧붙여 말해준다.
"그 때는 김영란법이 없어서,
맛있는거 다 얻어 먹은거지. 그렇지?"
처음 질문했던 할아버지가
너스레 떨며, 웃으며 이야기 한다.
"허허허~ 그렇다. 김영란법이 너무 늦게 생겨서
네가 당뇨 걸렸구나..."
다른 친구도 맞장구를 치며, 말꼬리를 잇는다.
당뇨병 걸린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군!
데시벨을 가늠할 수 없는 고장난 스피커처럼
고성(高聲)에 가까운 할아버지들의
대화 창은 끊이지 않고,
정치 이야기며, 나라 경제 이야기로 걱정을
이어간다.
왼쪽 귀로 들어 와 오른쪽 귀로 빠져 나간
그들 이야기의 내용은 비약과 도약의 강을
넘나들더라.
당뇨는 병도 아니라는 친구의 말을 위로로 삼아
고마워 해야 하는건지,
김 영란법이 생기기 전에
음식 대접해 준 인간들을 미워 해야 하는건지...
할아버지는 알듯 모를 듯 친구들 사이에서
불안한 듯 어색한 미소를 한동안 감추지 못한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친구가 당뇨를 앓고
있는 듯 했다.
건강이 화두가 된 어르신들의 찜찜한 대화는
한없이 삼천포로 흘러간다.
2016. 10. 17.
양재역 근처 카페에서 佳媛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