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풍!!
깔깔하고 빠알간 촘촘한 천 위에 마크가
하얗게 쏘옥 새겨진 운동화.
새운동화! 자체 발광은 이런거~
내 머리맡 위에 고이 놓여 있다.
조금 전까지
운동화를 신었다 벗었다 열번쯤 반복했고,
신을 때 마다, 방과 거실을 뚜벅뚜벅
걸어 다니기도 하고, 신나게 뛰어 본다.
방바닥에 끈끈하게 붙어서 떨어질 때
고무 질감의 탄성이 쨍쨍하게 당기듯,
방안 구석구석에 찍찍거림으로 울려 퍼진다.
트럼플린 위에서 뛸 때, 콩콩거리는 5프로
비슷한 느낌이 발바닥과 척추에 전달 중이다.
걸을수록 신나는 묘한 기분은
마음을 더 들뜨게 한다.
새 운동화를 신을 때 첫기분은
빠알갛게 익어 터지는 석류를 한입에 다
털어 넣고 씹을 때 톡 터지는 달콤새콤
입안에 감도는 새초롬한 첫 느낌이랄까?
흥분된 마음이 다시 출렁댄다.
신발 뒷태도 살피고,
앞코의 재봉선이 튼튼한지 꼼꼼히 다시 살핀다.
둥그스름하게 연결된 옆선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한동안 코를 박고 쳐다 본다.
게다가, 내일은 학교 소풍가는 날!
마음이 들뜨고 가슴 설레인지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청하지만,
머리맡 새 운동화의 화학적 아릿한 향에
코끝이 찔려서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됐으면,
웬만한 학교 행사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졌을텐데...
유난히,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입가가 헤벌쭉 해 져,
나의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단어 자체가 주는 행복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는거지...
이 행복감 위에 새 운동화가 얹혀졌으니,
행복이라는 녀석은 이미 큰산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분명 엄마는 내일 김밥과 칠성사이다,
삶은 달걀을 싸 주시겠지?"
생각 만 해도 엄마의 불고기 김밥은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면서 군침이 저절로 생긴다.
드디어! 소풍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뽀송뽀송 어린 강아지 풀 매만지는 살가움으로
따뜻하게 벤 봄날 아침 햇살이 창가에 드리워져
방안으로 퍼진다.
현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의 운동화는 세상과 첫 대면을 시작한다.
이제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 속에
나의 발가락들은
새 운동화에 길들여지기 위한 꼼지락거림을
무한 반복 중이다.
언덕을 오를 때 착지는 요렇게,
내리막 길에서는 앞코에 힘주어서 내딛을 것이고,
흙먼지 자욱한 신작로에서는 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사뿐히 착지할 수 있도록
발가락을 한데 모두어 걷는다.
하루종일 운동화는 내 몸에 붙어 있기 위한
몸부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풍이 즐거웠는지,
엄마가 싸준 김밥과 사이다가 맛있었는지,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았는지,
아이들과 수건돌리기에 내가 술래였는지 등에
대한 기억의 나침반은 고장나 있다.
하지만, 새 운동화를 신고 신경을 곧추세우며
발가락과 전쟁을 벌였던 생생한 기억과
발뒤꿈치의 뜨거운 물집이 터져서 코끝 찡하게
눈물났던 기억은 아련히 남아 있다.
"아! 발가락 아퍼~ 불쌍한 나의 발뒤꿈치여! "
새 운동화를 신기 전의 두근두근 설레임과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신작로와
공원에서 뿌옇게 얹혀진 새 운동화 위
흙먼지와 발뒤꿈치에 부어 오른
물집이라는 상처가 공존하는 기억은
이렇듯 미묘하게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비단 내 것이 된다는 것에 값을 치루는 일은
새 운동화에게 만 국한된 일이 아니지.
어린 나이에 운동화에 대한 이토록 넓은 이해와
철학은 있었을리 만무하니,
물집 터진 발뒤꿈치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 한방울의 의식이 전부였다.
하룻 사이 운동화와의 불편하고 어색한 동거는
며칠만 지나도,
' 이제 너는 나이고, 내가 너인 것이다.'라는 것을
몸이 벌써 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서로 닮아가는 것이지."
내 발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익숙한 운동화는
나의 분신처럼 신을 벗어도 그 모양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
닳고 닳아서 나와 헤어지는 그 순간이자
버림받는 순간에도, 내 분신으로써 최선을 다
했음에 그의 존재감은 마지막까지 빛난다.
나를 떠나간 모든 운동화의 추억에는
뒷꿈치의 물집이 늘 짱하고 터졌던 운명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새운동화를 생각하면, 내겐 발뒤꿈치가 아려온다.
새 운동화의 아릿한 기억을 추억하는 나의 발뒤꿈치여~
2017. 7. 18. 가원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