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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un 10. 2017

길. 위에서.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남대문이 보이는 로터리 길 가에서

신세계 백화점 명동점 가는 방향으로 걷고 있다.





7월 초, 부서지는 햇살 속 플라타너스 숨결이

뜨거워도 참고 걸을 만 한 날씨다.


젊은 남녀가 저

앞에서 지도를 보고 손으로 어딘가를

몇번 가리키곤 주춤주춤 그 자리에서
맴돌 듯이 서 있다.


그들과 같은 길 위에서 스치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담하고 작은 체구의 단발머리 그녀가

미소를 띤 채, 상냥하게 내게 말을 건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있는 관광안내 지도를

내게 펼쳐 보인다.


그녀는 내게 지도 위의 한 곳을 콕 찍어 보인다.

명 • 동  • 칼• 국 • 수


어디로 가야하며, 걸어서 얼만큼 걸리는지

영어로 묻는다.


마침 나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며,

Just follow me~라고 말한 후,

손짓으로 제스쳐를 취하니, 금새

둘은 지도를 접고 나를 따르기 시작한다.


마침 디자인 설계현장이 명동칼국수 본점과

가까운 선샤인 빌딩의 'D.K.N.Y. 명동점' 이었고,

때마침 점심시간 가까운 시각이라서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걸어가면서 그녀와 나의 대화는 시작됐다.


쌍꺼풀지고 눈꼬리가 살짝 쳐진 동그란 눈에

가지런한 하얀이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 그녀!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그녀는 이미 나의 친구가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 서울로의 첫 방문이라지만,

나를 통해 낯선 도시가 아닌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소개받는 아득한 느낌이 들기를 바랬다.


영어를 못하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져 그녀의

눈과 입만 바라보면서, 그녀가 우리의 대화를

일본어로 통역해 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듣고는

이따금 씩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서로의 간단한 신상을 이야기하면서,

20대 중반 또래임을 알게 되었고

이내 우리의 친밀도는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국적을 뛰어넘는 친구사이가 될

수 있음을 서로 감지한 것이었을까?

명동칼국수에 도착하고 그들과 헤어지려는 순간,

그녀는 함께 식사할 것을 내게 권했고,

나는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중독성 강한 닭곰탕 육수에 어우러진 면과

마늘 양념 잔뜩 들어간 빨간 김치의 마력은

우리의 이야기를 더욱 화끈하게 만들어 주었고,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다르게 해석되는

코드에 진지함이 간간히 실리기도 했다.


점심 후 커피숍에서

나눈 이야기는 마치 십년지기 친구와 나누는

수다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줄줄이 이어졌다.


가족이야기, 음악,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며

일본과 재일교포, 조총련의 일본 생활과

그들을 향한 일본인의 고정관념,

남한과 북한사람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

등에 대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린다.


헤어질 때 나누는 포옹과 작별인사,

그녀는 여행 후, 집에 돌아가서

꼭 편지하겠다고 새끼손가락 약속까지 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두시간 남짓한 명동에서의 시간이

그날 하루를 길게 만들었고,

인연이 참 묘하다는 생각과

이런 인연으로 친구도 맺을 수 있구나를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그 후로 남대문과 명동을 걸을 때,

가끔은 일본인 친구와의 길거리 첫만남과

거기에서 싹튼 우정을 생각하곤 했었다.


헤어진지 보름쯤 지나서였을까?


그녀에게 편지가 왔고,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과

근자의 소식을 적어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과 그녀의 손편지에 정성이 묻어난다.

답장을 보내면서 이어온 우리들의 우정은

손편지에서 이메일,

이메일에서 트위터로 지금까지 발전하였다.

그녀의 정성어린 편지 (1996년)
그녀가 가끔 힘주어 썼던 한글이 눈에 띤다.

몇년 후, 일본 출장 중에 야마가타에 살고 있는

그녀의 집에 초대받았던 나의 아름다운 추억.

야마가타현 근처 신사를 둘러보고~



센다이 근처 해변가에서 그녀와 함께~~


웨딩포토 촬영을 위해 다시

서울을 방문한 그녀와의 재회.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을 반반의 추억이

알알이 남겨져 친구의 나라로 새겨져 있다.


강산이 두번 바뀌었을 세월에

나는 두아이의 엄마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그녀는 도쿄 인근의 특수학교 교사이자

원전반대 시민운동 활동가로 활약 중이다.


고국이 달라서 언어가 다르고,

직업이 달라서 소통이 어려울 것 같고,

문화적 경험의 차이로 감성이 다를 것 같지만,

배려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면,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가슴이 이해한다.

친구가 있음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길. 위에서.

친구가 생겼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하긴, 처음부터 친구였던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친구도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오묘한 인생이다.


친구야! 잘 있는가?

가끔 들르는 명동칼국수에서 너와의 만남을

늘 기억하고 추억하지.



2017. 06. 10. 20년 전, 우연히 인연이 된 친구를 그리며,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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