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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pr 19. 2017

노란 유혹

바나나 맛 처음이야~~

바 ... 나... 나...





잠에서 덜 깨어 부비적대는 빨간 토끼눈은

어디가고 없고,

금새 귀는 쫑긋 세우고,

휘둥그래진 눈으로

탁자 위에 놓인 바나나 다발에 매달린

바나나 갯수를 세고 또 세어 본다.


9개인지 10개인지... 세고 또 세도 헷갈린다.


뭉툭하면서 곧고 길게 뻗은 바나나의 끝이

까맣게 모아져 있어서 그런지 노오란색

열매가 더 돋보인다.


줄기에 가까운 가지 밑둥은 연녹색 빛깔을 띠다가

열매부분으로 갈수록 노란 빛깔이 더 선명해지니

색의 유혹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다.


1인 1개씩 가족 모두가

아빠에게 배급처럼 바나나를 받아 들고

신주 모시 듯,

한동안 보드라운 바나나 겉면을 쓰다듬고

양손을 왔다갔다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며

코를 가까이 대면서 바나나 향도 맡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언니, 동생도 비슷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쩜 이리 색이 곱지?"

그 때부터 노란색을 좋아한 것 일까?


가족은 바나나의 탐스러움에 감탄하는 중이다.


노란 껍질을 좌르륵 까면,

하이얀 바나나 속이 훤히 드러나면서

바나나 달콤한 향이 멋들어지게

방안을 포르르 채운다.


한입에 쏘옥 베어 문 바나나의 설컹이면서

서걱거리다가 결국 부드럽게 혀끝에 무너지는

야릇한 달콤한 맛이

여덟살 소녀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오늘은 일년에 한 두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그런 행운의 날이다.


외출하고 들어오시는 아빠의 손에 들려진

검정 비닐봉지 속 바나나는 잠자고 있던

내눈을 부비부비 번쩍이게 할 만큼

환상적인 마력의 간식이기도 했다.


1970년대 말,

바다 건너 수입된 열대 과일의 희귀함은

지금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거니와

맛 또한 특별함 그 자체였다.


정말이지 바나나 한개를 아껴 먹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한입 베어 물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고, 순식간에 바나나의 형체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허탈함은 껍질에 깃든다.

이런~ 껍질 만 휑하니 남게 되다니...



마지막까지 다 먹고도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껍질에 붙어 있는 바나나 이끼와 하이얀 실줄도

떼어 먹었던 그 시절.


바나나의 맛은

내 기억의 혀끝에 아직도 오롯이 살아있다.


어른이 되어서

마트나 시장에서 만나는

여러다발의 바나나를

볼 때마다,


가슴은 이미 여덟살 바나나 한개에 꽂혀 있는데,

머리는 그 때 그 맛이 아니겠지? 하며 바나나를

애써 외면한 적이 자주 있다.


요사이 가끔 바나나를 향한

내 가슴의 말을 믿기라도 한 듯,

여덟살 달콤했던 바나나의 노란색을  

호출하고 있는 중이다.



바나나!

비타민 A, C도 풍부하고 칼륨이 많아 체내 나트륨

배출에 도움을 준단다.

게다가, 식이섬유성분인 펙틴이 많아

장내 활동을 개선시켜 주고

항산화 성분으로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과일이라니...


여덟살! 그 땐 몰랐었다.


바나나 한송이에

아빠의 함박같은

가족사랑이 깃들었다는 것을...


노랑이 더 뜨겁게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나를 저절로 일어나게 한

노란 유혹이 탁자 위에 남아 있었다.


세개 남은 바나나 중 한개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은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몸소 실천했던 행복한 날이기도 했다.




2017. 4. 18. 노오란 바나나의 유혹이 좋다~

바나나 한입 베어 물고....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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