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작가 Aug 13. 2020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울대의 울림을 멎게 하려고, 간신히 숨을 참았다.
이미 촉촉해진 눈망울의 눈동자가 제 갈 길을 잃었다.

https://youtu.be/38QwLRYK8X0

어느 새 나의 마음에 훅 들어와 버린 그 선율.
30년 가까이, 늘 편하게 꺼내 들었던 곡 임에도,
나를 다지게 하고, 메마른 감성을 다시 차오르게 하는 이 선율.

마음의 둑이 터진 상태라 눈물을 훔쳐 닦은 들,
울지 않았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순 없었다.
터미널 라운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아르페지오네를 대신한 첼로의 보잉이, 마음의 형상을 도려내는 작업이라도 하는 듯, 악기의 울림이 귓가에 가득하다.


분명 저 음악은 '나'이고 싶다.

마음의 울림이 되돌아 와서 가슴을 친다.
바램은 뜨겁게 열망하며 되새긴다.
밑 자란 감성의 마디에 연녹색 이파리의 발돋움 같은 아련함이 숨골을 틀어 막고 있다.
첼로도 아닌 것이 기타도 아닌 그 악기.
아르페지오네(Arpeggione)

곡의 웅장함이 치닫는 거창한 교향곡(Symphony)도 아니요, 피아노처럼 전체를 지배하는 독주곡도 아니고,
콘체르토에서 빼어나게 돋보임을 보여주는 바이올린이나
파아노의 독주도 아니다.

그렇다고, 현생에서는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서, 비올라나 첼로로 들어야 하는 숙명.

그런 악기의 태생은 흔하지 않는 기회에 찾아 왔다.
1823년 빈의 기타(Guitar) 제작자인 게오르크 슈타우퍼에 의해 아르페지오네라는 6현의 첼로 형태의 기타 악기가 제작되었고, 이에 1824년 슈베르트(Frantz Schubert)가 아르페지오네 연주자인 빈센초 슈스터(Vincenz Schuster)를 위해 실내악곡을 완성하였다.

존재감 없이, 1824년 세상에 잠깐 슈베르트의 손길에 반짝이다가, 어떤 뚜렷한 명성도 누리지 못한 채 사라졌다가, 1871년에 비로소 세상에 다시 알려진 기타와 첼로 중간쯤에 머물러 있는 어정쩡한 여섯줄의 현악기.


우아함과 기품이 넘치는 곡!

Arpeggione Sonata in A Minor, D.821
Mvt.1: Allegro Moderato
Mvt. 2 : Adagio
Mvt. 3: Allegretto

가곡풍으로 흥얼거리게 하면서도
애조 띤 슬픔의 선율이 금방이라도 슬픔을 삼킬 듯 밀려든다.
그 유려한 선율은 곡이 시작되는 순간,
순수함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내면에 파문을 일으키 듯,
명징하게 울려 퍼진다.

1824년 11월 슈베르티아데의 살롱 음악회에서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곡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기쁨과 환희,
슬픔과 연민이 교차하듯 피아노와의 밀고 당기며, 주고받는 연주가 사랑의 대화처럼 속삭이며 친밀감을 돋운다.

1823년 여름, 에스테르하지 백작 가문의 초청으로 헝가리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만났던 백작가문의 카롤리네와의 로맨스도 실패로 돌아가,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매독으로 몸은 회복 불능 상태에 심신은 피폐해진 상태였기에 음악외에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그랬기에, 27살 청년 슈베르트에게 사그라들지 않는 음악적 열정과 자신의 장대한 미래를 희망하며, 이 곡을 완성하였다.
그의 삶의 단면은 이 곡에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

아르페지오네라는 생경한 악기!
잠깐 왔다 사라져간, 인생과도 같은...단명한 악기
슈베르트의 음악적 열정이 오롯이 로맨틱하게 기대어져 있는 곡

사랑의 시름을 앓는 이여!
실패의 쓴잔을 마신 자여!
고독이 몸부림치는 이 순간!
탄식의 울음을 멈추고,
아르페지오네를 대신한
첼로나 비올라의 연주 속에 끈끈한 인생의 비밀을 찾아보시라.

https://youtu.be/4w9uneJ-fR0


프란츠 슈베르트 (Frantz Schubert, 1797~1828)


ㅡ 님의 침묵 ㅡ

                         한 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https://youtu.be/BTZ8P86Rsow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면서 고3 국어 시간에 빈칸 채우며, 밑줄 쳐서 외웠던 시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곡과 함께 오선지와의 합일을 이루고 말았다.

이건, 필시 머리로 읽혔던 시가 가슴으로 읽혀지는 감정의 화학반응이 일어난 3초의 사건으로 기억 되리라.


 한여름에도 무심하게 몸은 내 과거 이력의 음악을 오롯이 소환해내기도 한다.
2020년 08월 13일

가을이 오려면, 아직인데... 佳媛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