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작가 Jul 04. 2016

향기에 사랑이 있다.

올드스파이스 향이 뭐길래

정확히 언제 보았던 드라마였는지,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십년도 더 된 듯 하다.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이었거나, '베스트 극장' 중 하나였으리라.


자신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한 여성이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으면서,

돌아가신 '아빠와 같은 향기'가 나는 남자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면서

그것이 자신이 찾는 사랑이라 믿으며, 사랑의 종착역을 향하여,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향기의 주인공 남성을 만난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던 것 처럼, 그녀의 사랑은

완벽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그를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향의 남성이자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남성이라고 확신한다.


단순 무모한 사랑이었을지라도,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절대적인 사랑의 검증치인 '아빠의 향기'에 이미 꽂혀 있었다.


어렵게 그들이 쌓아간 사랑의 모래성 위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갈등의 시간을 겪으면서,

남자는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만다.

그녀가 찾아 헤맸던 멋진 남자의 향기도 함께 떠나 버렸다.


그런 세월을 뒤로 한 채, 몇년이 흘렀을까?


밋밋한 일상 속에서 쳇바퀴 돌 듯 어김없이 출근길을 나서던 그녀에게,

우연히 자신의 곁을 스치는 남성에게서,

옛 연인의 향기를 다시 느낀다.


'혹시 그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흠칫 놀라 뒤 돌아 서면서,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그녀는 싱긋이 웃으며 서 있다.

다시 출근길을 재촉하며 가던 길을 간다.


드라마의 마지막 영상에는

 '올드 스파이스 (After shave)스킨' 화장품 사진이 오버랩 되면서 끝난다.

그녀가 스스로 깨달은 향기의 비밀은 '올드 스파이스' 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찾아 나섰던 사랑의 무지개가

과거 자신의 젊은 아빠가 사용했던 '올드 스파이스 스킨 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확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비이성적이며,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으리라.


드라마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향기에 민감한 내게도 그런 상상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살다 보면 소소하게 사람의 진짜 향기가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향기에 섞여 살면서도,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아가는 향기에 대한 기억이 꼬리표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내게는 엄마의 젖무덤이 그랬고,

마악 깍은 푸릇한 수염 위에 스킨 바른

아빠의 얼굴과 유난히 뽀송뽀송한 그의 손내음이 그랬다.


며칠전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유년시절 인호, 인영이가 유치원 잔치에서 만들었던 베이지 색 에코백이 내눈에 들어왔다.


살그머니, 펼쳐서 들여다 보니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말잔치 속에 그려진 그림과 글이 하나가 되어 내 머릿속에 피어 오른다.


"엄마 옷에서는 우유 냄새나고, 아빠 옷에서는 초코렛 향기 나" - 신 인호

인호 여섯살 때 마주이야기 잔치 글 중에서

"엄마! 귀신 꿈꾸지 말고, 아빠 꿈꾸고, 인호 꿈꾸고 인영이 꿈 꿔, 음악 꿈꿔." - 신 인영

인영이 다섯설 때 마주이야기 잔치 글 중에서

한동안 자세를 낮추고,

천국과도 같은 아이들 세계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달달하게 머물러 있다.




아이들은 느낀다.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엄마, 아빠의 향기를...

아이들은 분명 천사가 두스푼 정도 뿌려 준 '사랑이라는 향기'를 체화하며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땅 모두의 엄마, 아빠들에게~행복 두스푼씩 골고루 뿌려졌으면...


2015. 11. 18. 인호, 인영 에코백에 담긴 10년전 마주이야기 보며, 佳媛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