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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pr 29. 2017

개울가에 올챙이 열두마리

11년 전이었드래~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 갔더랬지.







아이들의 재량휴일에 맞춰 휴일이 며칠 생긴

짬을 이용해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대관령을 넘어 설악산으로

유유자적, 따뜻한 봄은 우리를 반기었고

상쾌한 날씨 덕에 기분도 업되어 있었다.


4월 이었지만,

대관령 삼양목장의

해발 높은 고지에서는 하늬바람이

높새바람으로 바뀌었고,

폼 좀 잡으려고 입은 청쟈켓이 바람에

자꾸 벌러덩거려 옷매무새를 다잡지 않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줄곧 이어졌다.


이에질세라,

나는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썬글라스를 끼고  15도 각도로 비스듬히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띄우며 포즈를 취한 채,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몇 컷 찍고 산길을

거닐기도 했다.


길가에 이름 모를 풀꽃에 반가운 눈인사도 하면서

룰루랄라 여유가득 흥겨운 콧노래를 불러본다.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목 농장에서

아이들은 우리 안에 있는 타조와 사슴에게

먹이를 주며 금새 동물가족이 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개울도 보이고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울을 본 아이들은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잽싸게 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엄마! 이것 좀 봐! 와 아~~아"


" 우와~ 이거 올챙이니?"


" 우웅~ 올챙이 엄청 많지?"


좁쌀만 한 크기부터 콩알만한 올챙이들이 개울 안에 넘쳐나 듯 넘실댄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귀엽다는 생각보다,

머릿속으로 계산 할 수 없을 만큼의 올챙이를

보아서인지 징그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 엄마 우리 올챙이 잡아서, 집에 가져가서 키우자"


"그래 좋아~ 키워보자"


남편과 나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큰 아이는

다 마신 음료수 병에 수십마리 올챙이를 동생과 함께 부여 담기 시작한다.


삼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두 아이의 임무는

모두 끝났다.


"아빠, 엄마! 이거 봐요"



의기양양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 앞에 보여 준 페트병 안에는 올챙이 수십마리가 구물구물 까맣게 덩어리 져 있다.

이내 오물락 꼬물락 요리조리 수영 중이다.


"애들아! 이거 너무 많다. 이렇게 많이

 집에 가져가도 다 키우지 못 할걸?"


아이들을 설득한 후 개울에 십 수마리 올챙이를

개울에 다시 방생하게 하고,

요리조리 몸을 피해 페트병에

남겨진 올챙이는 12마리였다.




이제 우리집으로 데려갈 올챙이 12마리!

올챙이의 생은 우리 가족에게 달린 셈이다.


차 안에서 아이들은  재잘재잘 수다를 떨다가도

피곤하면 잠을 자다가 깨고, 간식 먹으면서

다음 여정은 어디인지 꼬치꼬치 묻기도 한다.


흘러 나오는 빵빵한 음악에

아이들 노래 소리는 더욱 커진다.


며칠간의 여행에 올챙이 12마리도 합류했었고,

그럭저럭 별 탈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조그맣고 동그란 어항에

올챙이 12마리를 옮겨 주었다.


여섯살 인호, 다섯살 인영이의 눈에 비췬

올챙이는 생명의 신비감과 그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주인의 마음이 들었을까?


첫날 아이들은 올챙이를 향한 온전한 사랑과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유치원에 다녀와서도 한 동안 어항 속 올챙이를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듯 대화하며,


어항유리에 똑똑 노크하는 시늉으로 장난도 걸어본다.


"엄마 이제 올챙이 조금 있으면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꼬리도 없어지면서

개구리가 되겠지?"


"아마도 곧 그러게 되겠지?"


분명 올챙이를 데리고 올 때

개구리로 자랄거란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설마 그렇게 자랄 때까지 잘 키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앞서, 여차하면 방생을

생각했기에 큰 걱정 없이 12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올챙이 12마리와의 동거 셋째날 아침이었다.


아이들 유치원 등원 준비로 마음이 분주한데,

어제처럼 동일한 동선과 눈길로 거실 어항 앞을

지나가다 멈칫했다.





어항 속이 왠지 휑해 보였다.

이상한 느낌에 어항을 들여다보며 숫자를 셌다.


어제 보았던 올챙이 12마리가 아니다.


"여보! 애들아! 올챙이가 없어졌어"


내가 잘 못 본 것은 아닐텐데....

아무리 세어도 올챙이는 7마리 뿐이다.

아니 5마리 올챙이가 어디갔단 말인가?


혹시 올챙이가 어항 밖으로 튕겨 나왔을지

모른다며 어항 근처부터 베란다 바닥 등을

가족 모두가 샅샅이 훑어 봤지만

어디에도 사라진 올챙이 5마리는 없었다.


사라졌는데, 흔적이 없다니....


혹시 아이들이 어려서 생명에 대한 소중한

생각없이 올챙이를 꺼내서 무슨 장난을 한 건

아닐까?


그렇게 온갖 의심과 추측, 억측 등으로 하루를

얼렁뚱땅 보냈고, 아이들에게는 어항 근처도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엄마의 독단적인 결정에 아이들은 이미 마음이

움츠려 든 상태였다.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떠 안고

다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 나온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항 속 올챙이가 다섯마리 반이 있었으니....

기절초풍 할 노릇이었다.


"아이쿠~ 이게 뭐야!"

나의 꽥하는 소리에 모두가 거실 어항으로

집합했다.


"이거 범인이 올챙이었던거야?"


올챙이가 올챙이를 먹었다.


"세상에 이럴수가!"를 연발하면서,

모두 눈이 휭둥그래져 눈앞에 벌어진

'올챙이 사건'을 보면서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거 이대로 뒀다간, 나머지 올챙이 다 죽겠네.

인호, 인영아!  남은 올챙이는 반포천에 방생해야

겠다."

남편의 제안에 아이들이 기꺼이 그러자고 한다.


아이들은 남은 올챙이 5마리를

곧장 반포천에 떠나 보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자연에서 온 올챙이의 귀환은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 믿었다.


우리의 욕심으로 부여 담았던 12마리의 생이

온전치 않았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전날 사라졌던 5마리 올챙이에 대해

잠시나마 갖었던 엄마의 못난 의심이 아이들에게

죄스럽기도 했다.


나흘간 올챙이와의 동거이후 우리의

올챙이를 향한 개구리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

반포천에 방생한 올챙이 4마리는

이미 생을 다했을거고 거친 세상을 무사히

살아서 생을 마쳤다면,

올챙이 자손의 손자의 손자,

또 그 손자의 손자....


끊임없이 이어진 올챙이에서 개구리 꿈을 이룬

후손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여기저기 풀밭을

뛰어 다닐지도 모른다.


"야~ 너희 고조 고조 할아버지 개구리의 고향은

저기 머언 강원도 산골 개울이드래~

차암 여기까지 멀리도 왔구나"


이렇게 우리 가족은

어느 개구리 가족의 계보를

흐트려 놓았거나 혹은 글로벌한

개구리 가족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올챙이를 키우기 전에는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나오고

꼬리가 쏘옥 사라지면서 팔딱팔딱 개구리로

바뀌는 모습이 자연 생태계의 당연하고

간단한 이치라 믿었다.


하지만, 올챙이가 올챙이를 먹는 사건을 겪고나니

올챙이들 생존본능 앞에 인간사의 냉혹한
현실이 투영되는 것 같아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 간단치 않는 생의 긴 호흡이라니~"







2017. 4. 27.


11년전, 올챙이 열 두마리에서

다섯마리 만 남았던 격한날을 기억하며~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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