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작가 Feb 05. 2017

오락실 이야기

테트리스 10만원어치

따따~ 따리라라~따따 따리라라.. 삐이익~수웅...

따리리리...따따따 따르르르..슈우 슈웅




무한 반복 익숙한 기계음과

오락실 내 어우러지는 다른 오락기계음과

푹 빠진 사람들의 함성이 하나되는...


내게는 즐거운 음악으로 들리는 시간.


오락실에 머무는 동안,

이미 나는 오락기계와 한몸이 된다.


어느새 화면의 작대기 테트리스 블록이 바닥에

떨어지고 아래 모든 칸이 채워지면서,

점수 올라가는 띠리링 벨 소리에 손가락 감도가

무한 상승 중이다.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테트리스로 잠깐의 '자뻑 즐거움'을 누리면서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상쾌한 시간으로 바뀐다.


그 달콤하고 짜릿한 시간을 누리려고,

자투리 시간에라도 기를 쓰고

오락실 테트리스 게임기에 짬짬이 매달렸던

대학 4학년 여름방학


'테트리스 패닉' 시절이 아주 잠깐 있었다.


누군가 "아니 그 나이에 무슨 오락실이냐?"라고

반문할지 모르나,


나의 오락실 기행의 흑역사는 청소년기를

한참 지난 아주 우연한 기회에 생겼다.


친구네 집 동네 길목에 서 있는 오락실에

친구 따라 갔다가, 그날로

테트리스의 매력에 푸욱 빠지고 말았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라더니,

그 말이 딱 나를 가르키고 한 말이 될 줄이야...



테트리스를 처음 배우고 집에 돌아온 날

이상스런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잠을 청하려고 누웠는데,

테트리스 스트레이트 바가 천정 위에서

뚜욱 떨어지더니

경쾌한 음악 소리까지 들린다.


"어~ 이게 웬일인가? 테트리스 바가

어른거리네...별일이 다 있군~

뿅 뿅 뾰오옹! "


중독성이 강한 기계음 소리가

그날 밤 내 방안 공기를 모두 마셔 버렸다.


나는 스스로 기계치라고 생각했는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화면에 익숙해진 눈과 손이

하나가 되어,

제법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특함를

맛보기도 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잘 하다니...놀랍군"


이후, 스페이스바를 움직여 칸이 다 채워지는

순간 '뿅뿅뿅' 레벨이 올라가는 소리를 듣는

기분은 만사형통이 따로 없는 내게 아주 특별한

게임이 되고 말았다.


당시 오락실에 가면,

88 갤러그, 슈팅게임, 운전게임 등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나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게임은

'테트리스' 뿐이었다.


내게 오락실은 테트리스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앱을 깔면 바로 실행되는 테트리스 게임


테트리스 재미의 극치는,

단순하고 일정한 기계음의 속도에 맞추어

테트리스 바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고픈

욕망과 짜릿하게 바의 위치를 바꾸어

스페이스를 움직여 원하는 모양이 바뀌면서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려가는 찰나,

레벨이 올라가는 동시에 쌓였던 칸이

사라지는 쾌감은

인간의 욕망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

게임의 오리지널리티가 충만한 게임인 듯 했다.


레벨을 올리고 난 후 즐거움도 잠시,

일정한 레벨 이후에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신의 경지 같은 레벨이 있다.


그야말로 하루종일 오락실에 죽치고 있으면서,

게임기를 주무르고 있어야 만

다다를 수 있는 위치라고나 할까?


애초에 그런 꿈을 꾼 적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은 사항이었기에

굳이 '테트리스 달인'은 나의 오락실

기행의 종착점은 아니었다.


 독서실 가는 길목에 머리도 식힐 겸

짬짬이의 기준에 적당한 삼십분 정도의 여유 시간을 테트리스에 할애했고,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었다.


독서실이나 학원 가는 길목의 오락실을

잠깐 들르는 일상의 일탈은 그후 세번쯤 있었다.


나는 스스로 오락에 중독되지 않은

내 이성을 뿌듯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이기까지 했다.


그런 나의 우쭐한 마음은 잠깐이었다.


여름끝인 듯,

습하지 않는 바람이 가을처럼

시원하게 느껴지는 오후,

집에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근처

오락실이 눈에 들어 왔다.


그날은 내가 오락실을 세번쯤 들렀던 날 일게다.


혼자 오락실을 들락거렸던 일은

그날 그 사건 이후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테트리스를 맘껏 즐겼고,

돌아서는 벌걸음은 가벼웠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다.


"어 내 지갑~ 어디있지?"


한참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고,

주머니를 뒤져 보아도 분홍색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아뿔싸! 좀전에 오락실에서 게임한다면서

손에 쥐고 있던 지갑을 오락실 기계 위 코너에

올려두고 그냥 왔구나!


기억이 차 오르기도 전에

부랴부랴 오락실로 달려갔지만,

5분도 채 안되는 그 사이

내 지갑은 감쪽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락실 주인에게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모른다였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당황함을 감출 수 없는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넋이 반쯤 나간 채로

집에 돌아왔던 나는

세상에 배신 당한 얼간이가

빛도 없는 시커멓고 까만 터널을 지나가는

모습을 오롯이 연상할 만큼의 비참함을 느꼈다.


바보가 된 듯한 내 모습이 몹시 밉고 속상했다.


무엇에 홀린 듯 홀라당 오락실에서 보낸  시간의

허무함은 찝찌름하고 석연치 않은 기분을

내게 온전히 안겨줬고,


잃어버린 분홍색 지갑 속 '학원비 10만원'은

내가 평생 지불할 테트리스 게임비 10만원어치로

갈음하게 했다.


'테트리스 10만원어치'


내 오락실의 꿀꿀한 기억 탓에

장소 불문하고 손에 들고 있는 지갑이나 휴대폰,

가방 등은 꼭 한번 더 챙기려고

노력하는 안간힘은 아마도 그때 부터였을게다.


그럼에도 가끔씩 깜박거리는 건망증은 어쩔 수

없는 요즘이다.

이럴 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보다,

나이는 건망증 지수에 비례하다라는 게 맞을게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 저녁,

나의 부주의와 실수로 학원비 10만원을

잃어버려서 무척 화가 나셔야 마땅한

엄마였을텐데,

의외로 엄마는 의연하고 대범하셨다.


지갑 분실 사건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했으면,

분명 아주 크게 혼났을지도 모른다.

구렁이 담 넘 듯, 얼렁뚱땅 설명했을 것이고

그 부분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셨던 엄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자식의 실수를 조용히 덮어주셨던 엄마의 사랑이

새록새록한 밤이다.


그날 밤 이후, 밤마다 자려고 방에 누워 있으면

천정에서 떨어지던  테트리스 블록은 더 이상

떨어지거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오락실 테트리스 기행의 종착점은

분홍색 지갑 속 10만원이 해결해 준 셈이다.

2017. 2. 5. 가원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화와 발뒤꿈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