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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Nov 25. 2017

라면 애찬

보글보글



연탄불 위에 파란 불꽃이  노란 양은 냄비 ~~


바닥에 맞닿아 이글거리고 있다.

남동생이 물끄러미 냄비를 쳐다 본다.

휘날리듯 춤추는  불꽃에

지글대는 냄비 소리에 마음이 동했는지

뚜껑을 사알짝 열어보곤

누나에게 한소리 듣는다.


"야~ 뚜껑을 그렇게 열면 물 잘 안끓어서 라면

못 먹어."


짜증과 으름장이 섞인 누나의 말에 기가

죽지도 않고, 의기양양한 말투로

금방 끓고 있으니 뚜껑을

열어서 확인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이제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냄비 속에

라면과 스프를 투하하고 파송송 계란 팍팍 넣어서

익히면 호로록 쩝쩝 맛있는 간식이 완성된다.


라면스프를 냄비에 넣다가 실수로 연탄불 위로 스프가루를 흘린적이 있었다.

불위에 타들어가는 스프향이

'라면의 맛은 살아 있다'라고 세상에 고하듯

옆집으로 유유히 퍼져 나간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처럼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연탄 불 위에 몸소 타들어가는

스프향의 예리한 기억이 스칠 때면

어린시절 연탄불 위의 보글보글 끓였던

추억의 라면향이 콧끝에 머문다.


은근히 타오르는 탄불 위에 쫀쫀하고 탱탱하게

잘 끓여진 라면에 신김치나  알타리 무 한입

베어 먹던 풍미는 이 세상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맛 중 하나였다.


이 맛의 추억은 대를 이어 전해지는걸까?









"아빠! 라면은~

슬플 때 먹어도 맛있어."


꿀꿀한 기분에 버무려진 아이의 마음을

달달하게 만들어 주는 음식이 '라면'인가 보다.


감성을  찌르는 아들의 멘트가

매콤한 라면 냄새가 코를 마비시키 듯

내 귀를 지긋이 누른다.


매콤하고 짭쪼름하면서 느끼한 듯,

뜨거운 국물을 넘길 때  미끄러지는 듯

사르르 느껴지는 MSG 마법이 통한다.


그렇게 라면은 우리들의 입맛을

마비시키고 중독시킨 일상적 메뉴가 되었다.


열여섯 아들의 라면 내공이

내 것 보다 훨씬 강렬한 것 같다.


철학가가 따로 없다.


"에구 아들아!

네 말처럼 엄마는 오늘 라면 두 그릇으로

두배의 슬픔을 모조리 삼키리라."


어떤이에게 닿은 슬픔이

라면을 배불리 먹기만 해도

그 슬픔이  사라질 수 만 있다면,

라면은 날개 돋힌 듯 지금보다 더 많이 팔리겠지?


하늘탱탱 푸르른 가을날

쓸모 없고, 쓸데 없으며

부질없이 늘어진 상상을

라면 하나 만으로 오롯이 펼쳐 본다.


"그래도, 보글보글 라면은 슬프고 맛있다."

라면 국물에 사알짝 떨어뜨린

0.02g의 생리식염수 덕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라면 감성 모서리에 매달린 내 것도

맞닿아 동일한 날이다.



후루륵 쩝쩝~~라면 인생  2017. 9.30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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