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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ug 07. 2017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그녀의 사생활


그녀와 나는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처음 만났다.




나를 만나기 삼분전, 내리는 소나기 때문였는지

그녀는 열 두방울 정도의 비를 이미 맞았다.


팔에 떨어진 몇개의 빗방울을 슬며시 수건으로 닦고 있는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우리의 첫 만남은 순조롭고 산뜻했다.

소나기 덕분에...

그녀와 나는 손을 흔쾌히 맞잡고 걷기 시작했다.

비가 점점 거세지자 그녀는 정류장으로 마구 뛰기

시작했고, 나도 그녀와 함께 뛰었다.


그녀가 내 손을 더 꼬옥 잡자,

나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나는 이제 당신의 필요한 존재"


버스를 타자 금새 비가 그쳐 버렸다.

그녀는 톡톡 한 두번 나를 치더니,

잡았던 내손을 이내 놓는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나를 처음 만났던 그 싱그러운

표정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은 채

나를 쭈욱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 아래

내가 입은 연한 하늘색과 분홍빛깔 옷이

비가 개인 여름하늘 아래 찰랑거리고 있다.


풀밭에서 놀고 있는 토끼 조형물이 있는 쇼핑몰에서도 그녀와 함께 했다.


지하철, 버스정류장, 그녀가 일하는 현장, 음식점,

쇼핑몰에서도...

다섯시간 째 그녀와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가 보다. 현장에 있는 그녀를 나는 쭈욱 자켜 보았다.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일까?"


8월 초, 도시 풍경은 일사병을 일으킬 만큼 덥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눅눅하고 습한 기운은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오늘 나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순전히 그녀에게 달린 문제라 그녀의

깜박거리는 건망증이 작동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그녀를 믿을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이들의 운명을

다른이들에게  여러번 들었기에

오로지 그녀와 함께 한 하루속에

나만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계속 그녀에게 확인시켜 줄 방법 밖에 없다.


그녀와 함께 걷다 만난 대수롭지 않은

여름 풍경에도

한폭의 추억을 어기적거리며

담고 싶다.


그녀의 첫만남인 오늘을 새기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나의 안간힘이 간절함이 되어 그녀를 움직였거나 혹은 그녀의 건망증이 신중함의 모드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다시 비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이제 나는 나와 운명을 같이할 이들과
모두어 같이 서 있다.

하지만, 난 두렵지 않다.

어둡고 칙칙한 그들에 비해

나의 하늘색과 분홍색 옷이 더

살랑대며 돋보일 것이기
그녀에게 선택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설령 먼훗날,

나의 하늘색과 분홍색 옷 빛깔이 바래는

순간이 다가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리.

이미 그녀의 마음을 홀딱 모두 사 버렸으니,

그녀는 나의 운명이다.




오전에 나는 그녀의 우산이었다가,

오후엔 그녀의 양산이 되었다.

2017. 8. 6. 4. 비 개인 뜨거운 햇살아래 우산을

쓰다, 양산을 쓴 그녀는 나의 주인이다.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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