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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an 10. 2018

여섯살 장독대

땡그렁 ~~



소복소복 내린 하얀 눈에 덮인

하얀 장독대 뚜껑~

장독대의 나란한 풍경은

어느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줄 것 같은

교감의 장소가 아닐까?


하얀 눈 속에 푸욱 묻혀 있는 장독대의 뚜껑은

147번째 내 기억의 방을 특별하고도

놀라게했던 물건 중의 하나이다.




 30센티미터 정도 높이나 될까?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돋궈진 장독대 위에

올라가면 금방이라도 장군이 된 듯한

의기양양함과

때로는 쩌렁쩌렁 호령할 만큼의 용기가

저절로 솟구친다.


어깨는 으쓱~

골목대장 같은 포스에 쇠스랑이라도 붙들어 쥐고

서 있으면 세상을 다 얻었다 하리라.


여섯살 할아버지댁 장독대는 그렇게

나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 곳은 내 나이에 잘 어울리는

그리고,

기분 좋게 바라볼 만한 높이의 고지이자

점령하기 쉬운 여섯살 소녀의 든든한

아지트이기도 했다.


개구진 일상의 시작은 단연코

여름날 펌프질 하는 수돗가 앞에 병풍처럼

드리워진 장독대가 으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사건이 터지기 전 까지

나는 그곳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봄이었을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뽀송뽀송한 햇살 아래

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씩 할아버지댁 마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들은 장독대가 드리워진 마당 앞에 모여서

놀기 시작했고,  제 나름의 놀이로 신나게

뛰어 다니며, 하하하 깔깔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번져간다.


한참을 놀다가,

아이들은 뿔뿔히 흩어져 보이지 않는다.

장독대 아래 수돗가 근처에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빨래를 하는 모습을

보자, 내심 안도가 되었다.


아이들이 죄다 사라진 장독대 근처 마당이내 눈 앞에 아련히 넓고 큰 운동장으로 펼쳐지더니,

동그란 원을 만들고 누워 있다.


아까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술래잡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을까?


나는 세상 두려움 다 떨군 성인처럼

눈을 감고서 저만치 장독대를  지나서 멀리 보이는

엄마에게 금새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오~잘 걸을 수 있네" 신기한 듯 자신감이

불끈 솟는다.

두세 걸음 나아갔을 때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해

오자 실눈이 떠진다.


가느다란 세상에 비친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여전히

장독대 아래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고,

웃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 나는 다시금 마음 속 평화가

찾아왔고,

미소를 머금은 채

꿈처럼 눈을 또 꾸욱 감았다.


그리고, 3초 쯤 지났을까?


우당탕...

땡그렁 쨍그렁...데구르르 꽈당 쿵~



나는 장독대 근처에 널브러져 뒹굴었고,

나와 부딪힌 장독대 위 무엇이 담겼었는지

알 수 없는 독 항아리 뚜껑이

그 자리에서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사고가 터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고를 내고 말았다.


항아리 뚜껑이 깨졌다.


소리에 놀란 엄마와 아주머니들이 내가

뒹굴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 오시더니

놀란 토끼가 되었다.


뚜껑이 깨질 정도로 부딪혔으니 나의 몸 어딘가에

상처는 당연한 결과였다.


턱이었다.


항아리 뚜껑에 다친 '슬픈  나의 턱!'

어리석은 여섯살 아이의 판단을 뭐라 책망할 수 없는 엄마는 피를 보고 겁을 잔뜩 먹고 울음보가


터진 나를 잽싸게 안았고,

금새 도착한 119 앰블런스 안에

누워있는 나의 손을 꾸욱 잡고

울상이 되어 있었다.

분명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엄마의 슬픔을 느낄 수 없는 내게는

찢어진 턱에 마취없이 수술을 하는

고통을 대신하게 했다.


이제 어느덧 흐르던 피도 멎었고

수술도 무사히 마쳤다.

아까 쨍그렁 깨치며 동네를 아수라장 만들었던

여섯살 나의 심장은 금새 쪼그라들었고,

며칠 동안 나는 장독대 근처도 얼씬할 수 없었다.


깨진 항아리는 누가 치웠으며,

그 아래 수돗가에서 펌프질하며 오가던 손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루의 일과처럼 머물렀던 나의 장독대는

한동안 내안의 '금기어'처럼 맴돌았고,

가볼 수 없는 두려움의 장소로 변해버렸다.


세월이 약이다.


오른쪽 턱밑 수술자국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하자,

장독대는 나의 일상으로 다시 들어 왔다.

하지만,

여섯살 나의 용감하고도 철없는 행동은

사그라들었다.


"너 그 때 왜 그랬었니?" 라고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묻노라면...


철들지 않았던 여섯살 나의 생각을 기억할 수 있다.

"그 때는 눈을 감아도 세상이 보이는 줄 알았어요.

마치 꿈처럼~ 그리고, 그런 채로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어요"


장독대 항아리 뚜껑이 깨지는 소리는 내게

철없던 여섯살 아이가

엄마 사랑을 갈구하는 징소리처럼,

가슴 속에 오롯이 남겨져 있다.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했던 여섯살 나를 마주하다.


아직도 턱밑 그 어딘가의 기억 속 촉수는

살아 있어 장독대 만 보고 있어도 아릿하고

찌릿거린다.




개구진 여섯살 추억의 롤러코스터는 쿵쾅쿵쾅~~

2018. 1. 7.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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